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기자] 은빛 몸통에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뻗은 몸. 갈치는 생김새부터 이름이 되었다. 『역어유해』에는 군대어(裙帶魚)를 ‘갈티’라 했고,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군대어와 함께 속명 갈치어(葛峙魚)가 등장한다. 칼치·도어(刀魚) 또한 쓰였다. 군대어는 가늘고 긴 몸을 치마끈에 빗댄 이름으로, 도어는 칼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이름이다. ‘갈치’의 갈(葛)을 칡의 넝쿨에서 찾기도 했으나, 모두 길고 납작한 갈치의 외형으로 지어진 이름들이다.
갈치가 기록에 등장하는 시기는 『자산어보』보다 훨씬 앞선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도어가 경기도와 충청도의 산물로 기록됐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충청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까지 산지가 기록돼 있다. 조선 전기 여러 해역에서 잡히던 친숙함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조선 후기 기록을 보면 갈치의 유통과 소비 방식이 등장한다. 『난호어목지』에는 갈치를 소금에 절여 말린 뒤 서울로 보냈으며 맛이 좋고 값도 쌌다고 기록돼 있다.
가을, 살이 차오르는 갈치
갈치는 계절과 수온을 따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이다.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제주와 남해를 중심으로 겨울을 보내고 수온이 오르면 서해와 남해로 이동해, 산란기는 대체로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지며 가을이 되면 살이 차고 지방 함량이 높아진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갈치 어획이 활발하고, 살이 도톰해지는 가을 갈치를 제철로 꼽는다.
갈치의 어장은 수온 변화에도 민감하다. 제주 연안에서는 수심 20m의 수온이 21~23℃일 때 어장이 형성됐지만 27~29℃까지 높아지면 어군이 흩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최근 갈치 어획량의 변화를 살필 때 수온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과거 갈치 소비는 제철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수산지』에는 모내기철 갈치 소비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가을에 살이 차오른 갈치를 즐기는 계절의 맛과 별개로 갈치는 오래전부터 일상의 밥상에 자주 오르던 생선이었다.
같은 갈치, 제주에서는 은빛으로 목포에서는 먹빛으로
제주 어판장의 갈치는 은빛이 반짝인다.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한 마리씩 올리는 채낚기로 잡은 갈치를 ‘은갈치’라 부른다. 목포를 비롯한 서남해에서는 그물에 잡힌 갈치가 갑판으로 올라오는 동안 서로 부딪히고 그물에 쓸리며 은색 표면이 벗겨지면서 몸빛이 어두워진 갈치는 ‘먹갈치’라 불린다. 은갈치와 먹갈치는 다른 어종이 아닌, 어획 방식에 따라 구분된 이름이다.
갈치의 은빛은 구아닌을 주성분으로 하는 은색층이 덮여 있다. 마찰에 쉽게 벗겨지는 특성 때문에 한 마리씩 낚아 올린 갈치와 그물로 잡은 갈치는 시장에 도착했을 때 외관에서 차이가 난다. 은빛이 선명하게 남은 제주 채낚기 갈치는 ‘은갈치’라는 이름으로 높은 상품성을 갖게 됐다.
지역에서 이어지는 갈치의 맛
제주에서는 갈치의 선도를 살린 국과 구이, 조림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제주 향토음식점으로 인증된 물항식당 탑동점은 생물갈치에 굵은소금으로 간해 숯불에 굽는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을 낸다. 공판장에서 국내산 수산물을 들여오고 제철에 확보한 생선을 급랭해 사용한다. 화려한 통갈치 한 상보다 토막 낸 갈치를 굽고 조려 먹어온 제주식 생선 밥상에 가깝다.
제주의 맑은 갈칫국을 찾는다면 관광형 통갈치 전문점보다 향토음식점에서 찾는 편이 좋다. 제주에서는 싱싱한 갈치와 호박을 넣어 맑게 끓인 갈칫국을 향토음식으로 전승하고 있다. 갈치의 기름이 국물에 얇게 번지고 부드럽게 익은 흰 살에 호박의 단맛이 더해진다. 뜨거울 때 먹어야 갈치의 담백한 맛과 맑은 국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목포에서는 갈치의 모습이 달라진다. 명인집은 1979년부터 이어온 목포 향토음식점으로, 수협에서
위판된 생선을 사용해 먹갈치조림과 먹갈치구이를 낸다. 먹갈치를 비롯해 홍어·낙지·꽃게 등 목포의 수산물이 한 상에 오르는 곳으로, 갈치 한 가지보다 서남해 생선을 먹어온 목포의 밥상을 함께 볼 수 있다.
목포 오거리식당에서는 먹갈치를 조림과 구이로 낸다. 특히 제철 생선을 신안 천일염으로 간한 뒤 약간 말려 굽는 방식을 사용한다. 수분이 조금 빠진 생선은 살이 단단해지고 간이 속까지 배어 생물구이와 다른 맛을 낸다. 먹갈치조림은 채소와 육수를 넣고 푹 졸여 살에 국물 맛을 깊게 밴다. 소금으로 간하고 말려 굽는 생선과 국물을 넉넉하게 잡아 졸이는 먹갈치조림에서 서남해의 생선 저장과 조리법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맑은 갈칫국부터 꾸덕하게 말린 갈치까지
제주에서는 갓 잡은 갈치를 토막 내 늙은호박과 배추를 넣고 맑게 끓여 갈칫국을 만들었다. 붉은 양념에 자작하게 졸이는 갈치조림과 맛의 흐름부터 다르다. 푹 익은 갈치살은 결을 따라 희고 부드럽게 갈라지고, 국물에는 갈치에서 나온 기름과 늙은호박의 은근한 단맛이 밴다. 배추의 시원한 맛까지 더해지면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국물이 완성된다. 갈칫국은 자리돔물회·성게국·한치물회·옥돔구이·빙떡·고기국수와 함께 제주 7대 향토음식으로 선정됐다.
갈치 내장도 버리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내장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갈치속젓을 담갔다. 살은 국과 구이, 조림으로 먹고 내장은 짭조름하게 삭혀 밥과 쌈에 곁들였다. 농도 짙은 감칠맛과 발효된 내장의 쌉싸름한 맛이 어우러지는 제주 특유의 젓갈이다.
갈치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는 소금과 바람이 필요했다. 소금에 절여 꾸덕하게 말린 갈치는 수분이 빠지면서 살이 단단해지고 맛이 응축된다. 말린 갈치를 물에 불리거나 양념을 더해 졸이면 단단했던 살이 다시 부드러워지면서 짭조름한 맛이 배어난다. 어린 갈치를 말린 풀치는 양념에 졸이거나 무쳐 밑반찬으로 먹었다. 경상도에서는 갈치를 넣고 국을 끓였다. 같은 갈치라도 잡은 곳과 보관해야 하는 시간에 따라 회와 국, 구이와 조림, 젓갈과 건어물로 모습이 달라졌다..
조선 후기에는 갈치를 소금에 절여 말려 서울로 보냈다. 지금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잡은 갈치를 얼려 한국으로 들여온다. 염장과 건조에서 냉동으로 보관법이 달라졌고 갈치가 이동하는 거리도 길어졌다.
값싸고 흔했던 갈치는 귀해졌지만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은 여전히 익숙한 음식이다. 국내산 갈치만으로 채우기 어려워진 식탁에는 세계 여러 바다에서 잡힌 갈치가 들어왔다. 잡히는 바다는 달라졌지만 갈치를 먹는 우리의 방식은 그대로이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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