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나 꿀까지 스피드 고단백 에너지원 효과

[Cook&Chef = 이승우 기자] 10월은 환절기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맘때면 찾아오는 불청객, 감기에 대응할 채비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으레 뜨끈한 쌍화탕을 데워 마시거나, 얼큰한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팍팍 풀어 땀을 낸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일본인들은 감기 기운이 돌 때 어떤 음식으로 몸을 달랠까?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드라마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낯선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감기에 걸려 누워있는 주인공에게 어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술'을 내어오는 장면 말이다. 결코 주당들의 허세가 아니다. 일본인들이 수백 년간 굳게 믿고 마셔온 감기약, 바로 청주에 날달걀을 풀어 만든 기묘한 민간요법 '타마고자케(卵酒·달걀술)'다.

귀하디귀한 식재료를 총동원한 에도 시대의 '마시는 링거'
'아플 때 웬 술이냐'며 기겁할 수 있지만, 타마고자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음료의 기원은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에서 달걀과 설탕은 서민들이 평소에 쉽게 맛보기 힘든 최고급 식재료이자, 단순한 식품을 넘어선 '약(薬)'으로 취급받았다. 몸져누운 환자의 기력을 억지로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집안에서 가장 귀한 달걀과 설탕을 아낌없이 꺼내 '백약의 장(百薬の長)'이라 불리던 청주(니혼슈)에 섞어 먹인 것이 그 시작이다. 즉, 타마고자케는 당시 일본인들이 아픈 가족을 위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하고 정성스러운 '영양제'였던 셈이다.

알코올과 달걀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놀라운 화학작용
타마고자케가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를 넘어 감기에 특효약으로 불리는 데는 탄탄한 화학적, 영양학적 근거가 있다. 주재료인 술, 계란, 설탕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먼저 뜨겁게 데운 청주(사케)는 몸의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돕고 체온을 급격히 끌어올려 땀을 배출시킨다. 날달걀은 쇠약해진 몸에 필수 아미노산과 고단백질을 즉각적으로 공급하는데, 특히 계란 흰자에 함유된 '리소자임(Lysozyme)' 성분은 몸에 침입한 세균의 세포벽을 녹이는 천연 면역 효소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듬뿍 들어간 설탕이나 꿀은 몸이 회복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가장 빠르게 뇌와 근육으로 전달한다. 체온 상승, 면역 공급, 에너지 충전이라는 감기 극복의 3대 요소를 한 잔에 꽉 눌러 담은 과학적인 처방전이다.

아차 하면 '계란국'이 된다… 집에서 시도해 보는 완벽한 레시피
타마고자케는 일본 내에서도 식당이나 이자카야에서 파는 메뉴라기보다는, 아플 때 집에서 가족이 끓여주는 '가정식 요법'에 가깝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온도 조절에 실패하면 달콤한 칵테일 대신 술 냄새가 진동하는 '계란국'을 맛보게 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팩사케 하나만 있으면 집에서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다. 실패 없는 타마고자케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그릇에 신선한 날달걀 1개와 설탕 1~2스푼을 넣고 멍울이 없도록 곱게 푼다.


▶냄비에 청주 한 홉(약 180ml)을 붓고 알코올이 적당히 날아가도록 끓기 직전(약 70~80도)까지 데운다.


▶[핵심 포인트] 데워진 술을 계란물에 '아주 조금씩 실처럼' 흘려 넣으며 거품기로 미친 듯이 젓는다. 뜨거운 술을 한 번에 확 부으면 계란이 익어 몽글몽글한 건더기가 생겨버린다.
끓일 자신이 없다면? 시판용 타마고자케를 공략하라
직접 만들어 먹을 엄두가 나지 않거나 완벽한 맛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일본 현지에서 판매하는 시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미야기현 센다이의 유서 깊은 주조 명가 '카츠야마(勝山) 주조'에서 출시한 '원조 타마고자케(元祖たまご酒)'다. 에도 시대 다테 가문(伊達家)의 어용 양조장으로 시작된 이 브랜드는, 과거 19세기 여성들이 즐기던 옛 제법 그대로 순미주(純米酒), 닭알, 설탕만을 사용해 타마고자케를 재현해 냈다.

첨가물이나 유화제 없이 만들어진 이 뽀얀 노란빛의 술은 잔에 따르는 순간 묵직함이 느껴진다. 한 모금 마시면 진하고 크리미한 질감과 함께, 마치 고급 커스터드 크림이나 푸딩, 밀크셰이크를 베어 문 듯한 기분 좋은 단맛이 혀를 감싼다. 알코올 도수가 10~11도 정도로 일반 청주보다 낮고 부드러워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차갑게 마셔도 좋고, 자기 전 뜨거운 물에 중탕해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굳어있던 온몸의 긴장이 눈 녹듯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으슬으슬 뼛속까지 찬 기운이 스며드는 환절기. 애주가라면 올가을엔 뻔한 감기약 캡슐 대신, 일본 전통의 따뜻한 감기약으로 술도 마시고 몸도 챙기는 것이 어떨까?
Cook&Chef / 이승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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