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정수연 기자] 칠리 콘 카르네(chili con carne)라는 이름부터 이 음식이 지나온 역사를 압축한다. ‘칠리’는 고추를 뜻하는 나우아틀어 ‘칠리(chīlli)’에서 이어졌고, 스페인어 ‘콘 카르네(con carne)’는 ‘고기와 함께’를 뜻한다. 아메리카의 토착 언어와 스페인어가 한 음식의 이름 안에 겹쳐 있는 셈이다.
이름의 뿌리는 멕시코에 닿아 있지만, 미국에서 칠리를 지역의 상징으로 끌어안은 곳은 텍사스다. 1977년 텍사스주는 칠리를 공식 주 음식으로 지정했다.
멕시코계 식문화에서 출발한 한 그릇은 어떤 과정을 거쳐 텍사스를 대표하는 음식이 됐을까.
칠리 콘 카르네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고추가 있다. 고추는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부터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식탁을 이루던 핵심 재료였다. 16세기 이후 스페인인들이 소를 들여오면서 쇠고기도 식생활에 들어왔고, 북부 멕시코와 오늘날의 텍사스 일대에서는 고추와 고기를 함께 조리하는 음식이 여러 형태로 발전했다.
어떤 고기와 고추를 쓰는지, 재료를 어느 비율로 섞고 얼마나 끓이는지는 지역과 가정마다 제각각이었다. 당시의 칠리는 하나의 고정된 레시피보다 여러 조리법이 나란히 존재하는 넓은 음식군에 가까웠다. 훗날 미국인이 ‘칠리’라는 이름에서 떠올리게 되는 일정한 형태는 이 다양한 갈래 가운데 일부가 텍사스의 시장과 식품산업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윤곽을 갖춘 결과다.
‘칠레 콘 카르네’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 미국 기록에도 등장한다. 멕시코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여했던 S. 컴프턴 스미스는 1857년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Chile con Carne, or, The Camp and the Field』라고 붙였다. 적어도 이 무렵에는 음식명이 미국 출판물의 표제에 오를 만큼 쓰이고 있었다.
이후의 역사는 텍사스 산안토니오의 광장에서 훨씬 선명해진다.
가정의 냄비가 도시의 밤으로
19세기 후반, 해가 기울면 멕시코계 텍사스 여성인 테하나(Tejana)들이 산안토니오의 광장에 테이블을 펼쳤다. 커다란 냄비에서는 칠리가 끓었고, 그 곁에는 타말과 엔칠라다, 프리홀레스 같은 음식이 놓였다. 등불 아래에서 밤늦게까지 음식을 팔던 이 여성들을 사람들은 ‘칠리 퀸(Chili Queens)’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노점은 생계를 꾸리는 일터였고, 칠리에게는 새로운 손님을 만나는 무대였다. 집과 멕시코계 공동체 안에서 이어지던 조리법이 도시 한복판으로 나오자 식탁에 앉는 사람들의 구성부터 넓어졌다.
당시 산안토니오는 군인과 노동자, 상인, 여행객이 오가던 텍사스의 주요 상업도시였다. 광장에서는 멕시코계 주민과 앵글로계 주민, 도시를 찾은 외지인이 같은 시간대에 음식을 먹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저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맛을 만나는 자리였다.
이 식탁은 칠리의 자리까지 넓혔다. 가정과 공동체 안의 일상식이 공개된 광장으로 나오면서 칠리는 점차 ‘산안토니오에서 맛보는 음식’이 됐다. 도시를 찾은 사람에게 한 끼를 팔던 일이 멕시코계 식문화를 다른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통로로 이어진 것이다.
산안토니오에서 칠리는 새로운 손님을 얻었다. 이제 그 맛이 도시 밖으로 움직일 차례였다.
사람이 옮기던 맛을 상품이 옮기기 시작했다
칠리 퀸의 야외 노점은 여행기와 신문, 관광 기록에 등장하며 산안토니오 밖에도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890년대, 칠리의 이동에는 새로운 수단이 생긴다.
병과 캔이 사람보다 더 멀리 맛을 실어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독일계 이민자 윌리엄 게브하르트가 있었다.
텍사스 뉴브라운펠스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게브하르트는 멕시코계 음식에 관심을 갖고 여러 종류의 칠리를 만들어 팔았다. 그는 말린 고추와 향신료를 일정한 비율로 섞어 보관하기 쉬운 가루를 만들었고, 1896년 이를 ‘이글 브랜드 칠리 파우더(Eagle Brand Chili Powder)’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1898년에는 사업장을 산안토니오로 옮겼다.
칠리 파우더는 지역 밖에서도 일정한 맛을 반복해서 만들 수 있게 했다. 고추를 고르고 말리고 갈아 여러 향신료와 배합하던 과정이 하나의 제품 안에 들어가면서, 산안토니오에서 멀리 떨어진 소비자도 같은 조리법을 따라 칠리를 끓일 수 있었다.
게브하르트사는 조리법까지 함께 보급했다. 1908년 『Mexican Cooking』을 펴냈고, 1911년부터는 통조림 칠리와 타말을 생산했다. 1915년 무렵 하루 칠리 파우더 생산량은 약 1만8000병에 이르렀으며, 제품은 미국 대부분의 지역을 비롯해 캐나다와 영국, 남아프리카까지 팔려나갔다.
광장에서 한 그릇씩 건네던 맛이 병과 캔, 인쇄된 레시피를 통해 반복해서 만들고 멀리 보낼 수 있는 상품으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이 산안토니오를 찾아와 칠리를 먹던 시대에 이어, 이제 텍사스의 칠리가 소비자의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칠리’라는 맛의 윤곽이 생기다
당시 미국에서 유통되던 칠리 레시피를 보면 고기의 종류부터 고추, 토마토, 양파, 마늘, 향신료의 조합까지 폭이 넓다. 각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소비자의 취향이 냄비마다 서로 다른 칠리를 만들었다.
상품화는 이 다양한 조합 가운데 반복해서 만들 수 있는 맛에 힘을 실었다. 칠리 파우더는 고추와 향신료의 배합을 일정하게 맞췄고, 통조림은 완성된 음식의 맛과 형태를 그대로 먼 지역까지 운반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다진 쇠고기와 토마토 퓌레, 칠리 파우더를 중심으로 한 조합이 널리 반복됐다. 여러 지역에서 각기 만들던 음식 가운데 특정한 형태가 식당과 가공식품, 조리책을 통해 되풀이되면서 미국 소비자가 떠올리는 ‘칠리’의 모습도 한층 선명해졌다.
멕시코에서는 고추와 고기를 결합한 다양한 조리법이 각 지역과 가정의 식문화 속에서 이어졌다. 텍사스에서는 그 계통 가운데 한 형태가 ‘칠리’라는 짧은 이름 아래 식당 메뉴와 가공식품, 조리책, 소비시장을 차례로 갖췄다.
텍사스는 멕시코계 식문화의 뿌리 위에 자신의 취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광장을 떠난 칠리, 식당과 가정으로 들어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산안토니오의 도시 풍경도 변했다. 1937년 위생 규정에 따라 광장의 칠리 노점 영업이 중단됐다. 1939년 칠리 퀸들은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고, 1940년대 초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노점 문화가 막을 내렸다.
그 사이 칠리는 이미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텍사스의 식당에서는 칠리와 엔칠라다, 타말, 프리홀레스가 함께 팔렸고, 앵글로계 소비자를 상대하는 식당에서도 멕시코계 음식이 익숙한 메뉴로 들어갔다. 가정에서는 칠리 파우더를 꺼내 냄비에 넣었고, 통조림 하나를 데워 한 끼를 준비할 수도 있었다.
칠리 퀸이 광장에서 열어놓은 시장을 식당과 식품회사가 더 넓은 소비시장으로 이어간 셈이다.
소비층이 넓어질수록 관심은 ‘어떤 칠리가 텍사스다운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갔다.
콩 한 알이 지역의 취향을 드러내다
오늘날 여러 지역의 칠리에는 강낭콩이나 핀토빈이 흔히 들어간다. 텍사스의 칠리 문화에서는 고기와 붉은 고추를 중심으로 한 ‘볼 오브 레드(bowl of red)’가 지역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옛 산안토니오의 음식 풍경은 한층 폭넓었다. 칠리 퀸들은 칠리와 함께 콩 요리도 팔았다. 오늘날 칠리 논쟁에서 선명하게 갈리는 두 음식이 당시 노점 메뉴에서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놓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콩은 재료 이상의 의미를 얻었다.
어떤 고기를 쓰는지, 고추의 향은 얼마나 강해야 하는지, 소스의 농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사람들이 ‘우리 지역의 칠리’를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음식 안에도 경계가 생겼다. 콩은 그 경계를 가장 눈에 띄게 보여주는 재료가 됐다.
그래서 텍사스의 콩 논쟁은 취향을 넘어 지역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칠리가 이미 ‘우리 방식’을 따질 만큼 텍사스 사람들의 음식으로 깊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음식이 먼저였고, ‘텍스멕스’라는 이름이 뒤따랐다
오늘날 칠리 콘 카르네는 텍스멕스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Tex-Mex’가 음식 장르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기 전부터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멕시코계 조리법과 텍사스의 식재료, 앵글로계 소비시장, 미국의 식품산업이 산안토니오의 광장과 텍사스의 식당, 가정의 부엌에서 맞물리며 하나의 지역 식문화를 만들었다. 후대의 ‘텍스멕스’라는 이름은 이미 존재하던 흐름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준 셈이다.
칠리 콘 카르네는 그 과정을 한 그릇 안에서 선명하게 보여준다.
1977년, 한 그릇이 텍사스의 상징이 되다
20세기 중반, 칠리는 식탁에서 요리대회로 무대를 넓혔다. 1967년 텍사스 테를링구아에서 열린 칠리 챔피언십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칠리가 한자리에 모였다. 어떤 고기를 쓸지, 고추를 어떻게 배합할지, 어느 정도 농도로 끓일지를 두고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을 내세웠다.
요리대회가 이어질수록 ‘텍사스다운 칠리’라는 기준도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1977년 텍사스 제65대 주의회는 칠리를 ‘Texas State Dish’, 텍사스주의 공식 음식으로 지정했다.
1977년 텍사스주가 칠리를 공식 주 음식으로 지정했을 때, 그 한 그릇에는 이미 오랜 변화가 쌓여 있었다. 멕시코계 여성들이 산안토니오 광장에서 팔던 음식은 앵글로계 주민과 여행객을 만나 소비층을 넓혔고, 칠리 파우더와 통조림은 그 맛을 미국 각지의 가정으로 옮겼다. 이후 식당과 요리대회에서는 무엇이 ‘텍사스다운 칠리’인지에 대한 기준까지 만들어졌다.
그래서 칠리 콘 카르네가 텍사스의 상징이 된 과정은 한 음식의 기원을 둘러싼 이야기라기보다, 음식이 새로운 장소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를 얻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에 가깝다. 멕시코계 식문화에서 출발한 칠리는 산안토니오의 광장과 텍사스의 식품산업, 지역 사람들의 취향을 거치며 하나의 지역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1977년의 공식 지정은 그 긴 과정의 결과였다. 멕시코계 뿌리를 품은 음식이 텍사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는 사람과 시장, 산업과 지역의 취향이 차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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