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임과 발효에 담긴 깊은 풍미와 놀라운 영양 효과
[Cook&Chef = 조연정 기자]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식을 빠르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시대이다. 주문만 하면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직접 찾아가서 바로 먹으면 된다. 하지만 백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은데다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임과 발효를 통해 음식을 먹는 방법이 발전했다. 식재료나 음식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건 물론, 깊은 풍미를 내는 맛과 몸에 유익한 영양소까지 챙길 수 있었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절임과 발효에 대해 알아본다.
식재료를 보관하는 오래된 저장 방식
절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저장 방식 중 하나로, 기원전 2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오이를 소금물에 절여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로마 제국에서는 군인들이 채소나 육류를 식초, 소금에 절여 군식량으로 먹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기원전부터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술지게미 등에 저장하는 문화가 발달했고,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 이전부터 채소를 소금이나 장에 절여 장아찌처럼 먹었다.
발효는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과일이 땅에 떨어져 자연적으로 효모에 의해 발효되어 술이 되고, 우유가 상하면서 치즈나 요거트가 되는 현상에서 착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맥주와 빵을 만드는 효모 발효 기술이 발달했는데, 피라미드 벽면에 맥주 양조장과 빵 발효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한중일에서는 콩을 원료로 한 발효 기술이 발달해서 간장, 된장 등의 장류를 만들었다.
절임은 삼투압 현상, 발효는 생물학적 작용
절임과 발효는 식재료를 저장 방식은 비슷하지만, 그 안에 있는 작용 원리는 다르게 나타난다. 절임은 소금이나 식초, 설탕 등의 매개물이 식재료 속에 들어가 수분을 밖으로 끌어내는 삼투압 현상으로 만들어진다. 즉 부패균이나 유해 미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건조한 상태를 되어 식재료의 부패를 막아준다. 삼투압으로 식재료에 양념이 그대로 배어들어 짭조름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더욱 짙어진다.
반면 발효는 유산균, 효모,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산소가 부족하거나 없는 환경에서 당류, 단백질 등의 유기물을 분해하고 에너지를 얻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탄수화물은 유기산(젖산)으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감칠맛이 깊어지고 비타민 같은 새로운 영양 성분도 생긴다. 특히 발효 과정에서 생긴 미생물인 유산균은 장내 유해균을 없애주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절임과 발효의 만남으로 탄생한 ‘김치와 전통 장류’
한때 중국에서 파오차이를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물론 얼토당토않다. 파오차이는 채소를 소금물(식초에 향신료가 섞인 물)에 통째로 절여 단기간 보관하는 피클 또는 장아찌에 가깝다. 파오차이가 절임 음식이라면, 김치는 절임과 발효가 공존한 음식이다. 김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후, 젓갈 등의 각종 양념을 골고루 버무려서 일정 기간 두고 발효시킨다. 절임을 통해 발효가 잘 되어 더욱 감칠맛이 난다.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도 마찬가지다.
전통 장류를 만드는 것도 김치처럼 절임과 발효가 어우러져야 맛이 난다. 중국의 두반장, 일본의 낫토, 우리나라의 된장, 동남아의 느억맘 등도 절임과 발효의 시간을 기다려야 특유의 맛이 나서 훌륭한 양념이 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말이 있다.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고 쉴 때 오히려 활발해진다는 의미이다. 우리 입맛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첨가물에 복잡한 조리 방식으로 만든 음식이 아닌, 최소한의 조리 방식으로 만든 단순하고 기본적인 음식에 입맛이 더욱 살아날 수 있다. 신선한 식재료와 소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시간을 더해 만든 절임과 발효의 음식은 자극적인 맛에 지친 당신의 미각을 자연스럽게 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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