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전통주 보내기 시작
[Cook&Chef = 신현우 기자] 추석이 다가오면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어떤 선물을 전할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에는 명절 선물을 주고받는 관례가 예전보다 간소해지고 있지만,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나누는 방법으로 선물과 따듯한 인사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이러한 명절 선물은 개인 사이에서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명절은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어 왔다. 역대 대통령들 역시 설과 추석을 맞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비롯해 사회 각계 인사와 어려운 이웃 등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왔다.
대통령의 선물은 개인이 주고받는 명절 선물과는 조금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무엇을 선택해 누구에게 전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사회적 메시지가 함께 담긴다. 지역의 특산물을 고르는 일은 해당 지역과 생산자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전통문화와 관련된 품목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결국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현 정부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방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올해 추석 선물에서도 이러한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유공자, 호국영웅, 사회적 배려계층, 산업재해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사회 각계 인사들에게 전국 각 지역의 특산품으로 구성한 명절선물을 지난 16일 전달했다.
이번 선물은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구상의 특색을 반영해 전국 각 지역의 특산품을 한데 모은 것이 특징이다. 영•호남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비롯해 각 권역의 먹거리 특산품을 함께 구성함으로써 지역과 세대를 넘어 상생과 통합을 이루고 모든 국민이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담았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전북 전주의 이강주와 경북 안동의 소주다 . 서로 다른 지역을 대표하는 두 전통주가 한상자에 나란히 담겼다는 점에서도 이번 선물의 상징성이 드러난다.
청와대는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주를 선물에 담아 조상을 기리고 가족과 이웃이 서로의 안녕을 기원해 온 명절의 의미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산나물과 버섯류를 비롯한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과류를 더해 명절의 풍요로움도 함께 담았다.
결국 이번 추석선물에서 전통주는 단순한 지역 특산품이 아닌,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술을 통해 명절의 전통성과 공동체적 의미를 드러내는 동시에 영•호남의 대표 술을 함께 구성해 지역 간 상생과 통합이라는 메시지까지 더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명절 선물에서 술은 꽤 흥미롭다. 쌀, 과일, 수산물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인 동시에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추석 선물상자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복분자주부터 오메기술, 청명주 등 여러 지역의 술이 담겨있었다. 어떤 때는 지역 화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때로는 지역 농산물 소비와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술이 선택되어 왔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 우리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은 한병의 술에 어떤 의미를 담아왔을까?
먼저 추석 선물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통령기록관의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73년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정수직업훈련원의 추석 행사를 위해 격려금 20만원과 동태 60상자를 전달했다. 1982년에는 전두환 정부에서는 중동과 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수건을 보냈다. 오늘날처럼 전국의 특산품을 한데 모으기보다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던 시기다.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 전통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부터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다섯 차례의 추석 가운데 네 차례 전통주를 선물에 담을 만큼 우리술을 명절 선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3년 취임 후 첫 추석에는 지리산 복분자주를 시작으로 2004년 한산소곡주, 2005년 문배주, 2007년 이강주를 선택했다. 2006년 추석에만 술 대신 전국 각 지역의 전통차와 다기 세트를 선물했다.
특히 당시 전통주는 단순히 지역의 유명한 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지역의 농특산물과 함께 한 상자에 담기며 지역 화합과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한 병의 우리술을 통해 그 지역의 농산물과 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여러 지역을 하나의 선물상자 안에서 연결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서 전통주의 존재감이 다시 옅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정부 차원에서는 오히려 우리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지원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한식세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고, 2010년에는 한식의 진흥과 해외 확산을 위한 한식재단이 출범했다. 한식을 국가 브랜드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서는 전통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국 각지의 농축수산물과 지역 특산품이 선물의 중심을 이뤘다. 우리 음식과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리려는 정책적 움직임이 이어졌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추석 선물이라는 상징적인 자리에서 우리의 문화가 담긴 전통주는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때 부터 전통주는 추석 선물에 꾸준히 등장했다. 2018년 제주 오메기술을 시작으로 2019년 한산소곡주, 2020년 담양 대잎술, 2021년 충주 청명주까지 4년 연속 우리술이 선택됐다. 특히 대잎술과 청명주는 각 지역 특산물과 함께 구성되며 지역의 농업과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2024년 진주 도라지약주와 거제 유자약주가 추석 선물에 담겼다. 윤석열 정부는 그 취지를 ‘전통주 산업 활성화와 지역 특산물 소비 촉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는 전주의 이강주와 경북 안동의 안동소주가 나란히 선택돼 영•호남의 상생과 통합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졌다.
결국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 담긴 술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시대마다 다른 메시지를 품어왔다. 지역 화합에서 농산물 소비 촉진과 전통주 산업 활성화와 균형발전까지, 추석선물에 담긴 우리술에는 그 술을 빚어온 지역의 시간과 함께 정부가 전하고자 했던 시대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었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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