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릴 걸 심는 농사'로 전환…"부가가치 200조"
[Cook&Chef = 안정호 기자] 새벽 발걸음으로 상징되던 농업이 변하고 있다. 농부는 온도의 급격한 변화가 없는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밤새 센서와 카메라가 밭을 지켜본다. 인공지능(AI)이 농업 분야에 들어오며 생긴 변화다.
이미 AI는 현장에 도입된 상태다. 강원 영월의 한 농가는 오이와 토마토를 기르며 'AI 솔루션'을 도입했다. 지난해 시스템을 도입한 이 농가는 0.5헥타르(ha)의 비닐온실에서 온·습도와 토양수분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며 온도가 급격히 오르는 이상 변화를 휴대전화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도입 성과는 눈에 띈다. 농가는 AI 솔루션 도입 후 병충해는 전년 대비 20% 줄고, 생산량은 18% 늘었다고 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3월, 이 농가를 방문해 직접 운영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농업 AX(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7월 '2026 스마트농업 AI 경진대회'를 열어 AI 기반의 농작업 의사결정에 대한 인력, 기술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올해로 6번째를 맞는 대회는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172명(35개 팀)이 늘었다. 농업 현장의 AI 수요가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험실서 99% 정확, 현장에선 30%"
농업 분야에서 AI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지난 10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농업박람회'에서도 AI와 농업을 주제로 한 세션이 잇따랐다. 이날 세션에 참석한 카이스트 AI 연구원이자 과학 크리에이터인 허성범 씨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전했다. 그는 "건강한 잎과 병든 잎을 구분하는 AI를 만들었더니 실험실에선 정확도가 약 99%였는데, 현장에 도입하니 약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선 햇빛에 반사되거나 흙이 묻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잎들이 뒤섞여 실험실의 깨끗한 표본과는 차이가 심하다고 설명했다.
또 "AI가 자연을 예측한다기보단 패턴을 인식해 사람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현재 상태를 진단했다. 변수가 많은 자연환경에서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부터 우리가 농업 AI를 쓰기 시작한다면 거기에 쌓인 수많은 데이터가 우리 세대 이후의 자손들에게 훨씬 더 튼튼한 형태로 물려주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유통의 변화…'팔릴 걸 심는' 농사로
AI는 농사법을 넘어 산지의 순서까지 바꾼다. 기존 농사는 심고, 기르고, 수확해 내놓아야 팔릴지를 알았다. 농산물 유통기업인 미스터아빠의 서준렬 대표는 세션에서 "과거에는 밭에서 심은 작물을 생산된 이후에 저희가 받았는데 이제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까, 내일 판매될 데이터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기존 데이터에 날씨, 요일 등의 변수를 더해 다음 날 판매량을 예측한다. 서 대표는 "삼겹살데이 같은 날은 상추가 많이 나가는데, 날씨·요일·특정일 지수를 데이터로 만들어 농가에 제공하니 아주 좋아하시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령이 대다수인 농가에서 관련 데이터 프로그램의 활용이 쉽지 않았다. 이에 서 대표는 "(어르신들이) 카카오톡은 잘하시기 때문에 농작물을 사진을 찍어 보내시거나 메모지에 적은 것을 (사진으로) 보내시면 저희가 인식해서 데이터로 다 바꿨다"며 고령층의 접근 문턱을 낮춘 방법에 대해 말했다.
농업에서 '농산업'으로
AI를 통한 변화를 산업 구조의 전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도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AI를 통해 각각의 농장별 데이터가 쌓여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혁신이 가능해졌다고 짚었다. 정 위원은 "농업은 부가가치 30조 원으로 국내 비중이 1~2%에 그치지만, 농산업으로 넓히면 부가가치가 200조 원을 넘어 8~10%까지 올라간다"면서 AI의 도입을 통해 기존의 재배업을 보조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닌 물류까지 연결된 산업으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한계는 남아 있다. 정 위원이 진행한 '지식재산정보검색서비스 내 등록특허 분석'에서 특허의 57%는 민간기업이 출원했다. 민간이 혁신을 이끄는 만큼 공공의 역할은 좋은 환경을 구성해 주는 것에 있다. 그가 공개한 조사에서 농산업 AI 기업들이 꼽은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이 아닌 '한정된 시장 속 과당경쟁'과 '제도적 기반 부족'이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은 "시합은 민간이 하지만, 공공은 잘 깔린 잔디와 좋은 규칙, 똑똑한 심판과 시스템을 갖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농부의 땀과 흙으로 기억하던 농업이 데이터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제 땀 대신 데이터가 쌓여 혁신이 되는 농업에서, 새 삽을 뜨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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