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펜션 등에선 휴가 수요 몰려 공급이 딸리는 경제원리 때문
[Cook&Chef = 안정호 기자] 폭염이 전국을 덮쳤다. 이때 휴가지마다 빠지지 않는 냄새가 있다.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는 삼겹살. 여름 휴가철 야외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국룰'에 가깝다.
문제는 지갑이다. 소비자는 마트나 정육점에서 본 가격표에 쉽게 지갑을 열기 어렵다. 값이 오르면 흔히 유통 구조나 중간 이윤, 정부 물가 정책을 탓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매년 여름 되풀이되는 삼겹살값 강세에는 좀처럼 조명받지 않는 또 하나의 축이 있다. 경제 그래프가 아닌 '돼지의 생물학'이다.
땀샘 없는 돼지의 여름나기
간혹 "돼지처럼 땀 흘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돼지는 땀을 거의 흘리지 못한다.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않은 데다 두꺼운 지방층 탓에 몸속 대사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능력이 떨어져, 다른 가축보다 여름 더위에 특히 취약하다. 사람은 땀이 증발하며 체온을 낮추지만, 돼지에겐 이 냉각 장치가 없는 셈이다.
사람도 더위 먹으면 입맛을 잃듯, 폭염에 노출된 돼지가 가장 먼저 잃는 것도 식욕이다. 평소라면 잘 먹던 배합사료도 고온의 환경에선 외면한다. 2017년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에 실린 '고온스트레스가 일반 양돈농가의 돼지 생산성 및 생리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높은 환경온도는 음수량을 늘리는 대신 사료 섭취 욕구를 떨어뜨려 섭취량 감소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료 섭취량이 줄면 돼지의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통상 농가의 돼지는 태어난 지 약 6개월, 몸무게 110㎏ 안팎에 이르러야 도축장으로 나간다. 업계에선 이렇게 적정 체중에 든 돼지를 '규격돈'이라 부른다. 이 정도의 도체 등급에서 살코기와 지방이 알맞은 비율을 이뤄 제값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 사료를 거부하는 돼지의 '강제 다이어트' 탓에 목표 체중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도체 무게가 규격에 미달하면 낮은 등급을 받아 제값을 못 받기 때문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여름의 한계'
이런 지연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등급판정을 받은 돼지는 1870만9412두로, 1900만 두를 넘겼던 전년보다 1.6%(30만5450두) 줄었다. 2014년 이후 10년간 이어지던 증가세가 멈춘 것이다. 축평원은 그 배경으로 각종 질병과 함께 여름철 폭염에 따른 생산성 하락·폐사 증가를 지목했다.
물량이 줄면 값은 오른다. 같은 해 전국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돼지 지육 가격은 ㎏당 평균 5763원으로, 전년보다 10%(524원) 상승했다. 물량 감소를 폭염 하나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원인 가운데 여름 폭염이 한 축이라는 점, 그리고 돼지의 생물학적 한계가 도축 두수와 가격이라는 숫자로 되돌아온다는 점은 분명하다.
수요는 최고, 물량은 최저
얄궂게도 질 좋은 돼지가 가장 귀한 이 시기에, 삼겹살 수요는 한 해 중 손꼽히는 성수기를 맞는다. 구울 때는 수분이 빨리 날아가고 겉이 타기 쉽다. 이때 소비자는 얇은 수입 냉동육보다, 두툼하게 썰어 육즙을 가두는 국내산 냉장 생고기를 선호한다. 하필 국내산이 가장 빠듯할 때 수요가 몰리는 셈이다.
정부는 여름철 돼지고기 가격이 들썩일 때마다 할당관세 '카드'를 꺼낸다. 관세를 낮춰 수입 물량을 늘려 공급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가공용 돼지고기 1만2000톤에 연말까지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이는 주로 가공·외식용 수요를 분산하기 위한 것으로 불판에 오르는 국내산 냉장 삼겹살의 체감 가격을 직접 끌어내리진 못한다.
물론 여름철 삼겹살값을 생물학 하나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사육 마릿수 변동, 각종 질병, 사룟값과 환율까지 여러 요인이 얽힌다. 다만 매년 여름철 되풀이되는 가격표 앞에서, 유통 이윤이나 정책만 탓하기 전에 땀 흘리지 못하는 돼지들의 여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이런 현상은 누군가의 탐욕이라기보다, 자연의 섭리와 미식 문화가 빚어낸 한여름의 씁쓸한 합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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