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에 담긴 시대의 변화
[Cook&Chef = 신현우 기자] “소주 한 잔할까?”
물론 “술 한 잔할까?”라는 말도 흔하게 쓰이지만, 술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서도 조금 더 익숙한 말은 “소주 한 잔할까?”가 아닐까 싶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더라도 퇴근 후 식당이나 집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술이 소주다. 좋은 일이 있는 날에는 기쁨을 나누는 술이 되고,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술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소주는 오랜 시간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자리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됐을까.
우리가 소주라고 부르는 술은 크게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눌 수 있다.
증류식 소주는 쌀과 같은 곡물을 발효시켜 술을 빚고 이를 다시 증류해 만든다. 반면 희석식 소주는 높은 도수의 주정에 물을 섞어 원하는 도수로 낮추고 감미료 등을 더해 만든다.
오늘날 식당과 편의점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소주 대부분이 바로 이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의 시작을 1965년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보다 앞서 존재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19년 평양에 세워진 '조선소주'에서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희석식 소주 중심의 시장이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1960년대부터다.
당시는 지금처럼 쌀이 남지 않았다.
먹을 곡식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였고, 정부는 쌀을 비롯한 양곡을 술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했다. 1965년 양곡관리 정책에 따라 곡물을 이용한 증류식 소주 생산이 크게 위축되면서 그 자리를 고구마와 당밀 등을 이용해 만든 주정을 물에 희석하는 소주가 채우게 된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희석식 소주는 풍요보다는 부족했던 시대의 사정 속에서 대중화된 술이었다.
고구마에서 타피오카까지, 소주의 원료도 시대를 따라갔다.
그렇다면 소주를 만드는 ‘주정’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주정이라고 하면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알코올을 떠올리기 쉽지만, 식음용 발효주정은 농산물을 발효한 뒤 증류·정제해 만든다. 원료로는 쌀이나 보리, 밀 같은 곡류와 고구마, 타피오카 같은 전분질 원료 등이 사용될 수 있다.
희석식 소주가 자리 잡던 1960~70년대에는 그중에서도 고구마가 중요한 원료였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고구마는 단순한 구황작물이 아니라 녹말과 알코올을 생산하는 공업 원료로도 적극 활용됐다. 1965년 정부가 제작한 고구마 재배 영상에서도 고구마를 ‘알코올을 만드는 공업원료’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말린 고구마인 절간고구마 역시 주정공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주정의 원료도 달라졌다. 국내 고구마 생산량이 줄고 가격 경쟁력의 문제가 생기는 가운데 수입 원료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카사바를 말린 타피오카 칩이 중요한 주정 원료로 자리 잡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서는 한때 주정 원료의 80% 이상을 타피오카에 의존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이후의 자료에서도 이런 변화는 뚜렷하다. 1992년 5만여 톤이던 타피오카 사용량은 2000년 26만여 톤으로 늘어난 반면, 생고구마와 절간고구마의 사용량은 크게 줄었다. 고구마밭에서 시작했던 소주의 원료가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온 타피오카로 옮겨간 셈이다.
이후에도 타피오카는 국내 주정 생산의 대표적인 원료로 자리 잡았다. 물론 오늘날 주정이 타피오카 하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미와 보리 등 국내산 곡물도 사용되고, 해외에서 들여온 조주정을 정제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주 한 병의 역사에는 우리의 식량 사정뿐 아니라 농업의 변화와 산업화가 함께 담겨 있다.
원료가 달라진 것처럼 소주의 도수 역시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희석식 소주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65년 진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0도였다. 지금의 소주를 생각하면 상당히 독한 술이다.
희석식 소주가 자리 잡으면서 도수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1965년 30도였던 소주는 1973년 25도로 낮아졌다. 당시 대부분의 소주가 30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 번에 5도를 낮춘 것은 꽤 큰 변화였다.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되면서 도수를 조절하기 쉬워진 데다, 보다 부드럽고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을 만들려는 시장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였다. 이후 25도 소주는 오랜 시간 ‘소주는 25도’라는 인식을 만들 정도로 하나의 기준이 됐다.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1998년 23도인 ‘참이슬’이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유지되던 25도의 벽이 무너졌다. 이후 2001년 22도, 2004년 21도로 내려갔고, 2006년에는 20도인 ‘처음처럼’이 등장했다. 같은 해 무학이 16.9도의 ‘좋은데이’를 선보이면서 소주 시장의 저도화 경쟁은 더욱 빨라졌다.
30도였던 희석식 소주가 25도를 거쳐 20도 아래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6년에는 참이슬 후레쉬가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아졌고, 처음처럼 역시 9월 16도에서 15.7도로 도수를 조정했다. 최근 새롭게 출시된 제품 중에는 15도의 희석식 소주도 등장했다.
1965년의 30도와 비교하면 반세기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도수가 거의 절반 수준까지 내려온 셈이다.
물론 도수가 낮아진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업체 간 경쟁도 있었고, 보다 부드러운 맛을 찾는 소비자의 선호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주류회사들은 ‘취하는 음주’보다 ‘즐기는 음주’로 변화하는 소비 흐름을 저도화의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소주의 도수 변화는 우리가 술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과거의 소주가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단번에 넘기는 강한 술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술자리에서는 강한 취기보다 음식과 함께 가볍게 즐기는 방식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30도에서 25도, 다시 20도를 지나 15도대로.
숫자 몇 개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달라진 우리의 술자리 풍경도 함께 담겨 있다.
소주잔에 담긴 우리의 시간
희석식 소주는 산업화와 함께 우리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공장과 건설현장이 늘어났다. 하루 일을 마친 뒤 삼겹살이나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는 술이었다.
1970년대에는 소주 산업 자체도 재편됐다.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자 정부는 소주 제조업체를 통폐합했고, 지역별로 특정 소주 회사가 자리 잡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수도권의 진로, 부산의 대선, 경남의 무학, 전남의 보해 등 지역마다 익숙한 소주가 달라진 배경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다. 그렇지만 소주가 우리에게 이토록 익숙해진 이유를 제조법이나 가격, 도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생각해보면 소주는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었다.
첫 월급을 받고 기쁜 마음에 기울였던 한 잔도 있었을 것이고,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날 답답한 마음으로 마셨던 한 잔도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둔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에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찾은 술집의 테이블에도 소주는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주 한잔하자”라는 말에는 단순히 술을 마시자는 의미만 담겨 있지 않다.
“무슨 일 있어?”
“이야기 좀 하자.”
때로는 이런 말을 대신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소주는 계속 변해왔다.
고구마로 만들던 주정은 타피오카와 여러 원료로 다양해졌고, 30도였던 술은 25도를 지나 어느새 15도대까지 내려왔다. 병도 달라졌고 맛도 달라졌다.
우리의 삶도 그만큼 변했다.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잔을 채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나누는 한 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달래는 한 잔이었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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