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기자]초록빛 포도잎 사이로 여름 햇살이 스민다. 아직 단단한 포도알이 익어가는 동안 지중해와 중동에서는 연한 잎을 먼저 거둔다. 뜨거운 물에 데친 잎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그 위에 쌀과 허브를 올려 가늘게 만다. 냄비를 둥글게 채운 포도잎 말이에 레몬과 올리브오일을 부으면 포도밭의 계절은 한 접시의 음식이 된다.
국내에서 포도는 주로 생과와 주스, 와인으로 소비된다. 포도 재배 역사가 오래된 서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에서는 어린 잎도 식재료로 사용한다. 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채취한 잎을 바로 데치거나 소금물에 절여 두었다가 쌀과 향신채, 고기 등을 감싸 익힌다.
포도잎은 얇고 유연하면서도 익힌 뒤 형태가 쉽게 뭉개지지 않는다. 잎 특유의 산미는 쌀과 올리브오일, 육류의 기름진 맛을 줄인다. 채취 기간이 짧아 데치거나 염장해 저장하는 방법도 함께 발달했다.
돌마와 사르마, 채우는 음식과 감싸는 음식
포도잎 음식을 설명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명칭은 돌마와 사르마다.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 뜻은 다르다.
돌마(Dolma)는 튀르키예계 언어에서 ‘채우다’라는 뜻을 지닌다. 속을 파낸 가지와 호박, 토마토, 피망 등에 쌀이나 고기를 넣은 음식까지 포함한다. 사르마(Sarma)는 ‘감싸다’ 또는 ‘말다’라는 뜻으로, 포도잎이나 양배추잎에 속재료를 넣어 만든 음식이다.
실제 식생활에서는 포도잎으로 싼 음식도 돌마라고 부르기 때문에 두 명칭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지중해 동부와 중동, 발칸반도, 코카서스에는 서로 다른 이름과 조리법이 남아 있다. 오스만 시대의 문화 교류를 거치며 각 지역의 향신료와 곡물, 육류가 더해졌다.
유네스코는 2017년 아제르바이잔의 ‘돌마 만들기와 나눔의 전통’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유네스코가 설명한 돌마는 고기와 양파, 쌀, 콩류, 향신료 등을 섞은 소를 잎으로 감싸거나 과일과 채소 안에 채운 음식이다. 특별한 날이나 가족 모임에서 함께 만들어 나누며 환대와 유대를 다지는 문화도 포함한다. 돌마는 음식 한 가지가 아니라 공동체가 전승해 온 조리 지식과 나눔의 방식까지 아우른다.
같은 포도잎, 다른 속재료
튀르키예의 야프락 사르마(Yaprak Sarma)는 대표적인 포도잎 음식이다. ‘야프락’은 잎, ‘사르마’는 감싸거나 만다는 뜻이다. 올리브오일을 넣은 쌀에 양파와 딜, 민트, 파슬리를 섞고 잣이나 건포도, 계피, 올스파이스를 더하기도 한다. 고기를 넣지 않은 사르마는 차갑거나 미지근하게 내고, 다진 고기를 넣은 것은 따뜻하게 먹는다.
그리스에서는 돌마데스(Dolmades), 작은 크기는 돌마다키아(Dolmadakia)라고 부른다. 쌀과 허브만 넣기도 하고 양고기나 소고기를 더하기도 한다. 전채 음식인 메제의 하나로 내며 레몬과 요구르트, 달걀과 레몬으로 만든 아브골레모노 소스를 곁들인다.
레바논과 시리아를 비롯한 레반트 지역의 와락 에나브(Warak Enab)는 이름 자체가 ‘포도잎’을 뜻한다. 쌀에 파슬리와 민트, 토마토를 넣은 채식형은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의 산미가 두드러진다. 고기와 쌀을 넣을 때는 냄비 아래에 양고기나 감자, 토마토를 깔아 함께 익힌다.
아제르바이잔의 야르파크 돌마스(Yarpaq Dolması)는 작은 포도잎에 다진 양고기나 소고기, 쌀, 양파, 허브를 넣어 단단히 만다. 마늘을 섞은 요구르트 소스를 곁들이며 일상식뿐 아니라 명절과 손님맞이 음식으로도 먹는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서는 톨마(Tolma)라고 부른다. 포도잎뿐 아니라 양배추와 여러 채소를 사용하며 다진 고기와 쌀을 넣는다. 고기의 유무와 향신료 구성은 종교와 계절, 가정의 조리법에 따라 달라진다.
집에서 만드는 허브 포도잎 사르마
재료 염장 포도잎 30장, 쌀 1컵, 양파 1개, 토마토 1개, 다진 파슬리 3큰술, 다진 딜 2큰술, 다진 민트 1큰술, 올리브오일 5큰술, 레몬 1개, 잣 2큰술, 소금·후추 약간, 물 또는 채소육수 2컵
1.염장 포도잎은 찬물에 여러 차례 헹군 뒤 물에 담가 짠맛을 뺀다.
2.팬에 올리브오일 2큰술을 두르고 다진 양파를 볶다가 씻은 쌀과 잘게 썬 토마토, 잣을 넣어 2∼3분 더 볶는다.
3.불을 끄고 파슬리와 딜, 민트를 섞은 뒤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4.포도잎은 매끈한 면이 아래로 가도록 펼친다. 줄기 쪽에 속을 조금 올리고 양옆을 접은 뒤 아래에서 위로 만다.
5.냄비 바닥에 남은 포도잎이나 토마토 조각을 깔고, 말아둔 포도잎은 이음새가 아래로 향하도록 촘촘히 담는다.
6.레몬즙과 남은 올리브오일, 물 또는 채소육수를 붓고 접시로 눌러 약한 불에서 40∼50분 익힌다.
7.불을 끈 뒤 냄비 안에서 식혀 레몬과 요구르트를 곁들인다.
SNS를 타고 넓어진 에스닉푸드의 관심
세계 각 지역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다룬 콘텐츠가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에스닉푸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낯선 음식도 짧은 영상으로 재료와 조리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 접근하기 쉬워졌다.
포도잎 음식은 영상 콘텐츠와도 잘 맞는다. 잎 위에 속을 올려 일정한 크기로 말고, 완성된 말이를 냄비에 둥글게 채우는 장면만으로 음식의 특징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채식과 지중해식 식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기를 넣지 않은 포도잎 음식도 자주 소개된다.
포도잎 음식은 새롭게 만들어진 유행식이 아니다. 각 지역의 가정에서 오랫동안 먹어 온 음식이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것이다. 포도를 먹는 문화는 익숙하지만 포도잎을 먹는 문화는 여전히 낯설다. 그 한 장의 잎에는 계절의 식재료를 저장한 지혜와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눈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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