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허지은 기자] 요즘 편의점이나 마트 매대를 둘러보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저당', '저나트륨', '고단백'을 강조한 제품이 부쩍 늘었다. 삼각김밥, 시리얼, 심지어 미숫가루까지 성분표가 바뀌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리포뮬레이션(Reformulation)', 즉 기존 인기 제품의 배합을 다시 설계하는 흐름이라고 부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산하 FIS 식품산업통계정보가 발간한 '2026년 8월 트렌드 Pick' 보고서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알아두면 좋은 식품 업계의 리포뮬레이션에 대해 짚어봤다.
리포뮬레이션이란 무엇인가
리포뮬레이션은 단순히 설탕이나 소금을 빼는 일이 아니다. 보고서는 이 과정을 소비자 참여, 영양성분 개선, 맛·품질 보완, 대체원료·신기술 적용의 4단계로 설명한다. 소비자 설문과 실사용 데이터를 먼저 수집한 뒤 당류·나트륨·포화지방을 줄이고 대신 식이섬유와 단백질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배합을 조정한다. 이어 맛과 식감을 원래 제품 수준으로 되살리는 기술적 보완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대체원료나 친환경 공정까지 적용하는 순서다. 뺄셈과 덧셈을 동시에 하면서도 맛은 지키는 게 핵심이다.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다"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학술지 Applied Food Research(2025)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밀가루의 일부를 퀴노아 가루로 대체하고 설탕을 최대 30%까지 줄인 쿠키를 만들었더니 단백질·식이섬유·항산화 성분은 늘어난 반면 관능평가에서 맛과 기호도는 오히려 유지되거나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 원료의 비율과 조리 조건을 세밀하게 조정하면 건강한데 맛도 있는 제품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국내 마트·편의점에 등장한 저당·고단백 신제품들
국내에서도 관련 제품이 매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상 청정원은 알룰로스와 식이섬유를 활용해 당류와 열량을 낮춘 '저당 홍초'를 지난해 5월 출시했는데 약 1년 만에 누적 매출 200억원을 넘어섰다. 롯데마트는 올해 5월 단백질 함량을 높이고 당류는 낮춘 '단백질 블랙 미숫가루'와 '단백질 저당 통곡물 선식'을 선보이며 저당·고단백 곡물식 매대를 넓혔다. 서울시와 편의점 CU는 지난 7월 저당·고단백 삼각김밥과 도시락 등 건강 간편식을 함께 내놓기도 했다. 성분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면서 이런 제품군은 편의점 간편식 코너에서도 점점 자리를 넓혀가는 분위기다.
'건강해지고 있는' 해외 대표 브랜드들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브랜드일수록 리포뮬레이션에 적극적이다. 미국 크래프트하인즈는 지난 5월 젤리 디저트 브랜드 '젤로(JELL-O)'의 새 라인 'JELL-O Simply'를 선보였다. 실제 과일즙을 사용해 당류를 25% 줄이고 인공색소와 인공감미료는 아예 빼면서도 기존 젤로 특유의 맛과 질감, 화려한 색감은 그대로 살렸다. 회사 측은 부모 세대의 절반가량이 인공감미료 사용을 꺼리고 3명 중 1명이 당류 함량을 가장 큰 관심사로 꼽는다는 자체 조사를 반영해 이번 제품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크래프트하인즈는 앞서 자사 제품의 약 10%에 쓰이는 인공 색소를 2027년 말까지 전량 없애겠다고 선언한 바 있어, 이번 신제품은 그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닛신식품의 '컵누들 PRO' 시리즈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21년 4월 단백질 15g 함유, 탄수화물 50% 저감 콘셉트로 처음 출시된 이 제품은 2025년 2월 리뉴얼을 거치며 나트륨까지 25% 줄였다.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의 맛을 그대로 지켜달라고 요구했던 만큼 독자적인 저감 기술을 적용해 맛은 유지하면서 성분만 개선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카레맛을 새로 추가하며 저당·고단백 라면 시장에서 선택지를 넓혔다.
나트륨 저감은 유럽에서도 화두다. 핀란드 식품기업 HK푸드(HKFoods)는 지난 5월 햄과 소시지 제품의 나트륨 함량을 25% 줄인 신제품을 내놨다. 이 회사는 리포뮬레이션 적용 품목을 약 100개까지 늘려 핀란드 국민 전체의 연간 소금 섭취량을 약 65t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별 제품 하나의 변화가 국가 단위 건강 지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라벨을 볼 때 소비자가 챙기면 좋은 것들
성분표가 복잡해 보여도 확인할 포인트는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무설탕'과 '저당'은 다른 표시다. 국내 기준상 '저당'은 식품 100g(또는 100㎖)당 당류 함량이 일정 기준 이하일 때 표시할 수 있는데, 정확한 기준은 제품 유형에 따라 달라지므로 영양성분표의 당류 항목 수치를 직접 비교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 둘째, 알룰로스·에리스리톨 같은 대체 감미료가 쓰인 제품은 설탕보다 열량이 낮지만 섭취량이 많으면 소화 불편을 느낄 수 있어 한 번에 많이 먹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셋째, '고단백' 표시 제품이라도 단백질 함량과 함께 나트륨·포화지방 수치를 같이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저당이나 고단백 한 가지 지표만 보고 '건강식'으로 단정하면 다른 성분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전문가가 던지는 조언
리포뮬레이션이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식품매체 'Food & Wine'은 지난 6월 터프츠대 연구를 소개하며, 초가공식품의 건강 위험이 당·소금·지방 함량뿐 아니라 가공 방식 자체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설탕과 나트륨만 줄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클라인앤컴퍼니(Kline & Company)는 최근 발표한 '2026 식품·영양 트렌드' 보고서에서 클린라벨이 이제 틈새가 아니라 제품 개발과 브랜드 전략을 좌우하는 기본 기대치가 됐다고 진단했다. 인공첨가물 제거와 단맛 저감이 단계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소비자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윤지현 교수는 FIS 뉴스레터 기고에서 리포뮬레이션이 나트륨과 당류를 덜어내는 단계를 넘어 환경·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배합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성분표의 숫자 변화만 볼 게 아니라, 그 제품이 실제로 내 식습관 전체를 건강하게 바꿔주는지 따져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결국 '저당·저나트륨·고단백' 표시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늘려주는 신호이지만 그 자체가 건강을 보장하는 인증서는 아니다. 적절하게 리포뮬레이션된 제품들을 활용하여 식단을 구성하는 것을 제안한다.
Cook&Chef / 허지은 기자 heoxjie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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