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시간 사람 등도 한 장면으로 연상
보이지 않는 냄새가 가장 오래 남는 이유
[Cook&Chef = 류효일 칼럼니스트] 카페나 호텔에 들어섰을 때 특별한 장면을 보기도 전에 익숙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갓 볶은 원두 향, 은은한 우디 향, 갓 구운 빵 냄새가 공간의 첫인상을 만든다. 때로는 그 향만으로도 어느 장소인지, 어떤 브랜드인지 떠올린다.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다.
시각과 청각은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간판을 보고, 음악을 듣고, 메뉴를 읽으면서 공간을 판단한다. 반면 향기는 훨씬 빠르게 감정과 기억에 접근한다. 후각 정보는 뇌에서 감정과 기억에 관여하는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특정 향이 과거의 장면이나 감정을 갑자기 불러내기도 한다. 오래전 맡았던 비누 향에서 어린 시절의 집을 떠올리거나, 빵 냄새를 통해 등굣길의 기억을 되살리는 경험이 그렇다.
이 현상은 흔히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과 향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내는 장면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심리학자 레이철 허즈(Rachel Herz)와 윌리엄 엥겐(William Engen)은 향으로 유발된 기억이 다른 감각 자극으로 떠오른 기억보다 감정적으로 더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정이 붙은 기억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이 특성을 오래전부터 활용해왔다. 호텔 로비의 시그니처 향, 백화점의 화장품 향, 베이커리 앞을 채우는 빵 냄새, 카페의 원두 향은 모두 공간의 정체성을 만든다. 고객은 브랜드 로고를 보지 않고도 특정 향을 통해 그곳을 떠올릴 수 있다.
서비스 마케팅 전문가인 메리 조 비트너(Mary Jo Bitner)의 ‘서비스 스케이프(Servicescape)’ 이론도 이를 설명한다. 서비스 공간의 조명, 음악, 온도, 가구와 같은 물리적 환경이 고객의 감정과 행동, 서비스 평가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향기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같은 인테리어라도 상쾌한 시트러스 향이 나면 밝고 활기차게 느껴지고, 우디나 머스크 계열의 향이 나면 차분하고 고급스럽게 인식될 수 있다.
그렇다고 향기를 사용하는 일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향이 지나치게 강하면 편안함보다 피로감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 좋은 향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 고객이“무슨 향이지?”라고 의식하기보다“이곳은 편안하다”, “깨끗하다”, “고급스럽다”라고 느끼게 한다. 향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경험의 배경에 머물 때 더 오래 기억된다.
향기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향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의 성격과 일치하는 향을 설계하는 일이다. 자연과 건강을 강조하는 브랜드에는 풀과 나무, 시트러스 계열이 어울릴 수 있고, 오래된 역사와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공간에는 가죽이나 나무 등의 소재가 적합할 수 있다. 향기는 제품을 설명하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또 다른 언어다.
직접적 설명보다는 감정을 경험하도록 설계
여기서 PR의 중요한 원칙이 드러난다. 브랜드는 자신을 직접 설명할 수도 있지만, 소비자가 특정한 감정을 경험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편안한 브랜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편안한 향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사람은 브랜드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오래 간직하기 때문이다.
맛은 혀에서 사라지지만 향기는 공간과 기억 속에 남는다. 어느 날 우연히 맡은 향 하나가 오래전 방문했던 카페와 그날의 대화, 함께 있던 사람까지 불러낼 수 있다.
좋은 브랜드는 로고를 기억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고객의 기억 속에 다시 떠오를 감정과 장면을 설계한다. 향기는 그 기억을 여는 가장 보이지 않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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