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신현우 기자] 최근 몇 년간 우리 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탁주와 약주는 물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지역특산주, 오래된 문헌 속 제조법을 복원한 술까지 다양한 우리 술이 다시 소비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국내 여행객에게 지역 전통주를 지역 음식과 함께 맛보는 것은 여행의 주요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역의 ‘찾아가는 양조장’을 직접 방문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지역문화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술을 직접 빚는 일은 일부 양조가의 전문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에게 술은 생활의 일부였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주(祭酒)를 빚었고,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술상을 차렸다. 농사철에는 새참과 함께 농주(農酒)를 나눴으며, 혼례나 회갑 같은 집안의 행사에도 어김없이 술이 빠지지 않았다. 집안마다 사용하는 쌀과 누룩이 달랐고, 사용하는 물과 빚는 방법도 달라 한 집안의 술맛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 전해졌다.
이를 가양주(家釀酒) 문화라고 한다.
가양주는 단순히 ‘집에서 만든 술’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에서 생산된 곡식과 물, 집안에서 내려오는 주방문(酒方文·술을 빚는 재료와 분량, 순서와 방법 등을 기록해 놓은 제조법)과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발효기술이 한데 모인 생활문화였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밑술을 만드는 방법과 덧술의 횟수, 누룩의 양, 물의 비율과 발효기간을 달리하며 전혀 다른 술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우리의 가양주 문화는 왜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큰 변곡점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찾아왔다.
1909년 주세법이 제정되면서 근대적인 주세제도가 도입됐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당시 주세법은 주류를 제조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6년 주세령이 시행되면서 면허를 받은 곳을 중심으로 술을 생산하는 체계가 강화됐다.
이에 더해 1930년대에는 자가용 술 제조면허가 폐지되면서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는 제도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집집마다 빚어오던 가양주는 허가받지 않은 술, 이른바 ‘밀주’가 되어 단속의 대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하던 술 빚는 방법도 점차 끊겨갔다. 기록보다는 경험과 손맛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가양주 문화의 특성상 한두 세대의 단절은 수백 년 동안 축적된 발효기술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에도 가양주 문화가 곧바로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자리 잡은 주류 면허와 주세 중심의 관리체계가 상당 기간 이어졌고, 전쟁과 산업화, 식량 부족까지 겹치면서 우리 술은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된다.
특히 1960년대 정부의 양곡정책은 우리 술의 원료와 제조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양곡관리법은 양곡의 수급을 조절하고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963년 양곡관리법에도 ‘양곡의 수급조절과 적정가격을 유지함으로써 국민식량의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식량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쌀을 술로 만드는 것보다 국민의 주식으로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중반부터 주류 제조에 쌀을 사용하는 것이 제한됐고, 약주와 탁주를 비롯한 우리 술 역시 영향을 받았다.
쌀 사용 제한은 증류식 소주가 위축되는 동안 주정을 물에 희석해 만드는 희석식 소주와 대량생산되는 맥주가 대중적인 술로 자리 잡았다. 그 사이 집집마다 저마다의 맛을 지니고 있던 가양주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집에서 소비할 목적으로 술을 빚는 것이 다시 허용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5년 자가소비를 목적으로 한 가양주 제조가 허용되면서 오랫동안 제도 밖에 놓여 있던 가양주가 다시 생활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긴 단절을 지나 지금, 사람들은 다시 우리 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는 우리나라 음주문화가 변화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식과 모임이 줄어들면서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과 혼자 술을 즐기는 ‘혼술’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해 천천히 즐기는 소비방식도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주류산업 조사에서도 코로나19 이후 홈술과 혼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에서 ‘즐기기 위해 마시는 술’로 음주문화가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통주 시장은 2016년 이후 성장세를 보였으며 코로나19 이후 탁주와 약주 등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혼술을 둘러싼 소비자의 인식에서도 ‘고급’이라는 표현이 크게 늘었다. aT의 2021년 주류시장 트렌드 분석에서 혼술과 관련한 긍정적 표현 가운데 ‘고급’이 상위권에 등장한 것도 이러한 소비 변화를 보여준다.
전통주는 이러한 변화와 잘 맞아떨어졌다.
대량생산되는 술과 달리 지역의 쌀과 누룩, 과실 등 서로 다른 원료를 사용하고 양조장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진 우리 술은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한 병씩 선택하고 천천히 맛보기에 좋은 술이었다. 2017년부터 일정 요건을 갖춘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것도 이러한 변화에 힘을 보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확대되자 온라인 판매는 지역 양조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2020년 당시 혼술·홈술과 비대면 소비의 확산으로 온라인 판매가 전통주 업체의 중요한 판로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의 생활에서 멀어졌던 술이 다시 사람들의 식탁으로 돌아오고 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마시는 우리 술을 단순히 ‘옛것의 부활’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지난 시간이 너무 길다.
한 세기 가까운 단절 속에서 수많은 술과 주방문, 그리고 그것을 전하던 사람들의 경험이 사라졌다. 오늘날 옛 문헌을 토대로 술을 복원하고, 전통 누룩을 연구하며, 다시 지역의 쌀로 술을 빚으려는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주류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사를 앞두고 술을 빚고, 손님을 기다리며 술독을 열고, 농사일을 마친 뒤 이웃과 농주 한 잔을 나누던 오래된 생활문화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한때 집집마다 있던 술독은 역사의 굴곡 속에서 우리 곁에서 사라졌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문화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옛 주방문을 펼치고, 누군가는 누룩을 띄우며, 또 누군가는 지역에서 난 쌀로 다시 술을 빚고 있다.
오랜 시간 닫혀 있던 우리의 술독이 다시 열리고 있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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