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여서 한방울씩 내린, 전통 소주의 시작
[Cook&Chef = 신현우 기자] 삼겹살을 먹을 때도,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도, 회를 먹을 때도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술. 심지어 치킨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이쯤 되면 어울리지 않는 음식을 찾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고, 그만큼 익숙한 술. 바로 소주다.
편의점이나 마트 냉장고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식당에 들어가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소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어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선조들이 마시던 소주는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마시는 소주와 만드는 방법부터 달랐다.
과거의 소주는 쌀이나 여러 곡물에 누룩과 물을 더해 먼저 술을 빚고, 잘 익은 술을 다시 증류해 만들었다. 탁주나 약주가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다면 소주는 여기서 한 번 더 불을 만나는 셈이다.
술을 솥에 넣고 가열하면 알코올을 품은 증기가 올라온다. 이를 차갑게 식혀 다시 액체로 받아내면 맑고 도수가 높은 술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주(燒酒)’라는 이름에도 이런 제조 방식이 담겨 있다. 불사를 소(燒)에 술 주(酒). 말 그대로 불을 이용해 만든 술이라는 뜻이다. 술을 증류해 이슬처럼 받아낸다고 해 노주(露酒), 불로 만든 술이라 해 화주(火酒)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언제부터 이런 소주를 마셨을까.
그 시작을 따라가다 보면 고려시대, 그리고 몽골을 만나게 된다.
술을 증류하는 기술은 중세 페르시아에서 발달해 아라비아를 거쳐 동쪽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증류주는 ‘아락’이라 불렸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평안도에서는 ‘아랑주’, 개성에서는 ‘아락주’라는 이름이 사용됐다.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이름의 증류주를 만날 수 있는 것을 보면 술과 함께 이름도 긴 여행을 해온 셈이다.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알려져 있다.
당시 원나라는 일본 정벌을 추진했고, 고려에는 많은 몽골군이 들어왔다. 이들을 통해 소주와 증류 기술이 전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특히 몽골군이 주둔했던 안동과 개성, 제주 등에서는 이후 소주 제조법이 발달했다. 오늘날 안동소주의 역사를 몽골군의 일본 원정과 연결해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몽골군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주 제조법을 가르쳤는지까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몽골군을 통해 소주가 전해졌다는 설명은 우리 소주의 전래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견해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고려 말이 되면 소주는 기록 속에서도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376년 『고려사절요』에는 경상도원수 김진(金縝)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진이 휘하의 군사들과 밤낮으로 술을 즐기자 군중에서는 이들을 ‘소주모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주를 얼마나 즐겼으면 700여 년 전 기록에 이런 별칭까지 남았을까 싶다.
그러나 몽골군을 따라 들어온 소주가 처음 모습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쌀과 여러 곡물, 누룩을 이용해 술을 빚는 오랜 문화가 있었다. 여기에 새롭게 들어온 증류 기술이 더해지면서 점차 우리 방식의 소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도 달랐다. 쌀을 이용하기도 했고 수수나 좁쌀, 옥수수 등을 이용하기도 했다. 같은 증류주라 해도 어떤 곡물과 누룩으로 술을 빚고 어떻게 증류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은 달라졌다. 안동소주와 개성소주, 진도홍주를 비롯해 지역마다 저마다의 소주 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증류 기술이 우리의 곡물과 누룩, 술 빚는 문화와 만나면서 어느새 ‘우리 소주’가 된 것이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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