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과 계급, 소비 지상주의에 대한 풍자
[Cook&Chef = 조소현 기자] 일생에 한 번 맛보기 힘든 미식의 정점. 외딴 섬에 자리한 유명 셰프 '줄리언 슬로윅(랄프 파인스 역)'의 레스토랑 ‘호손’이다. 한 사람당 1,250달러에 달하는 코스요리가 제공되는 이곳에 초대받은 상류층 손님들이 모인다.
남자친구 '타일러(니콜라스 홀트 역)'의 손에 이끌려 주인공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 역)'도 이 특별한 저녁에 합류한다.
영화는 미식 코스와 함께 이야기를 내놓는다.
코스의 첫 번째 메뉴는 ‘더 아일랜드(The Island)’다. 섬에서 채취한 재료에 차가운 여과 해수가 녹아내리며 음식의 간이 된다. 슬로윅은 인간보다 자연이 완벽하다는 호손의 미식 철학을 선보인다.
두 번째 코스 ‘브레드리스 브레드 플레이트(Breadless Bread Plate)’에는 빵과 함께 먹을 소스와 곁들임만 놓여 있고 빵은 없다. 쌀밥 없는 백반이라고나 할까.
슬로윅은 빵이 오랫동안 평범한 사람들의 음식이었으며, 이 자리에 모인 손님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빵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허영과 계급의식으로 가득찬 상류층들을 핵심이 빠진 음식으로 풍자한 것이다.
이어지는 세 번째 메뉴는 ‘메모리(Memory)’다. 슬로윅은 메뉴를 선보이며 손님들 사이에 앉아 있던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하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허벅지에 가위를 꽂았던 이야기를 꺼낸다. 작은 가위가 꽂힌 닭다리 요리는 이 이야기를 재현했다.
여기에 손님들이 숨겨온 비밀을 담은 그림이 새겨진 토르티야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서로의 치부를 확인한 손님들 사이에는 의심과 불안이 번지고, 평온했던 식탁은 서로를 경계하는 자리로 변한다.
이때부터 호손의 메뉴는 음식과 복수의 경계를 넘나든다. ‘더 메스(The Mess, 난장판)’에서는 완벽함을 요구받는 주방의 노동과 셰프의 압박이 드러난다. ‘맨스 폴리(Mankind’s Folly, 남자의 어리석음)’는 남성의 폭력성과 허세를 겨냥한다.
이어 슬로윅은 미식가를 자처하며 자신의 요리를 숭배하던 타일러에게 직접 요리하게 한다. 음식에 대한 지식과 취향을 과시해온 타일러가 형편없는 요리를 만들어내자, 이 요리에 ‘타일러의 불셧(Tyler’s Bullshit, 타일러의 헛소리)’이라는 조롱을 섞은 이름을 지어준다.
영화는 아름답지만 기괴하게 플레이팅 된 고급 식재료, 철학적 설명이 붙은 접시들을 연달아 보여주지만 그 음식들은 식욕을 자극하기보다 긴장감을 만든다.
미식의 본질을 잃은 손님들은 이 음식들을 가격에 비례해 머릿속에서 해부해야 하는 개념처럼 받아들인다. 관객은 계속 음식을 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굶주리게 된다.
그때 마고가 코스에 없던 음식을 따로 주문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화려한 코스도, 철학적인 설명도, 값비싼 식재료도 아닌 평범한 치즈버거다.
어느샌가 미식은 음식 자체의 즐거움에서 멀어져 부자들의 과시를 위한 도구가 됐다. 셰프를 예술가로 존중하기보다, 유명 셰프의 음식을 소비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시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세계적인 셰프로 이름을 알릴수록 슬로윅을 찾는 손님들에게 그의 음식은 '성공의 지표' 쯤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런 슬로윅은 그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을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슬로윅은 마고에게 직접 치즈버거를 만들어주며, 처음 음식을 만들며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느낀다.
영화 <더 메뉴>가 묻는 것은 좋은 음식이 얼마나 비싸고 정교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음식은 언제부터 맛보다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되었고, 셰프는 언제부터 음식을 만드는 사람보다 소비해야 할 이름이 되었을까. 마고의 치즈버거 주문은 그 질문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되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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