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불안증(FOMO) 시대를 벗어난 새로운 트렌드
[Cook&Chef = 이승우 기자]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 보관함에 스마트폰을 자진 반납하고 자물쇠를 채운다. 화려한 음식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도 없고, 왁자지껄한 일행도 없지만 홀로 식탁 앞에 앉은 손님의 표정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최근 한국 2030 세대의 미식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남들이 줄 서는 핫플은 나도 가봐야 한다"는 FOMO(소외 불안증)의 시대가 저물고, 넘쳐나는 정보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발적 고립을 즐기는 'JOMO(Joy Of Missing Out·자발적 소외)'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유행 따라 줄 서지 않습니다"… 맹목적 웨이팅 멈춘 합리적 미식
2030 세대가 자발적 JOMO를 택하게 된 바탕에는 남의 시선보다 나의 만족을 중시하는 극강의 '합리성'이 깔려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유명 인플루언서가 정해준 "꼭 가봐야 할 맛집" 리스트를 맹신하며 무작정 오픈런 줄에 서지 않는다.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외식 메뉴의 원가를 낱낱이 파헤치는 유튜버 '제로비'식 콘텐츠가 호응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려한 복주머니 포장으로 단숨에 SNS 성지가 된 프리미엄 과일 찹쌀떡 '한정선' 앞에서도 이들은 이성적이다. 예쁜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1알에 5,000원을 내고 1시간씩 줄을 서는 행위의 '실질적 가치'를 냉정하게 따져본다.
메뉴의 원가율과 가치를 꼼꼼히 따지는 행위는 핫플에 가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다는 FOMO의 환상을 깨는 JOMO의 훌륭한 도구다. 이들은 남들이 다 간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웨이팅에 동참하지 않고,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기꺼이 유행에서 소외되는 합리적 미식을 택한다.

"과시 대신 감각을 켜다"… 미각에 집중하는 '노폰 다이닝'
JOMO 미식은 식사의 목적 자체도 뒤바꾸고 있다. 과거의 식사가 '내가 이 핫한 곳에 왔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는 행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이제는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실제로 미식을 경험하는 행위'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한다.
LG유플러스 통신 플랫폼 너겟과 미션캠프가 기획했던 오프라인 행사 '노폰 다이닝(No Phone Dining)'은 이러한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다. 참가자들은 3만 원의 예치금을 내면서까지 기꺼이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채 침묵 속에서 식사를 즐겼다.
참가자들은 "폰이 없으니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식재료의 씹는 소리와 소스의 미세한 향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보여주기식 과시를 멈추고 혀끝의 미각에 집중하기 위해, 기꺼이 자발적 고립을 돈 주고 사는 새로운 미식의 형태다.

'솔리튜드 다이닝'의 부상… 고독을 즐기는 '혼말족'과 식품업계의 변화
왁자지껄한 관계에서 벗어나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고독(Solitude)' 역시 JOMO 미식의 핵심 축이다. 단체 모임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는 '혼말족'이 부상하며, 불필요한 피로감을 줄인 '솔리튜드 다이닝(Solitude Dining)'이 각광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결코 한 끼를 대충 때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SNS에 전시하거나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큼은 제대로 된 '프리미엄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보상 심리가 깔려 있다.
식품·외식 업계도 '나를 위한 프리미엄 혼식' 수요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본도시락('프리미엄 라이트 도시락'), 풀무원('아티장 라자냐'), 하림('더미식 트레이요리') 등은 혼자서도 간편하게 고품질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1인 프리미엄 메뉴를 잇달아 선보였다. 타인과 어울려야 한다는 압박을 벗고, 홀로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려는 JOMO족이 시장의 지형도마저 바꾸고 있는 셈이다.

알고리즘 대신 '나의 미각 리듬'을 따르다
결국 JOMO 미식의 완성은 남이 정해준 바이블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타인과 억지로 어울리는 대신, 조용히 나 혼자만의 취향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나 유튜브 알고리즘이 억지로 떠먹여 주는 핫플을 피한다. 대신 동네의 후미진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낡은 노포나 조용한 혼술바의 문을 열고 들어가 온전히 '나의 미각 리듬'에 맞춰 식사한다.
실제로 최근 2030 세대 사이에서는 타인과 공유하는 SNS 대신, 노션(Notion) 앱이나 구글 맵의 '비공개 리스트' 기능을 활용해 절대 남과 공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미식 기록을 남기는 경향이 뚜렷하게 늘고 있다. 과시와 인맥 유지의 의무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나만을 위한 '미식 대동여지도'를 은밀하고도 단단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매일 오르내리는 주식 창을 보며 FOMO(소외 불안증)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이번 주말, 적어도 나를 채우는 미식의 시간만큼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JOMO의 미학'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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