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맛 크로케타 모음, 부드러운 소꼬리찜
재치있는 메뉴들의 향연
[Cook&Chef = 조소현 기자] 그라나다를 여행하다보면 한번쯤 지나게 되는 이사벨 광장에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를 함께 묘사한 기념비가 있다. 1492년 콜럼버스는 그라나다 인근 산타페에서 이사벨 여왕과 협약을 맺고 항해를 위한 지원을 받는다. 스페인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일어난 해의 400주년을 기념해,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가 산타페 협약을 맺는 순간을 표현한 조형물을 이 곳에 세운 것이다.
이 조약으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발굴해 스페인에 거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아메리카 대륙과의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토마토·감자·고추·옥수수 같은 작물이 들어오면서 유럽의 식문화 자체가 크게 변하게 되었다. 특히 토마토와 감자가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페인 요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동상에서 걸어서 3분 거리 ‘페로메디오(Perromedio)'에서 안달루시아의 대표 식재료인 토마토를 색다르게 풀어낸 음식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토마토 팀발(Timbal de tomate rosa, pan de cristal y melva)'이다. '팀발(Timbale)'은 재료를 틀에 층층이 담아 원통형으로 완성하는 요리로, 페로메디오는 토마토를 팀발 형태로 담아낸 뒤 그 위에 안달루시아의 전통 스프인 살모레호를 부었다. 여기에 절인 고등어 멜바와 채소 가니쉬를 더해 맛과 식감에 변주를 줬다.
'살모레호(Salmorejo)'는 토마토와 빵, 마늘, 올리브오일을 곱게 갈아 만든 코르도바 지방의 전통적인 차가운 수프다. '차가운 토마토 수프'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살모레호는 뜨거운 이베리아의 열기를 식혀주는 최고의 별미다.
부드럽고 걸쭉한 살모레호가 토마토 팀발을 감싸면서 토마토의 산뜻함과 올리브오일의 고소함이 어우러진다. 여기에 절인 멜바와 채소 가니쉬를 더해 맛과 식감에 변주를 줬다. 여행 중 더위를 자주 수프로 먹던 살모레호를 이렇게 토마토와 함께 칼로 잘라 먹으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토마토 팀발을 먹다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토마토 사이사이에 살모레호에 축축하게 젖은 얇은 크래커같은 것이 있었다. 메뉴명을 자세히 보니 '크리스탈 빵(pan de cristal)'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직원에게 이 빵의 정체를 물었더니 크리스탈 빵을 조금 가져와 보여줬다.
크리스탈 빵은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 빵으로, 종이처럼 얇고 바삭한 껍질과 구름처럼 가볍고 커다란 기공의 속살이 특징이다. 유리처럼 바삭하게 부서지는 독특한 식감 때문에 '유리빵'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어 나온 수제 크로케타 모둠은 세 가지 맛으로 구성돼있다. 먼저 초록색 소스가 얹어진 아스파라거스와 블루치즈에 페스토·꿀 소스를 곁들인 크로케타를 맛 보았다. 아스파라거스의 풋풋하고 은은한 쌉싸름함에 페스토의 허브 향과 꿀의 단맛, 블루치즈의 강한 향이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다음은 이베리코 하몽을 올린 하몽·닭고기 크로케타인데, 전형적인 스페인식 크로케타이면서 짭조름한 하몽과 담백한 닭고기의 조화가 부드럽고 크리미했다.
세번째로 맛 본 고등어과의 생선인 멜바와 구운 홍피망에 피망 잼을 더한 크로케타가 독특했다. 멜바의 담백하면서도 기름진 생선 풍미에 구운 홍피망의 달큰하고 그을린 향이 더해지고, 피망 잼이 다시 단맛을 보태 달큰하고 감칠맛이 강한 크로케타였다.
크로케타는 타파스바마다 개성을 뽐내기 좋은 메뉴인데, 생선을 크로케타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페로메디오만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안달루시아에서 음식만큼 유명한 것이 바로 투우다. 안달루시아는 오랫동안 투우 문화가 깊게 자리 잡은 지역으로, 론다와 세비야를 비롯해 곳곳에서 투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음식문화에도 투우의 역사가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라보 데 토로(Rabo de toro)’, 소꼬리찜이다.
소꼬리는 원래 살이 적고 질긴 부위지만, 오랜 시간 천천히 끓이면 뼈와 살 사이의 콜라겐이 녹아들어 고기는 연해지고 육수는 진하고 걸쭉해진다. 토마토와 양파, 마늘 등 채소를 넣고 와인과 함께 푹 끓여내 깊고 묵직한 풍미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페로메디오에서 만난 라보 데 토로 역시 오랜 시간 공들여 끓인 소꼬리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익은 고기는 수저로 누르자 결대로 풀어졌고, 진하게 졸아든 소스는 고기의 풍미를 한층 묵직하게 끌어올렸다. 아주 부드럽게 잘 조린 소갈비찜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페로메디오는 레트로한 분위기와 모던하고 세련된 감각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거기에 친절한 직원들의 응대까지 더해져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고대 로마의 흔적부터 이슬람 왕궁의 유산까지 오래된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라나다에서, 전통에 새로운 방식을 더해 풀어낸 안달루시아의 맛을 만날 수 있었던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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