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함께 날도 추워지면 생각나는 것들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추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도루묵이다.
아직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이르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도루묵이 생각난다.
친한 형이 하나 있다.
성환(충남 천안시)에 산다. 먼 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알아서 잘 살겠지 하는 믿음이 있다.
형은 겨울을 특히 좋아했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으르고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부지런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겨울은 사람을 한없이 게으르게 한다.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추우니 밖에 나가는 것도 싫다.
반대로 여름은 게을러지기가 어렵다.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진다. 낮은 길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긴 낮과 더위를 견디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진다.
물론 내 마음대로 만든 기준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형은 확실히 겨울 쪽 사람이었다.
형이 게으른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인테리어 일을 했는데 일할 때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그런데 부지런하게 사는 것은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세상에는 늘 화가 나 있었다.
형에게는 그런 성난 자아가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대게 이런사람들은 자아와 현실과의 괴리가 심하다) 문학을 좋아했다.
국문학에 관심이 많아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를 다녔고 졸업도 했다. 글도 썼다. 신춘문예에도 작품을 냈고 가끔 나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내왔다.
대부분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글이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 삐딱했다.
겨울이면 우리는 석화를 자주 먹었다.
그리고 형네 집 옥상에서는 도루묵을 구워 먹었다.
형이 숯불을 피웠다.
겨울 옥상에서 숯불 피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춥고 바람이 분다. 숯불을 피우고 도루묵을 하나씩 올렸다. 열을 맞추어 도루묵이 석쇠위에 줄을 선다.
나는 옆에서 기다렸다.
도루묵은 숯불에 구워야 맛있다. 도루묵 먹는 방법도 따로 있었다.
잘 구워진 도루묵의 꼬리를 잡고 쭉 잡아당기면 뼈가 쑥 빠진다. 그러면 한입에 먹기 좋다.
알이 찬 도루묵은 더 좋았다.
살이 오르고 배에 알이 꽉 찬 놈을 입에 넣으면 푸르덩덩한 알이 한 움큼 입안으로 들어온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도 좋았다.
도루묵이 그렇게 맛있는 생선은 아니다.
고등어처럼 기름진 것도 아니다. 조기처럼 특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싸지도 않다. 오히려 아무 맛도 특별히 나지 않는 생선에 가깝다.
그런데 그게 도루묵의 매력이다.
도루묵이라는 이름에도 매력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임금이 피란길에 ‘묵’이라는 생선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 다른 이름을 내려주었다가, 훗날 다시 먹어보니 그때의 맛이 나지 않아 “도로 묵이라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편,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글에도 도루묵이 나온다. 1611년 『도문대작』을 썼는데, 귀양살이를 하며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은 책이다. 팔도의 토산물과 음식, 어패류 등을 기록했는데 그 안에 도루묵 이야기가 나온다.
허균의 기록은 좀 다르다. 도루묵은 원래 동해에서 나는 ‘목어(木魚)’라는 생선이었다.
그런데 전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목어를 좋아해 이름을 ‘은어(銀魚)’로 고쳐 부르게 했다. 그러다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로 이름을 돌렸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는 뜻의 ‘환(還)’을 붙여 ‘환목어(還木魚)’라 불렀다는 것이다. 다시 목어, 도로 목어다. 이것이 도루묵이라는 이름의 유래로 전해진다. 맛있어서 이름까지 높여주었다가 많이 먹고 싫증 나니 다시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도루묵이다.
형은, 도루묵을 먹고 술을 마시다가 늦어지면 자고 가라고 했다. 이불을 꺼내고 잠자리도 마련해주었다. 형은 말로 살갑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글에서는 세상을 그렇게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실제 사람을 대할 때는 따뜻했다.
그 따뜻함도 특별히 티가 나지 않았다. 싱겁기도 한 도루묵 같은 사람이다.
그냥 늘 그렇게 있었다.
‘도로 묵’이라는 이름처럼 결국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들이 있다.
추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분다.
올겨울에는 성환에 한번 가야겠다.
형이 숯불을 피우고 도루묵을 올려놓으면, 나는 옆에 앉아 술이나 한잔 따르면 된다.
도루묵은 여전히 별맛이 없을 것이다.
형도 대단히 살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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