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와 스트레스 달래는 거대한 야외 술자리
사실 이름은 북어구이지만 개인적으로 '촉촉장작 북어구이’로 부른다. 통북어가 아니라 먹기 좋게 자른 북어를 살짝 불린 뒤 다진 마늘과 함께 찌듯이 구워낸다. 사진 왼쪽은 노가리구이, 오른쪽은 북어구이 사진 = 김대식 칼럼니스트
[Cook&Chef = 김대식 칼럼니스트] 퇴근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저녁,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을지로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에는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이 바삐 오가던 빌딩 숲이 어느새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로 채워진다.
요즘은 힙지로와 익선동의 야장이 하나의 관광 코스처럼 자리 잡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직장인들의 여름을 책임져온 곳이 있다.
을지로입구역 페럼타워 뒤편 골목, 단골들도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는 ‘하나골뱅이북어구이전문점’이 있다.
무교동 태성골뱅이도 아니고, 을지로3가 골뱅이골목도 아니다. 오피스빌딩 사이에 외관도 허름해 아는 사람만 찾는 집이다.
이 집의 진짜 매력은 저녁 6시가 지나면서 시작된다. 퇴근한 차량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 건물 뒤 주차장이 순식간에 거대한 야외 술자리로 변신한다. 요즘은 민원과 신고 때문에 길가 야장을 쉽게 보기 어렵지만, 이곳은 주차장을 활용해 손님들을 불러 모은다.
“선풍기가 있으니 밖으로 나가세요.”
이모님 한마디에 주방옆 좁은 문을 따라 나서면 방금까지 주차장이던 공간에 테이블이 하나둘 깔리고, 직장인들은 자연스럽게 맥주잔을 기울인다.
힙지로가 만들어낸 반짝 감성이 아니라, 직장인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야장이다.
사장님인지, 이모님인지
이 집을 이야기하면서 사장님을 빼놓을 수 없다. 아니 공식적으로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집을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누군가는 가게를 인수하셨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을 정도다.
어쨌든 블로그 후기마다 "이모님 같다", "털털하다", "정이 많다", "웃음이 좋다"는 말이 반복된다. 직접 만나보면 왜 그런 표현이 나오는지 금세 알게 된다. 환하게 웃으며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주려는 모습이 정겨운 이모님 그 자체다.
"잠깐만 기다려요. 밖에 자리 하나 만들어드릴게."
그 한마디가 참 든든하다.
20년 만에 다시 찾아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좋았다. 예전 이야기를 꺼내도 금세 기억을 이어가고, 북어구이 때문에 왔다는 말에 자부심 가득히 눈빛이 달라지신다.
손님이 몰리면 직접 주차장으로 나가 테이블을 펴고, 한여름 저녁이면 손에는 늘 부채 하나가 들려 있다. 가게 안보다 밖에서 손님들을 챙기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하나골뱅이의 주인은 주방보다 야장에서 더 빛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촉촉한 북어구이 한 점의 반전
메뉴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골뱅이집이 갖춰야 할 것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골뱅이는 통조림 골뱅이에 빨갛게 무쳐낸 알싸한 파무침이 듬뿍 담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맥주 한 잔을 부르는 데는 이만한 안주가 없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파채를 듬뿍 집어 골뱅이와 함께 먹다 보면 젓가락이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이 집의 진짜 주인공은 단연 북어구이다.
사실 이름은 북어구이지만 개인적으로 '촉촉장작 북어구이’로 부른다. 통북어가 아니라 먹기 좋게 자른 북어를 살짝 불린 뒤 다진 마늘과 함께 찌듯이 구워낸다. 장작을 포개 놓은 듯 수북하게 담겨 나오는 모습도 재미있다.
한 점 집어보면 구이보다 찜에 가까운 촉촉함이 먼저 느껴진다. 퍽퍽하고 질긴 북어구이를 떠올렸다면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포슬포슬하면서도 부드럽고, 은은한 불향과 북어의 고소함이 살아 있다.
여기에 찐마늘을 살짝 얹고 특제 간장에 콕 찍어 파무침과 함께 먹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북어가 이렇게 촉촉할 수 있었나?"
마늘도, 간장도, 북어도 모두 익숙한 재료인데 이 집에서는 전혀 다른 조합이 된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손이 간다. 이 북어구이 하나 때문에 다시 찾는 손님이 많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파채와 오이채 위에 계란을 듬뿍 입힌 햄말이도 수준급이고 저녁을 거르고 온 일행이 있다면 계란말이와 바삭한 김치전이 좋은 선택이다.
올여름 야장을 찾는다면 힙한 사진보다 오래 남는 기억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보자. 주차장이 저녁이면 야장으로 변하고, 이모님의 환한 웃음이 손님을 맞아주며, 촉촉한 북어 한 점이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곳.
을지로의 여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직장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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