[Cook&Chef = 서진영 기자] 추석이 다가오면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는다. 어느 지역의 마트에 가도 비슷한 재료를 살 수 있고, 명절상에 오르는 음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역의 한가위 풍경은 달랐다.
추석 무렵 들에서 무엇을 거두었는지, 가까운 바다에서 어떤 생선이 잡혔는지가 명절 음식에 그대로 담겼다. 바다에서 잡힌 생선은 소금에 절이고 말려 산을 넘었고, 밭에서 거둔 곡식은 갈아 전을 부쳤다. 섬에서는 육지에서 흔한 쌀 한 그릇이 특별한 음식이 되기도 했다.
한가위 밥상에는 그 지역의 가을을 볼 수 있다.
가을 땅에서 캐낸 토란
<농가월령가> 팔월령에는 “신도주·올벼송편·박나물·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라는 구절이 전한다. 토란국은 이미 조선시대 한가위 절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시의전서>에는 토란국에 닭을 넣으면 좋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토란은 이름 그대로 ‘흙에서 나는 알’로 여름 내 땅속에서 자라 추석 무렵 수확한다. 생으로 먹으면 아린맛이 강해 쌀뜨물에 삶거나 데친 뒤 국에 넣어 익으면 단단했던 알토란은 부드럽게 풀리고 특유의 미끈한 질감이 남는다.
남도에서는 쇠고기 양지로 맑은 국물을 내 토란을 넣어 토란탕, 토란곰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토란국이 추석상에 올라온 데에는 이 계절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토란이었다.
서해에서는 북어 대신 우럭을 말렸다
차례상의 ‘포’도 지역마다 달랐다.
명태를 말린 북어가 일반적이지만 충남 서산·태안·홍성 일대에서는 우럭포를 올렸다. 겨울철 살이 오른 우럭에 소금을 살짝 뿌리고 햇볕에 2~3일 말렸다. 바닷바람에 수분이 빠지면 희고 연했던 살은 단단해지고 맛은 짙어져 서해안 지역인 서산과 태안 앞바다에서는 우럭을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잡은 생선을 그대로 오래 둘 수 없었던 시절에는 소금을 치고 말렸다. 저장을 위한 방법이 명절의 포가 됐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에 오르는 또 다른 생선은 홍어와 병어, 낙지와 꼬막이다.
홍어는 쉽게 상하지 않는 생선이다. 삭히는 과정에서 특유의 강한 향과 맛이 생겼고, 전라도에서는 찌고 무치고 회로 먹으며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한다.
병어는 홍어와 전혀 다른 성질을 지녔다. 살이 희고 연하며 뼈도 비교적 부드러우며 병어만의 감칠맛은 찌고 굽고 조려을 때 다른 생선과 비교 할 수 없는 맛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서남해의 넓은 갯벌에서는 낙지와 꼬막도 얻었다. 특히 벌교와 여자만 일대의 꼬막은 제사와 잔칫상에도 올랐다.
같은 전라도라 해도 바다와 내륙의 상은 같지 않았다.
바다가 없는 영천에 돔배고기가 오른 까닭
경북 영천의 제례상에는 돔배고기가 오른다.
상어고기를 큼직하게 토막 내 소금에 절인 돔배기는 경북의 제례음식으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영천 호수 정세아 종가에서는 돔배기로 가적과 도적, 자반, 탕까지 만들었다. 조기·민어·상어·문어·오징어 등 어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육류보다 어물이 훨씬 두드러진 상이다.
동해에서 잡힌 생선을 내륙까지 그대로 옮기기는 어려웠다. 몸집이 큰 상어는 토막을 내 소금에 절였다. 수분이 빠진 살은 단단해졌고 이동과 보관도 쉬워졌다.
영천은 대구·경주·포항·안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바다의 어물이 장을 거쳐 들어왔고 다시 내륙으로 퍼져나갔다.
문어 역시 경북의 제례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삶으면 붉은빛이 돌고 형태가 잘 남아 통째로 상에 올리기도 했다.
바다가 없는 곳의 명절상에 상어와 문어가 올랐다.
지역 음식이 반드시 그 지역에서 난 재료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산과 바다 사이에 장이 있었고, 그 장을 잇는 길이 있었다. 사람과 식재료가 오가면서 멀리서 온 음식도 어느새 그 지역의 명절 음식이 됐다.
산을 넘으면 달라지는 강원의 상
강원도의 산간으로 가면 바다의 생선 대신 메밀과 감자가 흔한 작물이었다.
메밀은 생육 기간이 짧아 벼농사가 쉽지 않은 산간의 척박한 밭에서도 비교적 잘 자랐다. 강원도뿐 아니라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도 메밀 음식이 발달한 이유다. 메밀을 갈아 국수를 뽑고 묵을 쑤고 전을 부쳤다.
얇게 부친 메밀전에는 배추나 무를 올렸다. 김치나 돼지고기를 넣어 말면 메밀전병이 된다. 밀가루처럼 쫄깃한 반죽은 아니지만 메밀 특유의 향과 부드럽게 끊어지는 질감이 있다.
감자는 또 다른 산간의 음식이 됐다.
물을 많이 품은 감자를 갈면 밑으로 전분이 가라앉는데, 그 전분을 다시 건더기와 섞어 부치면 겉은 노릇하고 속에는 쫀득한 삭감과 강원도 특유의 고소함이 입안에 퍼진다.
동해가 가까워지면서 명태와 가자미, 문어가 추석 상차림의 흔한 풍경이다.
산에서는 메밀과 감자를 먹고 바닷가에서는 생선을 먹었다. 같은 강원도 안에서도 태백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음식이 달라졌다.
제주에서는 쌀 한 그릇도 달랐다
화산섬인 제주는 논농사가 쉽지 않아 쌀보다 보리와 조, 메밀, 콩 같은 밭곡식을 많이 먹었다. 평소 잡곡밥을 먹던 집에서도 제삿날에는 쌀밥을 지었다.
육지에서는 흔한 흰쌀밥이 제주에서는 의례를 위해 마련하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제주를 대표하는 제수 어물로 옥돔이 등장하는데,살이 단단하고 담백해 소금을 뿌려 바람에 말리면 수분이 빠지면서 살이 더욱 단단해지고 맛이 짙어진다. 말린 옥돔은 굽고, 생옥돔은 국을 끓였다.
섬에서 잡힌 생선은 바닷바람을 만나 저장 음식이 됐다.
육지에서 흔한 쌀은 제주에서는 귀했고, 제주에서 익숙한 옥돔은 육지에서는 특별했다.
그 땅에서 얼마나 쉽게 얻을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명절상
한가위를 이야기하면서 황해도와 평안도, 함경도를 빼놓을 수 없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남부에 비해 밭농사의 비중이 커 쌀보다 조와 수수, 옥수수, 메밀, 감자, 콩을 많이 이용해 음식도 달랐다.
평안도에서는 녹두를 갈아 지짐을 부쳤다. 녹두 반죽은 밀가루 반죽과 달리 묵직하고 고소하다. 기름에 지지면 가장자리는 노릇해지고 안쪽은 부드럽게 부친다. 평안도의 녹두지짐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오랫동안 전해졌다.
함경도에서는 동해의 생선과 밭곡식이 한 음식에서 만난 음식
가자미식해다.
가자미에 소금과 조밥, 엿기름, 고춧가루 등을 넣어 삭혔다. 생선을 오래 두기 위한 저장법이면서 동시에 곡식과 생선을 함께 발효한 음식이었다. 쌀 대신 조를 많이 먹던 지역의 환경도 그대로 담겼다.
전쟁과 분단은 이 음식의 자리를 남쪽으로 옮겼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서울과 경기, 강원도 곳곳에 정착했다. 속초 청호동에는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는데, 고향에서 먹던 음식도 함께 내려왔다.
고향에서 빚던 만두를 만들고, 어머니가 부치던 지짐을 부쳤다. 북쪽에서 쓰던 재료를 구하지 못하면 남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맛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음식 이름과 만드는 기억은 남았다.
지역 음식이 사람을 따라 이동한 것이다.
고향에서는 일상의 음식이던 것이 떠나온 뒤에는 고향을 기억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가위 밥상에 남은 고향
한가위 음식들은 서로 달랐지만 시작은 멀지 않았다.
그해 거둔 것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상에 올렸다. 쉽게 상하는 것은 소금에 절였고, 오래 두려면 말렸다. 밭에서 많이 나는 곡식은 갈아 전을 부치고, 바다에서 얻은 생선은 그 지역의 방식으로 다뤘다.
지역의 명절 음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논과 밭, 산과 바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장이 서던 길과 사람의 이동, 고향을 떠나온 기억까지 음식에 남았다. 같은 한가위였지만 밥상은 달랐고, 그 상에는 저마다의 고향이 있었다.
추석은 햇곡식과 햇과일이 가장 먼저 상에 오르는 때다. 새로 거둔 쌀로 밥을 짓고, 밤과 대추, 배와 사과 같은 가을의 결실을 나눈다. 한 해 동안 거둔 것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고 가족이 함께 나누던 풍경도 그 안에 있다.
올 한가위에는 고향의 음식 하나쯤 상에 올려보아도 좋겠다. 햇곡식으로 지은 밥과 햇과일을 나누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기억 속 명절 음식을 이야기하며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 하길 제안해 본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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