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은 수수와 찹쌀, 서양은 포도와 사과가 주재료
[Cook&Chef = 신혜연 칼럼니스트] 비행기나 기차 같은 빠른 교통수단이 없어서 동서양의 교류가 힘들었던 시대에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참으로 비슷한 것이 많았다. 음식문화를 공부하다 보면 그런 사례가 특히 많은데, 밀이나 쌀가루로 빵이나 떡을 만들어 먹은 것이나 소금이나 식초 등을 발견해 사용한 것 등이 그렇다.
특히 식초.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때 쌀이나 현미로 술을 만들고 남은 일부가 저절로 발효해서 만들어진 초에 과실과 약재를 넣어 유기산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다양한 곡물초를 만들어 사용했지만, 서양에서는 훨씬 일찍부터 식초를 사용해왔다. 현대인들에게 식욕을 돋워주는 양념으로, 항산화 음료로 점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동서양의 대표적 식초에 대해 알아봤다.
서양 식초의 기원은 자그마치 기원전 5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술을 만들다가 초산균이 들어가 자연스럽게 식초가 탄생했다. 시작은 동서양 공히 술이다. 제례를 위해, 위로를 위해 술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으니. 3천 년경, 수메르 사람들은 점토판에 와인으로 식초를 만들어 음식 보존제나 의약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이후 식초는 지난 7천 년 동안 연구와 발전을 거듭하며 인류에게 꼭 필요한 양념으로 자리잡았다.
참고로 서양 식초 이야기를 할 때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것은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Plinius the Elder가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 앞에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어느 날 파티에서 식초에 진주를 던져 넣고 녹여 마셨다”는 에피소드를 기록한 것이 “미인인 클레오파트라가 식초를 마셔 미모를 유지했다”고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딱 한 번 식초를 마신 것이 애용한 것으로 둔갑한 것. 하긴 내가 마케터라도 클레오파트라 정도면 어떻게든 끼워 넣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팩트체크는 했어야지.
가정상비약으로 사용되던 서양 식초
술을 만들다 우연히 만들어져서, 식품 보존제와 의료용품을 거쳐 점차 음식에 새콤한 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양념이 된 식초. 서양 문화권에서 현재 대표적인 서양의 식초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와인 비니거, 이탈리아의 발사믹 비니거, 미국의 애플 사이더 비니거다.
가장 대중적인 와인 비니거는 우리나라의 가양주처럼 포도로 만든 와인이 더 산화되어 만들어져서 묵직한 신맛을 내는 식초다. 오랫동안 우후죽순처럼 내려오던 와인 비니거 제조법들을 14세기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총집대성하여 전통 방식을 확립했다. 적포도주로 만들면 묵직하면서 강렬한 신맛을 내는 레드와인 비니거, 백포도주로 만들면 톡 쏘는 느낌의 산뜻하고 깔끔한 맛의 화이트와인 비니거가 된다. 프랑스의 마르탱 푸레나 스페인의 발데스피노, 이탈리아 필리포 베리오처럼 유서 깊은 브랜드들이 최고로 꼽힌다. 화인트와인 비너거는 채소나 과일로 피클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하고, 샐러드에 올리는 비네그레트 드레싱, 카프레제를 만들 때도 자주 사용한다.
와인 비니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발사믹 비니거는 포도주를 농축한 포도즙을 졸여 나무 통에서 10년 이상 숙성시켜 만들어 농도가 진득하고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지는 고급 식초다. 우리 씨간장처럼 해를 넘길수록 맛은 더 진해지고, 농도는 더욱 진득해진다. 중세시대에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 지역의 귀족들이 해독제나 감염병 예방 등의 약용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상쾌한, 치유하는’이란 뜻을 가진 ‘발삼balsam’을 붙여 ‘발사믹balsamico’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모데나 지역의 대표 품종인 트레비아노나 라브루스코 등의 청포도를 사용하고, 참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등으로 만든 나무통에서 발효시킨다. 빵 먹을 때 올리브오일에 점처럼 두어 방울 떨어뜨려서 빵을 찍어 먹으면 입맛이 돌아서 코스의 시작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포도를 재배하기 어려운 영국이나 북프랑스, 북미 지역에서는 풍부한 사과를 사용해 ‘애플 사이더’를 만들고, 이것을 다시 식초로 발전시켰다. 과일향이 살아서 청량한 신맛을 낸다. 18~19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감기 예방, 소화 촉진에 좋다고 해서 가정상비약처럼 두고 마시면서 널리 퍼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912년에 시작한 브래그Bragg가 애플 사이더 비니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소스보다 건강 음료로 더 각광받고 있다.
현대인의 건강 음료로 각광받기 시작한 동양의 흑초
동양에서도 식초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식초 제조법을 문헌으로 기록하고 체계화한 것은 중국. 기원전 1천 년경, 문헌에 식초를 뜻하는 ‘혜醯’라는 관직이 나오는데, 이 관직을 맡은 사람이 당시 왕실과 귀족들의 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식초를 관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6세기에는 북위의 가사협이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20여 가지가 넘는 구체적인 곡물 식초 양조법을 수록했고, 명 청시대를 거치며 산시성의 수수로 만든 라오천추(老陳醋), 장수성의 찹쌀로 만든 전장샹추(鎮江香醋), 쓰촨성의 한약재를 더한 바오닝추(保寧醋) 등이 널리 알려졌다.
일본에는 5세기경 중국과 우리나라로부터 술과 식초 양조 기술이 전래 되었고, 17~18세기 에도시대에 접어들며 스시문화가 유행하자 생선의 비린내를 잡고 밥이 시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카즈(술찌꺼기 식초)가 대량 생산 유통되었다. 근 현대에는 가고시마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흑초가 현대인을 위한 건강 음료로 알려지면서 더욱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흑초는 곡물초를 전통 항아리에 담아 1년 이상 노지에서 햇빛과 바람의 힘으로 발효시킨 것으로 곡물 특유의 구수한 향과 감칠맛이 좋고, 아미노산 함량이 높은 건강 식초다. 중국 흑초로는 곡물을 고온에서 볶아 발효시켜 구수한 전장샹추, 일본 흑초로는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200년 전부터 내려온 전통 방식으로 현미 발효식초를 생산하는 후쿠야마 흑초가 유명하다.
날이 갈수록 전세계의 식초 시장은 건강 효능을 강조하며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유기산 풍부하고, 구수하며 깊은 신맛을 뽐내는 우리 전통 발효 식초가 K-FOOD의 한 축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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