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기자] 아침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 한낮의 볕에는 여름이 남아 있지만 해가 지면 공기는 빠르게 식는다. 처서와 추분 사이에 드는 백로(白露)는 이름 그대로 ‘흰 이슬’이 맺히는 때다. 태양이 황경 165도에 이르면 밤 기온이 내려가 대기 중 수증기가 풀이나 물체에 이슬로 맺힌다.
백로의 풍경은 이슬보다 들판에서 먼저 시작된다. 한여름 동안 자란 벼가 이삭을 내고 알곡을 채워가는 중요한 시기로 “백로 전 미발이면 알곡 수확물이 없다”는 옛말도 있듯 백로가 되었는데도 이삭을 내지 못한 벼는 충분히 여물기 어려웠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지난 8월 25일 경북 칠곡에서 조생종 ‘윤담’과 ‘해담쌀’의 수확을 알렸다. 백로의 들판에는 먼저 거둔 벼와 아직 여물고 있는 벼가 함께 있다. 한 계절의 끝과 다음 계절의 시작이 서로 다른 속도로 이어진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8월 시식으로 햅쌀로 빚은 술과 오려송편, 인절미, 밤단자와 토련단자 등이 기록되어 있다. 들과 밭에서 익어가던 햅쌀과 밤, 토란이 가을의 음식임을 말하고 있다.
흰 이슬보다 먼저 익어가는 들
조선 후기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는 이 시기의 들과 밭이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팔월이라 한가을 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온갖 곡식이 이삭을 내어 익고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흰 목화송이와 붉은 고추가 익고, 수수이삭과 콩가지가 여물며,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머루와 다래를 따고 뒷동산에는 밤과 대추가 익는다.
푸르던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풋고추가 붉어지며, 콩이 꼬투리를 채우며 수수이삭이 고개를 숙인다. 산에는 머루와 다래가 익고 밤과 대추가 영근다. 곡식과 열매는 밥과 떡, 장과 찬, 과실과 저장 음식이 되어 가을과 겨울의 밥상으로 차려진다. 『농가월령가』에 기록된 백로 무렵의 풍경에는 한식의 재료가 익어가는 계절이 담겨 있다.
지역에서는 백로 무렵 벼의 상태와 비, 바람을 살펴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전남에서는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농사가 좋지 않다고 여겼고, 경상도에서는 팔월 백로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이러하듯 백로는 단순히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절기가 아니라 여름 농사의 결실을 맞이하는 때였다.
세종 때 편찬된 『농사직설』에는 벼·기장·조·피·콩·팥·녹두·보리·밀·메밀 등의 재배법이 기록되어 있다. 작물에 따라 갈이와 파종, 수확의 시기를 달리했고 여름 곡식이 결실하는 동안 다음 농사를 준비했다. 하나의 농사가 여물면 또 다른 농사의 시간이 시작됐다.
‘흰 이슬’의 백로는 농가에는 현실적인 절기였다. 벼가 제때 이삭을 냈는지 살피고 비와 바람을 걱정하며 다가올 추수를 준비했다. 기러기가 내려오고 제비가 돌아간다는 옛 삼후(三候) 역시 자연의 변화를 살펴 계절의 변화를 알아가고, 이슬과 새, 곡식의 빛깔과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농사의 때를 가늠했다.
입추가 달력에서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면 백로에는 계절의 변화가 들과 밭에서 먼저 나타난다.
들에서는 계절을 색으로 보여준다. 논에서는 황금빛이 일렁이고, 푸른 고추는 붉어지며 밤과 대추는 통통하게 영근다. 여름에 자란 것을 모두 거두기에는 조금 이르고, 가을이라 부르기에는 볕이 아직 뜨거운 때. 백로는 바로 그 사이에 있다.
한식의 계절은 완성된 음식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백로에는 여름의 햇볕이 길러낸 식재료가 가을의 맛으로 바뀌고 있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경주의 '세상의 모든 사과'] (5) 비틀즈의 사과](https://cooknchefnews.com/news/data/2026/09/01/p1065588060935174_588_h.jpg)

![[류효일의 밥상뒤집기] (9) 식탁은 라이프스타일 미디어](https://cooknchefnews.com/news/data/2026/09/01/p1065586427499908_865_h.jpg)
![[한식탐구] 여름이 익고, 가을이 시작되는 백로](https://cooknchefnews.com/news/data/2026/09/01/p1065578131765680_576_h.png)
![[채수완의 100세 건강식탁] (5) 여든살 '꽃보다 할배'](https://cooknchefnews.com/news/data/2026/08/31/p1065590987209819_442_h.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