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승우 기자]
한국 주점가를 강타한 ‘소토닉(소주+토닉워터)’이나 하이볼 열풍 이전에, 일본에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소주에 탄산수와 과즙을 타서 즐기는 ‘사와(サワー)’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독하고 무거운 술을 기피하는 최근의 ‘저도수’ 음주 트렌드와 맞물려, 사와는 이자카야의 터줏대감을 넘어 주류 시장 전체를 견인하는 완벽한 대세로 군림하고 있다.

전후 서민의 애환 달래던 술, 3조 원대 RTD 시장 이끌다
일본 메뉴판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사와는 영어 단어 ‘Sour(신맛)’에서 유래했다. 증류식 소주에 청량한 탄산수와 감귤류 과즙을 섞어낸 일종의 ‘일본식 소주 하이볼’이다.
이 가볍고 맛있는 술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팍팍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물자가 부족해 질 낮고 독한 소주를 마셔야 했던 서민들이, 술의 양을 늘리고 쓴맛을 감추기 위해 탄산수와 저렴한 과일 시럽을 타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사와의 시초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달래주던 이 가성비 술은 현대에 이르러 생과일을 통째로 짜 넣는 프리미엄화와 3~5% 안팎의 저도수 트렌드를 등에 업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일본 주류업계 데이터에 따르면, 사와를 필두로 한 일본의 RTD(Ready To Drink·캔 칵테일) 시장 규모는 연간 약 3조 원(약 3,000억 엔)을 훌쩍 넘어서며 10년 이상 연속 성장을 기록 중이다. 특히 국민 술로 불리는 ‘레몬 사와’는 전체 RTD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약 50~60%)을 거뜬히 차지하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가을 미식의 절정, 아오모리 ‘사과 사와’와 가리비 버터구이
특유의 산뜻함과 청량한 탄산 덕분에 기름진 야키토리(닭꼬치)나 튀김에 곁들일 때 최고의 마리아주를 자랑하는 사와는 지역 특산물과 결합해 더욱 다채로워진다. 8월 말부터 수확하는 도쿠시마현(徳島県)의 특산물 ‘스다치(영귤) 사와’가 단맛 없이 깔끔한 산미로 가을 꽁치구이와 훌륭한 합을 낸다면, 가을 미식의 절정은 단연 사과의 명산지 아오모리현(青森県)에서 만나는 ‘사과 사와(링고 사와)’다.
아오모리의 사과 사와는 인위적인 과일 시럽 대신 갓 수확한 가을 사과를 통째로 즙을 내거나 갈아 넣어 만든다. 제철 과일 본연의 은은한 향긋함과 기분 좋은 달콤함이 잔 가득 채워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달달하고 청량한 사과 사와에는 아오모리의 또 다른 명물인 통통한 ‘가리비 버터구이(호타테 버터야키)’나 짭조름한 ‘돼지고기 간장조림(부타 카쿠니)’을 곁들여보자. 버터와 고기의 묵직하고 기름진 감칠맛을 사과의 상큼한 탄산이 깔끔하게 씻어내며 무한대의 젓가락질을 부른다.

연차 낸 직장인의 체력을 지켜주는 스마트한 반주
귀한 연차를 내고 비행기에 오른 직장인에게 여행지의 1분 1초는 아쉽기만 하다. 늦은 밤까지 현지 이자카야의 낭만을 흠뻑 즐기고 싶지만, 다음 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반드시 여행할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만 한다.
무거운 숙취로 금쪽같은 여행의 아침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사와를 선택해 보자. 3~5% 남짓의 부담 없는 도수로 기분 좋은 취기만 선사하는 시원한 사와 한 잔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밤의 미식과 다음 날의 컨디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한국의 직장인 여행객에게 가장 완벽하고 스마트한 반주(飯酒)가 되어줄 것이다.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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