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기자] 비가 지나간 숲은 냄새부터 다르다. 젖은 흙과 나무껍질의 향이 짙어지고, 풀잎 끝에는 이슬이 맺힌다. 축축한 낙엽 사이로 밤사이 올라온 버섯도 모습을 드러낸다. 땅을 밀고 올라오거나 오래된 나무에 붙어 자라는 버섯에서는 저마다 다른 흙과 나무의 향이 난다.
버섯은 종류마다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다. 송이는 살아 있는 소나무 뿌리와 균근을 형성해 공생한다. 표고와 느타리는 목재 등의 유기물을 분해해 영양분을 얻고, 목이는 주로 죽거나 약해진 나무에서 자란다. 식재료로 버섯과 함께 다뤄온 석이는 생물학적으로 균류와 조류 또는 남세균이 공생하는 지의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온도와 습도, 배지 등의 조건을 조절해 기를 수 있다. 송이는 소나무와의 공생이 필수적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송이균을 감염시킨 소나무 묘목을 이용해 송이 발생에 성공했지만, 안정적인 대량생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언제부터 버섯을 먹었을까
버섯은 수분이 많아 쉽게 썩는다. 오랜 식용의 흔적을 유물로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문헌을 통해 식생활 속 버섯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살펴보면, 1421년 예조는 제주에서 생산되는 표고를 감귤류·비자·전복 등과 함께 “그 시절을 따라서” 진상하도록 청했다. 표고는 산지와 계절에 따라 왕실에 올리던 귀한 식재료였다.
또한, 조리 기록을 살펴보면 송이는 향을 즐겼고, 표고는 육류와 어우러져 맛을 더했으며, 석이는 검은빛과 형태를 고명이나 떡에 이용했다. 『음식디미방』의 석이편은 석이를 곱게 다져 멥쌀과 찹쌀가루에 섞고, 잣가루를 켜켜이 놓아 찌는 음식이다. 버섯을 국이나 찜의 부재료로만 쓰지 않고 색과 향, 형태까지 조리에 끌어들였다.
민가의 조리법에서는 여러 버섯을 한 음식에 함께 쓰기도 했다. 『음식디미방』의 잡채에는 참버섯·석이·표고·송이가 오이와 무, 숙주, 도라지, 미나리, 고사리, 꿩고기 등과 함께 들어간다. 지금의 잡채와 달리 당면이 없으며, 재료를 가늘게 손질해 양념한 즙과 버무렸다. 한 그릇 안에서도 버섯마다 다른 향과 식감을 이용했던 음식이다.
제철에 거둔 버섯은 말려 갈무리했다. 수분이 빠지면 보관 기간이 길어져 계절을 넘겨 쓸 수 있다. 건조 과정에서 향도 짙어지는데 버섯을 말린다는 것은 저장과 맛, 두 가지를 함께 얻는 방법이었다.
궁과 사찰, 버섯은 어떻게 맛을 냈을까
궁중음식에서 버섯은 맛과 향, 색을 맡았다. 표고는 쇠고기가 들어가는 국과 찜, 전골 등에 쓰였고, 석이는 검은빛을 살려 고명에 올렸다. 송이는 강한 향 자체가 귀한 맛이었다.
궁중 잔치에 오른 어채에서도 표고를 찾을 수 있다. 민어·광어·도미 같은 흰살생선이나 전복, 조개 등에 녹말을 묻혀 데치고 오이와 표고, 홍고추, 미나리 등을 오색 고명으로 곁들였다. 『임진진찬의궤』에는 어채와 각색어채가 기록돼 있으며, 궁중 잔치뿐 아니라 양반가의 조리서에서도 조리법이 전해진다.
특히 표고와 쇠고기의 조합에는 맛의 원리가 숨어 있다. 쇠고기의 이노신산과 표고의 구아닐산이 함께하면 감칠맛의 상승효과가 커진다. 이러한 성분을 알기 전에도 두 재료는 오랜 조리 경험을 통해 함께 사용됐다. 표고는 고기 곁을 채우는 부재료를 넘어 맛을 보태는 조미 재료였다.
사찰에서는 같은 표고를 다른 조리 방식으로 쓴다. 육류와 생선을 쓰지 않는 사찰음식에서 말린 표고는 다시마, 무 등과 함께 채수에 쓰여 국과 찌개, 국수의 밑맛을 낸다. 표고 자체는 구이·조림·볶음으로 조리하고, 느타리와 목이는 무침이나 냉채 등에 넣어 서로 다른 조직감을 살린다.
정관 스님의 표고버섯 조청조림은 표고 자체의 맛과 식감을 살린 음식이다. 표고를 간장과 들기름 등으로 졸이고 마지막에 조청을 더해 윤기를 낸다. 쫄깃한 표고의 식감에 장과 조청의 맛이 배어든다.
생버섯과 말린 버섯, 무엇이 달라질까
갓 수확한 표고는 수분을 머금어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향은 건표고보다 은은하다. 센 불에 굽거나 볶으면 수분이 빠지며 조직감이 살아나고 향도 짙어진다.
영양성분도 수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생버섯은 수분 함량이 높고 열량과 지방이 낮은 편이다. 단백질과 식이섬유, 칼륨, 비타민 B군 등도 들어 있다. 건조하면 수분이 빠져 같은 100g에서 단백질과 식이섬유, 무기질의 비율이 높아진다. 건버섯의 영양성분표에서 수치가 크게 뛰는 데에는 이런 농축 효과가 반영돼 있다.
버섯에 있는 에르고스테롤은 자외선을 받으면 비타민 D₂로 전환된다. 햇볕이나 자외선에 노출된 버섯에서 비타민 D₂ 함량이 증가하는 원리다.
버섯의 단백질 함량은 육류나 콩보다 낮지만 다른 식재료와 조합이 용이하다. 쇠고기나 닭고기, 두부나 채소와 함께 조리해 버섯의 맛과 향을 더한다. 더위로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무겁지 않은 한 끼를 구성하기에도 알맞다.
산에서 기다리던 버섯을 길러 먹기까지
사람이 버섯의 생육 조건을 알아가면서 식탁의 풍경도 바뀌었다. 산에서 때를 기다려 채취하던 방식에서 원목에 종균을 접종하고, 다시 균사를 배양해 시설에서 기르는 방식으로 생산 기술이 넓어졌다.
표고는 원목재배와 함께 톱밥 등을 이용한 배지재배가 이뤄지고, 느타리는 균상과 병재배 등으로 생산하며, 팽이와 새송이도 온도와 습도, 환기, 빛을 관리하는 시설에서 기른다. 자연의 비와 기온에 의존하던 버섯 가운데 상당수가 연중 생산되는 농산물로 들어왔다.
먹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느타리는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져 나물과 볶음, 전골에 두루 쓰인다. 팽이는 가늘고 아삭해 국과 찌개, 전골에 식감을 더한다. 양송이는 갓과 자루가 부드러우면서 탄탄해 볶음과 구이, 수프에 잘 어울린다. 두툼한 새송이는 굽거나 볶아 탄력을 즐기고, 목이는 오독한 식감으로 잡채와 볶음에 쓰인다.
여러 종류를 한데 끓이는 버섯전골부터 버섯밥과 버섯전, 버섯구이까지 버섯 자체를 주재료로 삼는 음식도 익숙해졌다. 같은 버섯이라도 굽고, 볶고, 끓이고, 말리는 방법에 따라 향과 식감이 달라진다.
향으로 먹는 송이, 결을 즐기는 느타리, 아삭한 팽이, 탄력 있는 새송이, 오독한 목이. 버섯은 이제 향뿐 아니라 식감까지 골라 먹는 식재료가 됐다.
그중 송이는 여전히 숲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소나무와 공생하는 생육 특성상 강수량과 지온, 토양 수분, 산림 상태가 발생에 관여한다. 인공재배 연구가 성과를 내고 있지만 현실 반영은 아직 어렵다.
폭염과 집중호우, 달라진 강수 패턴은 숲의 온도와 토양 수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버섯을 사계절 길러 먹는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자연에서 얻는 버섯의 계절은 숲의 환경에 달려 있다.
숲이 달라지면 우리가 기억하는 버섯의 계절도 달라질 수 있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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