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정수연 기자] 덴마크의 식탁을 이야기할 때 빠르게 떠오르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스뫼레브뢰드(Smørrebrød·스뫼레브뢰드)다. 짙은 호밀빵 위에 청어나 감자, 달걀, 고기와 치즈를 올린 모습은 이제 덴마크를 상징하는 음식 풍경으로 자리한다. 그런데 이 빵 한 장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곧 식탁 밖으로 뻗어나간다. 덴마크 사람들이 어떤 곡물을 재배하며 살았는지, 산업화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평범한 노동자의 점심이 어느 순간 도시의 세련된 외식이 되었는지까지 한 음식 안에서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스뫼레브뢰드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아래 깔린 호밀빵을 살펴봐야 한다. 덴마크에서 호밀은 천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해온 곡물이었다. 중세와 근세를 거치는 동안 평범한 사람들에게 ‘빵’은 사실상 호밀빵을 뜻했고, 밀로 만든 흰빵은 부유층이나 특별한 날의 식탁에서 더 자주 모습을 보였다. 단단하고 묵직하게 구운 호밀빵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고, 밭으로 가지고 나가기에도 좋았다. 덴마크의 농업환경과 생활방식이 자연스럽게 호밀빵을 일상의 중심에 놓아준 셈이다.
빵 한 장을 한 끼의 바탕으로 삼는 식사법도 이런 생활 속에서 자라났다. 호밀빵에 버터나 돼지기름을 바르고 양파와 소금, 남은 고기를 올리면 농사일을 하다가도 간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오늘날의 화려한 스뫼레브뢰드가 완성되기 전부터 빵 위에 음식을 올려 먹는 방식은 덴마크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산업화가 점심시간을 바꾸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이 익숙한 호밀빵에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일하는 장소가 집에서 공장과 도시의 작업장으로 옮겨갔고, 하루를 쓰는 방식도 함께 달라지기 시작했다. 낮에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음식을 먹던 식사시간은 새로운 노동환경에 맞춰 재편됐고, 점심은 점차 일터에서 해결하는 한 끼가 되어갔다.
이 변화 속에서 호밀빵은 훌륭한 해답이 되어주었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고 들고 다니기에도 편했으며, 버터나 지방을 바른 뒤 달걀과 소시지, 치즈 등을 얹으면 점심시간에 바로 먹을 수 있었다. 호밀빵을 종이에 싸서 일터로 가져가는 덴마크의 마드파케(Madpakke·도시락) 문화도 이러한 생활 변화와 함께 널리 퍼져갔다.
산업화는 공장과 도시의 모습은 물론 덴마크 사람들의 점심시간까지 새롭게 짰다. 그 변화 속에서 오래 먹어온 호밀빵은 농촌의 일상식에서 도시 노동자의 점심으로 자연스럽게 역할을 넓혀갔다.
농업의 변화가 빵 위를 바꾸다
도시의 노동시간이 달라지던 무렵, 덴마크의 농촌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870년대 국제 곡물가격이 떨어지자 덴마크 농업은 곡물 수출 중심의 구조에서 버터와 돼지고기, 달걀을 생산하는 축산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1880년대에는 협동조합 형태의 낙농장과 도축장이 빠르게 늘었고, 덴마크산 버터와 베이컨은 영국 시장으로 대량 수출됐다.
농업의 변화는 곧 식탁의 변화로 이어졌다. 돼지고기와 간, 달걀, 유제품이 보다 활발하게 생산되면서 호밀빵 위에 올릴 수 있는 재료도 한층 다양해졌다. 여기에 육류 가공과 냉장 기술까지 발전하면서 이전 세대의 소박한 빵 위에는 새로운 맛과 조리법이 차곡차곡 더해져 갔다.
대표적인 음식이 레버포스타이(Leverpostej·간 파테)다. 19세기 후반 덴마크에서 간 파테가 널리 퍼지면서 스뫼레브뢰드의 대표적인 토핑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축산 중심으로 재편된 덴마크 농업의 흔적도 자연스럽게 호밀빵 위에 남게 됐다.
산업화는 덴마크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과 장소를 바꾸었고, 같은 시기의 농업 변화는 그들이 점심으로 무엇을 먹는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두 변화가 겹치면서 스뫼레브뢰드는 점차 지금과 익숙한 모습으로 발전해갔다.
노동자의 점심이 도시의 미식으로
그다음 변화는 더욱 흥미롭다. 일터에서 허기를 채우던 호밀빵 점심이 19세기 후반 코펜하겐의 외식문화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880년대에는 고기와 생선, 소스와 채소를 풍성하게 올려 정교하게 장식한 ‘회이트벨라트 스뫼레브뢰드(højtbelagt smørrebrød)’가 등장했다. 이름 그대로 토핑을 높이 쌓아 올린 스뫼레브뢰드다. 1883년 코펜하겐 티볼리의 레스토랑 님에서는 현재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스뫼레브뢰드 전문 메뉴가 등장했고, 이후 코펜하겐의 식당들은 수십 가지 조합을 만들어내며 이 음식을 하나의 외식문화로 키워갔다.
여기에는 눈에 띄는 계급의 변화가 숨어 있다. 한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었던 검고 묵직한 호밀빵 위에 값비싼 생선과 육류, 소스와 장식이 올라가면서 같은 빵이 도시 부르주아의 세련된 점심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전에는 생계를 위해 들고 나가던 음식이 이제는 레스토랑에서 골라 먹는 메뉴가 되었고, 토핑의 풍성함과 장식 솜씨까지 음식의 품격을 보여주는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스뫼레브뢰드라는 음식의 높이가 달라지는 동안 그 음식이 놓이는 사회적 위치도 함께 올라간 것이다.
스뫼레브뢰드와 함께 자리한 여성의 전문 영역
외식문화가 성장하면서 스뫼레브뢰드를 만드는 일도 점차 전문적인 기술로 발전했다. 덴마크에서는 스뫼레브뢰드와 찬 음식을 전문적으로 만들고 장식하는 ‘스뫼레브뢰스욤프루(smørrebrødsjomfru)’라는 직업이 자리했으며,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맡았다.
이들의 업무는 빵 위에 재료를 올리는 작업에서 시작해 찬 전채와 샐러드, 카나페와 디저트까지 폭넓게 이어졌다. 재료의 양을 맞추고 서로 다른 맛을 조합하며 접시 위의 모습까지 완성하는 과정은 하나의 전문 조리기술로 발전해갔다.
그래서 스뫼레브뢰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같은 시대의 서로 다른 노동 현장이 한 장면에 겹쳐진다. 한쪽에서는 산업화가 공장 노동자의 점심을 바꾸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장하는 도시 외식업 안에서 여성들이 전문적인 조리영역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 끼의 점심이 덴마크의 노동문화와 직업세계가 달라지는 과정까지 함께 기록한 셈이다.
먹는 순서에도 문화가 있다
외식 메뉴로 성장한 스뫼레브뢰드는 먹는 방식에서도 하나의 질서를 갖추게 됐다. 여러 종류를 함께 먹는 전통적인 덴마크 점심에서는 대체로 청어로 시작해 다른 생선과 해산물을 거친 뒤 육류로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치즈가 이어진다.
첫 순서를 맡는 청어에는 덴마크의 훨씬 오래된 음식문화가 담겨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오랜 세월 청어를 소금에 절여 저장하며 먹어왔고, 그 식습관은 오늘날의 스뫼레브뢰드 식탁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높이 장식한 스뫼레브뢰드는 보통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 먹는다. 여러 조각을 차례로 먹다 보면 한 장씩 독립된 음식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생선에서 고기와 치즈까지 이어지는 작은 코스가 완성된다. 크리스마스의 율레프로코스트(Julefrokost·크리스마스 점심)나 부활절 점심처럼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오랫동안 둘러앉는 자리에서는 이러한 덴마크식 점심문화가 한층 선명하게 펼쳐진다.
문학과 미술에 들어간 점심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스뫼레브뢰드는 이미 식탁을 넘어 덴마크인의 문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 흔적은 문학과 미술에서도 발견된다.
1901년 덴마크 작가 요하네스 V. 옌센은 스뫼레브뢰드를 찬미하는 글을 남겼다.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작가가 평범한 점심을 글의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음식이 당시 덴마크인의 일상에서 차지하던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몇 년 뒤 화가 프리츠 쉬베르도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스뫼레브뢰드를 작품으로 옮겼다.
농촌의 호밀빵에서 출발한 음식이 노동자의 도시락을 거쳐 도시의 레스토랑으로 들어왔고, 이제는 작가와 화가가 바라보는 문화의 소재가 된 것이다. 스뫼레브뢰드에 쌓인 재료만큼이나 그 음식에 부여되는 의미도 시대를 지나며 계속 늘어갔다.
다시 발견한 덴마크
20세기 후반이 되자 덴마크의 식탁에도 세계 각지의 음식이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자와 새로운 형태의 샌드위치, 프랑스식 외식문화가 널리 퍼졌고, 대량생산한 빵과 저렴한 토핑을 사용하는 스뫼레브뢰드도 흔해졌다. 한 세기 전 도시의 세련된 점심으로 성장했던 음식은 다시 가장 익숙한 일상식의 자리로 돌아왔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다시 움직인다. 2004년 코펜하겐에서 출범한 뉴 노르딕 요리운동은 지역 식재료와 계절성, 발효와 절임, 오래된 조리기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호밀빵과 청어, 뿌리채소, 절임처럼 덴마크 사람들이 오래 먹어온 재료를 품은 스뫼레브뢰드는 이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기 좋은 음식이었다.
셰프들은 좋은 호밀빵을 굽고 제철 재료를 골랐으며, 직접 만든 절임과 소스로 익숙한 조합을 새롭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뫼레브뢰드는 오래된 점심이라는 기억 위에 현대적인 미식의 감각을 더해왔다.
흥미롭게도 시대에 따라 ‘좋은 스뫼레브뢰드’를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19세기 후반에는 값비싼 재료를 풍성하게 높이 쌓는 것이 도시의 세련됨을 보여주었다면, 오늘날에는 재료의 계절성과 산지, 호밀빵의 완성도, 절임과 발효, 맛의 균형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다뤄진다. 같은 음식이 시대마다 덴마크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긴 가치를 고스란히 받아온 것이다.
호밀빵 위에 남은 덴마크의 시간
스뫼레브뢰드 한 조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덴마크의 역사를 함께 걷게 된다. 호밀을 먹고 살아온 농업사에서 시작해 산업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노동시간, 축산 중심으로 방향을 바꾼 농촌, 도시 부르주아의 외식문화와 여성의 전문적인 조리영역, 문학과 미술, 다시 뉴 노르딕의 시대까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한 음식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오늘날 덴마크의 식탁에 놓인 스뫼레브뢰드를 바라보면 빵 위의 재료만큼이나 그 아래 쌓인 시간도 함께 보인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일했는지, 어떤 농산물을 생산했는지, 무엇을 도시적인 식사라고 여겼는지, 누가 그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시대마다 한 겹씩 더해져 지금의 모습을 완성해왔다.
음식은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을 가장 일상적인 형태로 남겨준다. 덴마크의 스뫼레브뢰드는 그 사실을 유난히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농부와 노동자가 먹던 호밀빵 위에 산업과 농업, 계급과 노동, 여성의 직업세계와 예술이 차례로 쌓였고, 오늘날에는 새로운 세대의 미식까지 그 위에 더해지고 있다. 우리가 보는 스뫼레브뢰드 한 접시는 결국 덴마크 사람들이 시대마다 자신들의 삶을 한 겹씩 올려 완성해온, 먹을 수 있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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