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한식에서 나물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식재료를 이해하고 다루어 온 시간의 축적이다. 산과 들에서 얻은 재료를 삶고 데치고 말려 쓰는 과정은 오래전 고조리서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계절에 따라 자연을 식탁으로 들여오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사리와 토란, 두릅과 머위 같은 재료는 각각의 성질에 맞는 손질을 거쳐 비빔밥과 국, 나물 반찬으로 활용되며 식단의 균형을 채워 왔다. 이 과정은 맛을 위한 조리이면서 동시에 영양을 보완하는 식생활의 지혜이기도 했다. 나물 한 접시에는 자연의 재료를 식재료로 완성해 온 조리의 감각과 계절을 살아온 생활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다.
산과 들에서 얻은 식재료를 식탁에 올리는 일은 한식의 중요한 축이다. 특히 봄철을 중심으로 형성된 나물 문화는 단순한 계절 음식이 아니라, 자연의 재료를 식재료로 전환해 온 오랜 생활 기술의 결과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식물은 특유의 쓴맛이나 자극 성분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다루는 손질과 조리법이 세대를 거쳐 축적되었다. 따라서 한식의 나물 문화는 특정 식물을 무리하게 섭취하는 문화라기보다, 식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다루어 온 조리 지식의 역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시대 고조리서에서도 확인된다. 「산가요록」에는 계절에 따라 채취한 나물을 말려 저장하는 방법이 등장하고, 「규합총서」와 「시의전서」에는 고사리, 두릅, 머위, 토란 등 다양한 재료를 삶거나 데쳐 사용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나물이 생으로 사용되기보다 ‘익혀서 쓴다’는 전제가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식물 고유의 강한 기운이나 자극을 줄이기 위한 생활 속 지혜이기도 했다. 고조리서에 나타나는 이러한 조리 과정은 단순한 레시피를 넘어 식재료를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재료로는 고사리를 들 수 있다. 고사리는 오래전부터 말려 저장해 두었다가 국이나 나물로 사용해 온 식재료로, 조선 후기 기록에서도 건나물을 불려 무치거나 탕에 넣는 방식이 나타난다. 고사리는 특유의 향과 질감을 지니고 있어 비빔밥, 육개장, 산적 곁들임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되며, 섬유질이 풍부해 포만감을 주는 재료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말린 상태로 보관이 가능해 계절을 넘겨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부터 중요한 식재료였다. 삶고 불리는 과정을 거치면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떫은맛이 줄어들어 조리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토란 역시 식탁에서 오래 사랑받아 온 재료다. 토란국은 제사상과 명절 음식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토란이 예부터 저장성이 좋고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식재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토란은 충분히 익혀야 특유의 아린 느낌이 줄어들기 때문에 국이나 탕으로 조리하는 방식이 발달했다. 영양적으로는 전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가 비교적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으로 섭취하기에 적합해 겨울철 국물 요리에 자주 사용되었다.
봄철 산나물로 널리 알려진 두릅과 머위도 한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두릅은 데쳐서 초고추장에 곁들이거나 나물로 무쳐 먹는 경우가 많고, 특유의 향이 있어 입맛을 돋우는 재료로 인식된다. 머위는 잎과 줄기를 모두 활용해 나물로 무치거나 볶아 먹는데, 쌉싸름한 풍미가 있어 고기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이런 나물류는 대체로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겨우내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을 보충하는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어린 순을 중심으로 채취해 사용하는 방식은 질감과 맛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나물은 단순한 채소 반찬이 아니라, 한식의 식단을 균형 있게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곡물 중심 식사에 부족하기 쉬운 식이섬유와 미량 영양소를 보완해 주었고, 데치고 무치는 조리법은 기름 사용을 줄이면서도 풍미를 살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나물을 이용한 음식은 계절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건강을 돌보는 식사로 인식되었고, ‘봄에는 나물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고조리서에 등장하는 나물 조리법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손질과 조리의 과정이 강조된다. 삶기, 데치기, 말리기, 불리기 같은 공정은 식재료의 질감을 부드럽게 하고 맛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조리법은 시간이 걸리지만, 식재료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의 음식 기록 속에서 나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산과 들에서 얻은 재료를 일상적인 식사로 끌어들인 방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미 손질된 나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이러한 과정을 직접 경험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나물을 삶고 말리고 다시 불려 쓰는 일이 집안의 중요한 일상이었고, 그 과정 속에서 식재료의 성질과 조리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그 덕분에 나물은 단순한 반찬을 넘어, 계절의 흐름을 식탁에 담아내는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결국 한식에서 나물은 특정한 식재료를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온 방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강한 향과 맛을 지닌 재료를 조리로 부드럽게 다루고, 계절에 맞게 활용하며, 영양을 보완하는 식단으로 발전시켜 온 과정이 지금의 나물 문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전통은 화려하지 않지만, 식재료를 이해하고 존중해 온 한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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