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징어’ 한 접시에도 여전히 인연은 이어진다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요즘 오징어회는 예전 같지 않다. 한때는 포장마차 수족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 몇 마리에 만 원이면 소주 한 병을 곁들여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안주였다. 이제는 어획량이 줄고 값이 올라 '금징어'라는 말까지 생겼다. 흔했던 것은 귀해졌고, 싸고 만만했던 음식은 어느새 마음먹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내게 오징어회는 맛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다.
오징어회에 대한 첫 기억은 평택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다. 초등학생 때였으니 아마 199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이모 댁에 갔고, 사촌형도 함께 있었다. 이모 댁으로 가기 전 시장에 들렀는데 사촌형이 엄마에게 삼천 원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오징어회 한 봉지를 사 들고 돌아왔다.
이모 집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으며, 사촌형은 똘똘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 없이 자란 형이었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와 구속 아래 그럭저럭 공부해서 대학에 갔고, 사회에 나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나름 사람 구실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형의 삶은 나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땅한 직업을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여러 불편한 일들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남아로 떠났다. 같은 자리에서 삼천 원짜리 오징어회를 나눠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아주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징어회를 볼 때면 가끔 슬픔이 머뭇거린다.
두 번째 기억은 재수생 시절이다.
7월의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청량리 청과물시장 근처 포장마차에서 같은 처지의 친구 셋과 오징어회를 먹었다. 수능은 11월에 있었고 우리는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야간 학습을 땡땡이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무리와 술을 마시러 갔다.
네 명의 주머니를 털어도 가진 돈은 많지 않았다. 만 원 남짓으로 오징어회와 소주를 시켰다. 좁은 포장마차에 앉아 땀을 흘리며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오징어회 한 점을 집어 먹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오징어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야간 학습을 마치고 나오는 무리가 부러워했다. 실상은 그렇게 흘려 보내면 안되는, 한 글자라도 더 공부해야 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탈이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어리석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징어가 특별히 좋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비싼 횟감도 아니었고, 유명한 식당도 아니었다. 그저 스무 살 언저리의 네 사람이 공부해야 할 시간을 몰래 훔쳐 한여름 밤을 나눠 먹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 그래서 맛있었을 것이다. 오징어회 한 점보다 우리가 몰래 훔쳐낸 그 시간이 맛있었다.
얼마 전 다시 오징어회를 먹었다.
이번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사람들과 먹었다. 예전처럼 몇천 원짜리 음식도 아니었고, 야간 학습을 몰래 빠져나온 것도 아니었다. 오징어는 예전보다 귀해졌고 우리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오징어회는 여전히 달고 쫄깃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맛난 오징어보다,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 오래 눈에 들어왔다.
오징어회를 함께 먹었던 사촌형은 멀리 떠났고, 재수생 시절 동고동락한 친구들은 어디에서 살아가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오늘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미 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만큼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까.
어릴 때는 사람과의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학교에 등교하듯, 다음 주에도 만날 수 있고, 내년에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보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오래된 인연일수록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짧을 수도 있다.
서운해할 일만은 아니다. 인연은 시간으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삼천 원짜리 오징어회를 함께 먹었던 짧은 시간도 인연이고, 한여름 밤 공부를 빼먹고 소주잔을 기울였던 몇 시간도 인연이었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짧은 인연은 짧은 대로 우리의 어느 한 시절을 함께 살아주었다.
짧은 인연에 아쉬워하지 말자. 오징어회는 먹으면 사라지지만, 우리의 인연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또다시 미화되어 살아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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