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포크를 쓰는 법부터 ‘반반 퐁뒤’, 빵을 빠뜨렸을 때의 벌칙과 마지막 치즈까지
[Cook&Chef = 정수연 기자] 스위스 가정의 저녁 식탁에 퐁뒤가 올라오면, 익숙한 음식인데도 손이 잠깐 멈춘다. 테이블 중앙에는 치즈가 녹아 있는 둥근 냄비가 놓이고, 그 아래 작은 불이 식사 내내 온도를 유지한다. 주인이 길고 가는 포크에 빵 한 조각을 꽂아 치즈 속에서 천천히 돌리자, 곧 옆자리에서도 하나둘 포크가 같은 냄비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손님에게도 차례가 돌아오고, 같은 냄비에 빵을 담그는 것으로 퐁뒤 식사에 참여하게 된다.
퐁뒤를 끓여 그대로 식탁에 올리는 전용 냄비를 ‘카클롱(caquelon)’이라 하고, 아래에서 열을 유지하는 작은 가열대를 ‘레쇼(réchaud)’라고 부른다. 카클롱이 식탁 한가운데 놓이는 순간부터 식사는 이 냄비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빵을 한 조각씩 담그고 치즈를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자연스럽게 서로의 차례와 움직임을 살피게 된다.
같은 냄비에 포크를 넣는 법
퐁뒤용 포크는 뜨거운 냄비 안쪽까지 편하게 닿도록 길고 가늘게 만들어진다.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자리에서는 손잡이 끝의 색이나 무늬로 자기 포크를 구별하는 제품도 흔하다. 빵은 한입 크기로 준비해 포크 끝에 단단히 꽂는다. 껍질이 붙은 부분까지 함께 걸면 치즈 속에서도 쉽게 빠지지 않는다.
빵을 카클롱에 넣은 뒤에는 치즈가 고르게 묻도록 천천히 움직인다. 그동안 치즈도 함께 섞이면서 냄비 바닥에 눌어붙는 정도를 줄여준다. 프리부르의 바슈랭 프리부르주아 공식 레시피도 식사 중 치즈를 계속 움직이도록 권하고, 발레에서는 8자를 그리듯 젓는 방식이 전해진다.
여러 포크가 한곳으로 모이는 만큼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일부 가정에서는 한 사람이 빵을 꺼낸 뒤 다음 사람이 담그는 식으로 리듬을 맞추고, 다른 자리에서는 포크 사이에 간격을 두고 함께 움직인다. 먹는 방식도 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긴 퐁뒤 포크에서 바로 빵을 먹는 자리도 있고, 개인 접시에 내려 일반 포크로 옮겨 먹는 자리도 있다. 초대받은 자리에서는 주인과 주변 사람들이 먹는 방식을 따라가면 자연스럽다.
입을 댄 조각은 그 자리에서 먹고, 다음 차례에는 새 빵을 꽂는다. 삶은 감자를 곁들이는 경우도 흔하며, 초대받은 자리에서는 식탁에 준비된 재료를 사용하면 된다. 한 냄비를 함께 쓰는 방식은 이어지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치즈는 지역마다 제법 다른 맛을 낸다.
‘반반’이라는 이름의 퐁뒤
그 차이를 가장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예가 프리부르의 ‘퐁뒤 무아티에무아티에(fondue moitié-moitié)’다. 프랑스어 moitié는 ‘절반’을 뜻한다. 그뤼예르 AOP와 바슈랭 프리부르주아 AOP를 절반씩 섞어 만들며, 이름도 그대로 ‘반반 퐁뒤’라는 뜻이다.
그뤼예르는 깊은 풍미를 더하고, 바슈랭 프리부르주아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을 만든다. 여기에 화이트와인과 마늘 등을 더해 녹이면 프리부르식 무아티에무아티에가 완성된다. 바슈랭 프리부르주아만 사용하는 퐁뒤에서는 물을 사용해 낮은 온도로 천천히 녹이기도 하고, 동부 스위스에서는 아펜첼러나 틸지터 같은 지역 치즈에 사이다를 활용하는 조합도 만날 수 있다.
카클롱 안의 치즈가 달라져도 식탁에서는 다시 같은 동작이 이어지고, 빵을 한 조각씩 담그다 보면 포크 끝의 빵이 치즈 속으로 미끄러질 때도 있다.
빵을 치즈에 빠뜨렸다면
스위스에서는 이런 실수를 식탁의 놀이로 바꾸는 관습이 전해진다. 빵을 떨어뜨린 사람이 노래를 부르거나, 한턱을 내거나, 옆 사람에게 입맞춤하는 식이다. 벌칙의 내용은 지역과 가족, 친구 모임에 따라 달라지며 가벼운 농담 한마디로 지나가는 자리도 많다.
발레 지역의 공식 자료에도 이런 놀이가 소개되고, 만화 『아스테릭스』의 스위스 편에서는 빵을 계속 빠뜨리는 인물에게 점점 강한 벌칙을 주는 장면으로 과장해 그렸다. 실제 식탁에서는 치즈 속의 빵을 건져낸 뒤 그 집의 분위기를 따라가면 된다. 빵 한 조각의 실수가 그날 식탁의 농담거리가 되면서 퐁뒤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도 만들어진다.
포크를 움직이는 방식부터 빵을 빠뜨렸을 때의 농담까지, 퐁뒤 한 끼에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행동이 계속 쌓인다. 스위스 연방이 이 문화를 국가의 ‘살아 있는 전통’으로 기록할 때도 이런 식사 장면을 함께 바라봤다.
한 냄비를 나누는 식사가 스위스의 전통이 되기까지
스위스 연방이 운영하는 ‘살아 있는 전통’ 목록에는 퐁뒤 문화가 ‘Autour d’une Fondue’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퐁뒤를 둘러싸고’ 정도의 뜻이다. 이 이름은 냄비 속 음식과 그 주변의 사람, 행동, 분위기를 함께 가리킨다.
공식 설명은 퐁뒤를 소박함과 나눔, 평등, 친교의 이미지와 연결한다. 같은 카클롱을 중심으로 서로의 차례를 살피고 치즈를 함께 관리하는 식사 방식이 이런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퐁뒤가 오늘날처럼 스위스 전역을 대표하는 식사로 자리 잡은 과정은 20세기에 크게 속도를 냈다. 현재의 치즈 퐁뒤와 닮은 기록은 1699년 취리히 요리책에서 확인되고, 이후 여러 지역의 요리책에도 다양한 형태의 퐁뒤가 등장했다. 1914년 설립된 스위스 치즈연합은 국내 치즈 소비를 넓히기 위해 퐁뒤를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산과 겨울, 가족과 친구가 둘러앉는 식사 이미지를 꾸준히 확산시켰다.
치즈연합은 스위스 독일어 방언으로 ‘퐁뒤는 맛있고 기분도 좋게 해준다’는 뜻의 문구를 내세웠고, 앞글자를 딴 ‘FIGUGEGL’이라는 약칭까지 유행시켰다. 1950년대에는 스위스 군대 식단에도 퐁뒤가 들어갔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군복무 중 같은 카클롱을 둘러앉으면서 퐁뒤를 직접 경험했고, 이 음식은 전국으로 더욱 넓게 퍼져갔다. 카클롱과 레쇼, 전용 포크 세트가 가정에 널리 보급된 시기도 이 흐름과 겹친다.
오래된 치즈 요리에 광고와 군대, 관광과 가정문화가 겹치면서 카클롱 하나를 둘러싼 식사는 스위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식사는 카클롱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라 를리지외즈’를 나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카클롱 바닥에는 마지막 즐거움이 남는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퐁뒤를 먹다 보면 바닥에 얇고 노릇하게 구워진 치즈층이 생기는데, 프랑스어권 스위스에서는 이를 ‘라 를리지외즈(la religieuse)’라고 부른다.
‘Religieuse’는 프랑스어로 ‘수녀’를 뜻한다. 이 이름이 바닥의 치즈를 가리키게 된 정확한 유래는 여러 설과 함께 전해진다. 라 를리지외즈는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떼어 마지막에 함께 나눠 먹는다. 부드럽게 녹은 치즈를 계속 먹다가 만나는 바삭하고 진한 맛이라 이 부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자기 포크를 카클롱에 넣어도 되는지 망설였던 손님도 식사가 끝날 즈음이면 바닥의 라 를리지외즈를 함께 떼어 먹고 있을 것이다. 빵 한 조각을 담그는 순간부터 마지막 치즈를 나누는 순간까지, 사람들의 손은 줄곧 같은 냄비를 오간다. 그 사이 대화와 장난, 기다림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스위스가 퐁뒤를 나눔과 친교의 식사로 기억해온 이유도 결국 이 식탁 위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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