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파이로 모욕과 하대에 저항하는 달콤 씁쓸한 복수
[Cook&Chef = 조소현 기자] 1960년대 초 미시시피주 잭슨, 작가를 꿈꾸던 ‘스키터(엠마 스톤)’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백인의 집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에이벌린(바이올라 데이비스)’은 엘리자베스의 어린 딸을 돌보고, ‘미니(옥타비아 스펜서)’는 ‘힐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집안의 부엌을 책임진다. 음식을 만들고 아이를 키워주면서도 이들은 철저히 없는 사람처럼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지켜야 했다.
토네이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 미니는 실내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절도 누명까지 쓰게 된다. 스키터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책으로써 세상에 알리기로 한다.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 '소울푸드'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 남부에서는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이 백인 가정의 가사노동자로 일했다. 그 가운데 요리는 중요한 부분이었고 이는 미국 남부의 ‘소울 푸드’를 형성한다.
‘프라이드 치킨’과 ‘콜라드 그린’, ‘블랙아이드피’, ‘콘브레드’ 같은 음식은 오늘날 소울 푸드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소울 푸드는 특정한 한 가지 조리법을 뜻하기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와 남부의 식재료, 오랜 조리 전통이 만나 형성된 음식문화다.
<헬프>에서 흑인 여성들은 하루 종일 부엌에 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인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사교 모임에 내놓을 음식까지 차려 낸다. 백인 중산층 가족들이 흑인들이 차린 음식들을 먹으며 게임을 즐길 동안, 흑인들이 앉을 자리는 없다.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맛, ‘프라이드 치킨’
다른 콧대 높은 중산층 백인들에게 별종 취급 받는 ‘셀리아(제시카 차스테인)’가 미니를 고용한다. 미니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셀리아에게 프라이드 치킨을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이 순간만큼 미니는 단순한 가정부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온 요리 기술을 가진 전문가이자 선생님이다.
감독 테이트 테일러가 미시시피 출신인 만큼 남부 음식의 맛과 모습을 영화에 구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실제 남부 여성들에게 영화에 쓸 음식을 맡겼고, 프라이드 치킨 역시 당시 방식을 고증하는데 집중했다. 닭을 버터밀크에 담갔다가 밀가루와 소금, 후추, 파프리카, 카이엔페퍼 등을 묻혀 ‘크리스코(Crisco)’에 튀겨낸다.
크리스코는 1901년 미국의 '프록터 앤 갬블(P&G)'에서 최초로 상용화한 식물성 경화유다. 동물성 지방인 라드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목화씨에서 추출한 면실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쇼트닝'이라고 불린다.
미국 남부의 목화는 노예제와 흑인 노동의 역사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 목화에서 나온 기름으로 만든 크리스코가 미니의 부엌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튀기는 데 사용된다. 한쪽에서는 흑인들의 노동이 목화를 생산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흑인 여성들이 그 목화로 만든 기름으로 식탁을 차렸다.
미니는 셀리아에게 크리스코를 프라이드 치킨 뿐 아니라 아기 피부, 눈가, 발, 문 경첩 등 거의 모든 곳에 사용한다고 말한다. 전용 제품이 흔하지 않던 시절, 요리용 지방을 기름이 필요한 모든 곳에 활용하는 모습은, 당시 흑인 공동체의 절약과 자급적 생활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에 사는 흑인들에게 프라이드 치킨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비교적 저렴했던 닭은 흑인 가정에서 중요한 식재료였고, 여러 세대를 거쳐 남부 음식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영화에서 미니는 프라이드 치킨을 완성하고 자연스럽게 작은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시작하려한다. 셀리아 그런 미니 앞에 앉아 치킨을 손으로 집어 먹는다. 백인 고용주와 흑인 가정부라는 관계를 넘어 격의 없이 음식을 나누는 이 장면은 인종과 계급의 경계가 잠시 허물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달콤 씁쓸한 복수, ‘초콜릿 파이’
영화에서 초콜릿 파이는 미니의 요리 실력을 상징한다. 백인들의 모임과 사교 행사에 내놓을 만큼 유명했던 파이는 셀리아에게도, 힐리에게도 미니의 손맛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실제 영화에 참여한 제빵사는 촬영을 위해 무려 53개의 초콜릿 파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초콜릿 파이는 미국 남부에서 사랑받아온 전통적인 파이 가운데 하나다. 특히 미니의 파이는 달걀과 설탕, 버터, 코코아, 증발유 등을 섞어 구운 진하고 부드러운 초콜릿 체스 파이(chocolate chess pie)에 가까운데, 체스 파이는 비싼 재료가 없어도 만들 수 있어 남부 가정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음식이다.
미니는 자신을 부당하게 해고한 힐리에게 특별한 재료를 넣은 초콜릿 파이를 만들어 건넨다. 힐리가 그 파이를 맛있게 먹고, 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마친다. 그동안의 모욕과 하대를 음식으로 되돌려주는 순간 파이는 환대의 음식에서 통쾌한 저항의 도구로 바뀐다.
남부의 식탁을 차려온 흑인 여성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프라이드 치킨과 초콜릿 파이. 영화는 그 음식들을 통해 인종의 벽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식탁 위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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