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는 조개형태, 강원도는 감자녹말 익반죽
[Cook&Chef = 서진영 기자]추석이 다가오면 떡집 앞에 송편이 쌓인다. 하얀 송편부터 쑥을 넣은 푸른 송편, 치자와 단호박으로 물들인 노란 송편까지 색도 다양하다. 송편 속에는 깨와 설탕을 넣기도 하고, 풋콩과 밤을 통째로 넣기도 한다.
한 해의 농사가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음식은 그 계절을 담았다. 새로 거둔 곡식으로 밥을 짓고 떡을 빚었으며, 햇과일을 올렸다. 떡 한 알과 마실거리 한 잔에도 수확의 계절이 들어 있었다.
송편은 추석에만 먹던 떡이 아니었다
송편의 역사는 추석보다 깊다. 명칭은 17세기 문헌인 『요록』에 백미가루로 떡을 만들어 솔잎과 켜켜이 놓아 찌는 법이 기록돼 있고, 이후 『성호사설』과 『규합총서』, 『동국세시기』, 『시의전서』, 『부인필지』 등에도 송편이 등장한다.
그중 『동국세시기』를 보면 송편은 추석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에 곡식 이삭을 장대에 매달아 두었다가 음력 2월 초하루인 중화절에 만들었고, 농사철을 앞두고 노비에게 나이 수대로 나누어 주어 ‘노비떡’이라 부르기도 했다.
같은 송편이 팔월 보름에는 전혀 다른 계절의 의미를 가졌고,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이 수확과 조상을 기리는 한가위의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추석 송편의 핵심은 ‘햅쌀’이다.
추석 무렵은 벼가 여물기 시작하지만 지역과 날씨에 따라 본격적인 벼 수확 전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차례에 새 곡식을 올리기 위해 덜 익은 벼를 먼저 베어 찧고 말려 쌀을 마련하거나, 일찍 여무는 벼를 따로 심어 제사에 쓸 쌀을 준비하기도 했다.
「추석」에는 철이 늦으면 덜 익은 벼를 베어 찧어 말린 뒤 방아를 찧어 햅쌀을 만들고, 밭벼를 따로 심어 제미(祭米)로 쓰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얻은 올벼로 만든 송편을 ‘올벼송편’이라 불렀다.
여기에는 단순히 새 쌀이 맛있다는 이유보다 먼저 새로 거둔 것을 먼저 올린다는 의미가 있었다.
송편의 소도 마찬가지다. 콩과 팥, 밤과 대추 등 그해 새로 난 곡식과 열매를 넣어 이를 조상에게 올려 수확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던 음식이다.
고조리서 속 송편은 지금보다 맛이 다양했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송편의 소라고 하면 깨와 설탕, 콩을 쉽게 생각하지만 고조리서에 남은 송편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다.
『규합총서』에는 팥에 꿀을 넣고 계피와 후추, 건강말을 섞어 송편 소를 만들었고, 『부인필지』에는 팥과 잣, 호두, 생강, 계피가 등장한다. 『시의전서』의 송병에는 거피팥고물과 대추, 꿀, 계피, 밤 등이 사용됐고, 쑥송편에는 백미와 쑥을 쓰고 계피·후추 등으로 소를 만들었다.
팥과 꿀의 단맛에 계피와 생강, 후추의 향과 매운맛이 더해져 지금의 달고 고소한 송편과는 다른 맛이다.
고조리서의 기록을 이어 놓으면 송편의 변화도 보인다.
17세기 『요록』의 송편에서는 백미가루와 솔잎이라는 기본 구조가 확인된다. 이후 조리서로 갈수록 팥과 콩뿐 아니라 꿀, 대추, 밤, 잣, 호두, 향신료까지 소의 구성이 구체적으로 기록된다. 송편은 하나의 정해진 조리법으로 고정된 음식이 아니었다.
집에서 가진 재료, 계절에 얻은 재료, 시대의 기호에 따라 속을 달리 채웠다.
보름달 뜨는 날, 왜 송편은 반달일까
추석에는 둥근 보름달이 뜬다. 그런데 송편은 흔히 반달 모양으로 빚는다.
보름달은 이미 가득 찼지만 반달은 앞으로 더 차오르기 때문에 성장과 번성을 의미한다. 백제 의자왕 때 ‘백제는 만월, 신라는 반월’이라는 점괘와 연결해 신라의 번성을 상징하는 모양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는 만드는 사람의 솜씨와 정성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김삿갓의 시에서도 송편은 손끝으로 조개 입술처럼 붙이고, 쟁반 위에 올려놓으면 봉우리처럼 서며, 젓가락으로 들면 반달처럼 보이는 음식으로 묘사했다. 송편의 모양을 산과 달에 빗댈 만큼 작은 떡의 형태 자체를 즐겼던 것이다.
서울의 작은 반달에서 평안도의 조개까지
송편은 지역으로 가면 다양한 모양으로, 서울·경기의 송편은 비교적 작다. 한입 크기로 빚고, 평안도에는 조개송편이 있다. 반죽에 깨를 이용한 소를 넣고 모시조개처럼 빚는다. 특히 조개를 많이 잡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조개 모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소금 대신 간장으로 소의 간을 하는 것도 특징이다.
강원도는 쌀 대신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가 송편의 재료가 되었다. 감자녹말을 익반죽하고 팥이나 강낭콩을 넣어 빚은 감자송편이다. 손으로 눌러 손가락 자국을 남기는 형태도 볼 수 있다. 쪄낸 뒤에는 감자전분 특유의 반투명한 빛이 난다.
충청도에는 가을 호박을 이용한 호박송편이 있다. 말린 호박을 가루 내거나 찐 호박을 으깨 멥쌀가루와 섞고, 호박처럼 골을 내어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남도에는 모싯잎을 넣어 빚은 송편이 있다. 쌀가루에 모싯잎을 넣은 짙은 녹색의 반죽과 큼직한 크기가 특징이다.
멥쌀 반죽에 삶은 고구마와 설탕을 넣거나 팥·깨 등을 소로 사용한 제주의 송편은 다른 지역보다 크고 독특한 형태로, 일부 조리법에서는 찌는 대신 삶아 익힌다.
이를 보아 송편의 모양과 재료는 그 지역 사람들이 무엇을 심고 거두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지도와 같다.
햅쌀로 빚는 과일 송편
송편은 멥쌀가루에 따뜻한 물을 넣어 익반죽하고 소를 채운 뒤 솔잎과 함께 쪄낸다. 쌀가루의 수분과 익반죽의 정도에 따라 떡의 질감이 크게 달라진다.
재료
습식 멥쌀가루 500g
소금 5g
따뜻한 물 6~7Ts (쌀가루 상태에 따라)
솔잎
참기름 약간
풋콩소
풋콩 100g
소금 약간
깨소
볶은 참깨 50g
꿀 또는 설탕
소금 약간
밤소
밤 8~10개
꿀 또는 설탕 약간
① 멥쌀을 불려 물기를 빼고 소금을 넣어 곱게 빻는다. 습식 멥쌀가루를 사용할 경우 수분 상태를 먼저 확인한다.
② 끓는 물을 조금씩 넣어 익반죽한다. 한 번에 많은 물을 붓지 않고 손으로 뭉쳐질 정도까지 맞춘 뒤 충분히 치댄다.
③ 풋콩은 소금을 약간 넣어 준비하고, 깨는 곱게 빻아 꿀이나 설탕과 섞는다. 밤은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썬다.
④ 반죽을 한입 크기로 떼어 둥글린 뒤 가운데를 오목하게 눌러 소를 넣는다.
⑤ 입구를 붙이고 손끝으로 모양을 잡는다. 반달 모양으로 빚거나 다양한 송편의 형태를 응용할 수 있다.
⑥ 찜기에 깨끗이 씻은 솔잎을 깔고 송편을 올린다. 다시 솔잎과 송편을 번갈아 놓은 뒤 충분히 찐다.
⑦ 익은 송편은 꺼내 찬물에 가볍게 헹구고 물기를 뺀 뒤 참기름을 얇게 바른다.
솔잎은 떡끼리 붙는 것을 줄이고 향을 더한다. ‘송편(松餠)’이라는 이름 역시 솔잎을 사용해 찐 떡이라는 특징에서 설명된다.
송편 곁에 놓인 한 잔
식혜는 잔치와 명절에서 친숙하게 마신 음료다. 밥을 엿기름물에 삭혀 곡식 자체의 단맛을 낸다.
식혜의 기록은 조선 영조 때 이시필의 『소문사설』을 보면 한양의 식혜와 송도의 식혜를 비교한 기록이 있다. 이후 『규합총서』에는 식혜를 만드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됐고, 19세기 말 『시의전서』에도 엿기름을 다루는 법과 식혜 조리법이 기록됐다.
이는 밥 한 그릇이 엿기름을 만나 음료가 되고, 추석의 쌀이 송편이 되는 것과는 또 다른 곡식의 쓰임이다.
지금과 달랐던 수정과
『임원십육지』에서는 과실을 꿀에 조리고 그 국물까지 함께 먹는 것을 수정과라 설명한다. 조선시대 ‘수정과’라는 명칭의 범위가 지금보다 다양했던 것이다.
『시의전서』의 건시수정과에는 좋은 곶감을 냉수에 충분히 불린 뒤 진하게 달인 생강차를 붓고 화청해 잣을 띄우는 방법이 전한다. 이후 『조선요리제법』에서는 생강과 설탕을 끓여 식힌 물에 곶감을 넣고, 먹을 때 계피와 잣을 더하는 형태가 나타난다.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음식도 기록을 살펴보면 재료와 조리법, 이름의 범위가 조금씩 달라진다.
송편도 그랬고 수정과도 그랬다.
전통음식은 처음부터 한 가지 모습으로 만들어져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다. 시대의 식재료와 기호에 따라 계속 변했다.
다시 달라지는 떡과 음청류
최근 떡은 K-디저트의 언어로 읽히고 있다.
크기는 작아지고 색과 모양은 더 섬세해지고, 지역 농산물을 넣은 떡, 전통 떡의 형태를 바꾼 디저트, 한입 크기의 떡과 차를 함께 내는 방식도 늘고 있다.
2026년 카페디저트페어에서도 케이크와 초콜릿, 베이커리와 함께 떡과 약과가 디저트 품목으로, 청과 차는 음료 품목으로 분류돼 소개됐다. 떡이 명절이나 의례에 머무르지 않고 카페와 디저트 시장 안에서 하나의 상품군으로 선보이고 있다.
전통차와 청, 식혜와 수정과에 지역 식재료를 더하고 현대 카페 음료의 조리법과 플레이팅을 적용하는 시도가 교육과 메뉴 개발 분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6년 대학 교육과정에도 ‘음청류 카페 메뉴 개발’ 과목이 개설돼 전통 음청류와 현대 음료를 결합하고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개발하도록 구성돼 있다.
한가위의 맛은 결국 풍성함에만 있지 않았다. 그해 거둔 것을 가장 먼저 음식으로 만들어 올리고, 함께 나누는 데 있었다.
송편 한 알과 음청류 한 잔을 다시 들여다보면, 한가위 둥근 달을 보라보며 소원을 빌어보자.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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