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우리는 허브라고 하면 바질, 타임, 딜 같은 서양 식재료를 떠올린다. 파스타 위에 흩뿌려지거나 샐러드에 생으로 올라가고, 고기나 생선의 풍미를 정리하는 잎들이다. 그러나 허브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정의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허브란 주재료가 아니라 향으로 음식의 방향을 바꾸고, 맛의 무게를 조절하며, 때로는 몸의 반응까지 고려하는 식물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 식탁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허브가 존재해왔다.
서양의 허브들은 분명 그들만의 역할과 맥락을 갖고 있다. 딜은 생선 요리에서 비린 향을 누그러뜨리고, 타임은 고기 지방의 무게를 정리하며, 바질은 토마토와 기름을 연결해 요리의 중심 향을 만든다. 이들은 서양 요리의 구조 안에서 탄생한 허브들이고, 굳이 한국 재료와 일대일로 대응시킬 필요는 없다. 이 허브들은 비교의 대상이라기보다, 우리가 ‘허브’를 떠올릴 때 기준으로 삼아온 출발점에 가깝다.
문제는 그 기준 밖에 밀려난 한국의 향채들이다.
깻잎은 단순한 쌈 채소가 아니다. 불판 위에서 구운 고기 한 점을 깻잎에 싸 먹는 순간, 깻잎은 지방의 냄새를 덮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향의 층위를 만든다. 장과 고기 사이에서 향의 연결 고리가 되고, 음식의 끝맛을 또렷하게 남긴다. 이는 바질이 토마토 요리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다르지 않다.
미나리는 국물 요리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곰탕이나 매운탕, 찌개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미나리는 무거워진 국물의 흐름을 바꾼다. 향으로 입안을 정리하고, 다음 숟가락을 준비하게 만든다. 미나리가 ‘해독의 채소’로 인식되어 온 이유는 약성 때문만이 아니라, 조리 과정에서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쑥은 한국 허브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떡에 들어가고, 국에 들어가며, 봄이라는 계절을 인식하게 만든다. 쑥의 쓴맛은 단순한 맛 요소가 아니라 음식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몸을 깨우고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역할은 서양 허브의 쓰임과 정확히 겹친다.
그리고 방아잎이 있다.
방아는 한국, 특히 남부 지역 음식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허브다. 생선국이나 국밥에 소량 들어가면 음식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잡내를 제거하기보다는 향으로 지역성을 각인시키고,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하게 만든다. 설명하기 어렵고, 대체 불가능한 이 향은 서양 허브 중 어느 것과도 정확히 대응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에서 방아는 한국만의 허브다.
여기서 한국 허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정리해 보면 이해는 더 분명해진다.
깻잎은 고기와 함께 쓰일 때 가장 강력하다. 구이, 전, 쌈의 형태로 지방과 단백질을 감싸며 향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미나리는 국물과 발효 음식에서 힘을 발휘한다. 탕과 찌개, 전골의 마무리로 들어가 무거운 맛을 정리하고 입안을 리셋한다. 쑥은 떡과 국, 전에서 계절성과 목적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방아는 생선국, 국밥, 탕류에서 향으로 지역의 기억을 남긴다. 이 재료들은 모두 소량으로 음식의 인상을 바꾸며, 주재료를 돋보이게 하는 허브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흥미로운 지점은 서로 닮은 허브들이다.
부추는 흔히 나물이나 반찬으로 분류되지만, 조리에서의 역할을 보면 차이브와 매우 닮아 있다. 기름진 전이나 고기 요리에 소량 들어가면 알싸한 향이 맛의 끝을 정리한다. 부추전이 무겁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서양 요리에서 차이브가 수행하는 역할과 다르지 않다.
열무 역시 마찬가지다. 열무김치의 시원한 알싸함은 겨자과 채소 특유의 향에서 비롯된다. 이 향은 기름기 있는 음식과 만났을 때 더욱 또렷해진다. 샐러드에서 루꼴라가 기름과 만나 맛의 균형을 잡듯, 열무는 국물과 발효의 세계에서 같은 역할을 해왔다.
물론 이 재료들은 식물학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요리에서의 쓰임, 향의 기능, 맛을 조율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우리는 바질과 타임을 허브라 부르면서도, 부추와 열무를 허브로 인식하지 않았다. 이는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인식의 문제다.
서양 요리 용어가 기준이 되면서 허브는 외국의 것이 되었고, 한국의 향채들은 나물이나 부재료로 밀려났다. 이름을 잃은 순간, 재료의 역할과 가치는 함께 낮아졌다.
지금 음식은 다시 향을 찾고 있다. 고기 중심의 식단에서 벗어나고, 채식과 저속노화, 로컬과 테루아가 중요한 화두가 된 지금, 한국의 허브들은 새로운 재료가 아니라 재발견된 재료다.
한국에는 허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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