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1호점 문 닫고 한동안 통영 생활
[Cook&Chef = 신현우 기자]이승훈 대표는 전통주를 업으로 삼기 전에 술과 음식을 찾아 전국을 다닌 식품 MD였다. 2010년 회사를 나온 뒤 막걸리를 배우고 직접 빚었으며,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취미로 시작한 일은 협회 운영과 품평회 심사, 교육과 정책 관련 활동으로 넓어졌다. 2016년 6월 문을 연 압구정 백곰막걸리는 그 시간이 모인 공간이었다.
당시 전통주 전문점은 드물었다. 이 대표는 막걸리뿐 아니라 약주와 증류주까지 한곳에서 비교하고 고를 수 있도록 술을 구성했다. 내한하는 각국의 양조인에게 우리 술을 설명했고, 백곰의 성공을 본 뒤 전국에 여러 전통주 전문점들이 생겨났다. 압구정에서 보낸 7년 10개월을 마친 뒤에는 통영으로 내려갔다. 1부에서는 이승훈이 전통주를 만나 ‘백곰’으로 활동하게 된 과정, 압구정 1막이 남긴 변화, 통영의 식문화에서 배운 기준을 들었다.
Q1. 오래 아는 분들은 ‘이승훈’이라는 이름과 함께 ‘백곰’이라는 이름이 먼저 생각납니다. 대표님을 모르시는 독자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6년 6월 압구정에 백곰막걸리1막에 이어 지금은 광화문에서 백곰막걸리 2막을 운영하며 전통주와 한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Q2. ‘백곰’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주를 소개해 온 일은 대표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전통주만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술이라고 생각하는 국수주의자는 아닙니다. 와인과 위스키, 사케, 맥주도 좋아하고 술을 음식 문화와 사람을 잇는 매개로 봅니다. 다만 좋은 전통주와 노력하는 양조인이 많은데도 정작 우리 사회가 우리 술에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백곰’이라는 이름으로 해온 일은 전통주를 무조건 높이는 일이 아니라, 다른 술과 당당히 비교되고 자연스럽게 선택 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Q3. 식재료 유통과 외식 현장을 거쳐 전통주 전문점과 교육 활동까지 이어오셨습니다. 여러 경험 가운데 지금의 자신을 만든 시간은 언제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식품 MD로 전국을 다니며 지역 음식과 술을 접한 시간, 그리고 2010년 이후 여러 양조장을 직접 찾아다닌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배우러 다녔지만 20~30곳 이상의 양조장을 찾고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내야 하는 역할로 바뀌었습니다. 취미와 관심이 전문성이 되고 직업이 된 시기였습니다.
Q4. 대표님께 전통주는 처음부터 업이었기보다, 어느 순간 깊이 빠져들게 된 세계였을 것 같습니다. 전통주를 본격적으로 바라보게 된 시작점은 어디에 있었나요?
원래 술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막걸리를 소주나 맥주보다 좋아했습니다. 2010년 외식업에 도전하고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직장을 그만뒀는데, 마침 막걸리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전통주를 사업 아이템으로 먼저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기관에서 술을 배우고, 직접 빚고, 인문학 강의를 듣고, 양조장을 찾아다니면서 점점 깊이 들어갔습니다.
Q5. 한 병의 술을 볼 때 맛뿐 아니라 지역, 재료, 만든 사람의 태도까지 함께 보실 것 같습니다. 좋은 술을 만났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기본은 맛있는 술입니다. 여기에 전통주로서 소개할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술과 제조 문화를 계승하는 민속주인지, 지역 재료와 생산자를 중심에 둔 지역특산주인지도 봅니다. 주재료를 충분히 국산으로 쓸 수 있는데도 수입산을 쓰거나, 주정 사용처럼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어긋나는 요소가 있는지도 살핍니다.
Q6. 압구정 백곰막걸리는 많은 사람에게 전통주를 새롭게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대표님께 그 공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당시에는 전국의 전통주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추천하는 공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백화점이나 박물관, 도서관처럼 술을 분류해 펼쳐놓고 소비자가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압구정 백곰막걸리는 그 구상을 현실로 만든 공간입니다. 1막의 종료는 영업 실패 때문이 아니라 건물이 매각되면서 공간을 비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Q7. 압구정 백곰막걸리는 술의 종류가 많은 공간이기도 했지만, 전국의 전통주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방식이 중심에 있었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팔도 막걸리 전문점이 지역 막걸리의 다양성을 처음 알렸다면, 백곰막걸리는 약주와 증류주까지 범위를 넓혀 다양한 전통주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려 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술과 지역 양조장을 소개하는 소비자들과의 소통 기능도 컸습니다.
Q8. 지금 돌아보면 1막의 백곰막걸리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인가요?
전통주 전문점이 하나의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든 점입니다. 이후 백곰막걸리를 보고 전통주 전문점을 열었다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 공간의 성과를 넘어 전통주를 판매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Q9. 압구정 백곰막걸리 이후 광화문에서 다시 문을 열기까지, 대표님께는 또 다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이었나요, 다시 준비하는 시간이었나요?
둘 다였습니다. 압구정 백곰막걸리를 7년 10개월 가까이 운영한 뒤 휴식이 필요해 통영으로 내려갔습니다. 동시에 통영의 음식과 식재료를 배우고, 경상남도의 술을 현지에서 소개하는 로컬형 전통주 공간을 준비했습니다. 통영에서 성공 모델을 만든 뒤 여수, 경주, 안동, 양양 등 다른 지역으로 넓히고 싶었습니다. 다만 지역 경기와 관광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계획을 잠시 보류하고 서울에서 2막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Q10. 통영에 처음 갔을 때 만난 맛과, 대표님을 그곳에 머물게 한 통영의 맛은 무엇이었나요?
통영의 맛을 한 가지 음식으로 꼽기는 어렵습니다. 통영은 경상남도 음식이면서 바다와 결합된 맛을 가졌고, ‘경상도의 전라도’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호남 음식의 영향도 섞여 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군사도시였기 때문에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사람과 문화가 유입됐고, 식문화에도 개방성과 다양성이 생겼습니다. 통영 앞바다뿐 아니라 남해안 각지의 수산물이 모이고, 고성 등 인근 내륙의 농산물도 들어옵니다. 붉은살생선과 흰살생선, 패류, 갑각류, 굴 등 수산물과 노지 농산물이 워낙 다양해 축산물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저를 머물게 한 것은 특정한 한 접시보다 좋은 재료의 폭과 그것을 다루는 통영의 높은 식문화였습니다.
Q11. 압구정 백곰막걸리가 1막이었다면, 광화문 백곰막걸리 2막은 대표님께 어떤 의미의 시작인가요?
통영에서 로컬 모델을 만들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잠시 뒤로 미루고, 서울에서 다시 영향력을 확보하는 시작입니다. 압구정에서 국내 소비자에게 전통주의 다양성을 알렸다면, 광화문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술과 한식을 제대로 소개하는 역할을 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이후 다시 지역으로 나아가기 위한 본진이기도 합니다.
Q12. 이번 공간을 준비하며 술, 음식, 분위기 가운데 가장 오래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술은 단순히 종류를 늘리는 것보다 어떤 체계로 보여줄지를 고민했습니다. 음식은 억지로 퓨전하지 않고 좋은 지역 재료와 한식의 기본을 살리는 방향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공간은 1막의 한계를 보완해 시음회뿐 아니라 포럼, 공연, 다양한 행사를 열 수 있도록 했고, 주차와 접근성, 오피스 상권과 관광객 유입까지 함께 고려했습니다.
Q13. 전통주 전문숍에서도 구매하기 어려운 희소성 높은 전통주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손님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통주를 알리고 싶으신가요?
2막에서는 신제품만 빠르게 들여놓는 경쟁보다, 검증된 스테디셀러를 중심에 두고 일정 비중의 신제품과 희소한 술을 함께 구성하려 합니다. 맛과 전통주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리스트를 만들고, 현재 전통주의 전체 모습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월별 판매 순위도 공개해 다른 손님들의 실제 선택이 추천 정보가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Q14. 백곰막걸리 2막은 술이 있어 음식이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백곰의 음식은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전통주에 퓨전한식이나 화려한 음식을 앞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두부와 김치, 지역의 건어물처럼 재료 자체가 좋은 한식을 제대로 내고 싶습니다. 궁중이나 반가 음식만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두부김치와 김치전처럼 익숙한 메뉴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지역성과 대중성을 갖춘 한식 안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Q15. 앞으로 백곰막걸리 2막을 통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광화문 공간의 장점을 살려 시음회뿐 아니라 포럼,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싶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전통주와 한식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반도 만들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통영에서 지역 음식과 지역 술을 함께 알리는 성공 모델을 만들고, 지역 외식업자에게 전통주 교육과 판매 방법을 나누는 계획도 계속 갖고 있습니다.
Q16. 시간이 지나 누군가 광화문 백곰막걸리를 떠올릴 때, 어떤 장소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전통주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장소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상권과 콘셉트, 좋은 안주를 제대로 갖추면 전통주점이 여전히 경쟁력 있는 외식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되고 싶습니다. 국내외 방문객이 광화문에서 우리 술을 제대로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광화문 백곰막걸리 2막은 그 가능성을 다시 시험하는 공간이다. 좋은 술을 고르는 기준, 재료를 앞세운 한식 안주, 술을 설명하는 사람과 경험하는 손님이 이곳을 채운다. 백곰의 다음 장면은 광화문 한곳의 성과보다, 우리 술이 일상의 선택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