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정수연 기자] 지난 5월 1일, 프랑스 총리 세바스티앵 르코르뉘와 전 총리 가브리엘 아탈이 노동절에도 문을 연 빵집을 찾아 바게트를 샀다. 평범한 점심거리 구매는 곧 정치적 장면이 됐다. 프랑스 노동법은 5월 1일을 원칙적으로 의무 휴일로 두고 있으며, 당시 의회에서는 빵집과 꽃집을 비롯한 일부 업종이 자발적으로 근무하는 직원을 고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명문화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두 정치인의 방문은 동네 상점의 영업을 보장하려는 행보라는 지지와 노동절의 의미를 흔드는 정치적 연출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불렀다.
빵 한 개를 산 일이 어떻게 노동법과 휴식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질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바게트의 제조법보다 먼저, 프랑스에서 빵이 지녀온 사회적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빵은 어떻게 시민의 권리가 되었나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빵은 서민의 하루를 지탱하는 주식이었다. 흉년과 곡물 부족으로 빵값이 오르면 한 가족의 생계가 흔들렸고, 빵을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거리의 시위와 정치적 요구로 이어졌다. 혁명정부가 곡물 가격과 배급을 국가적 문제로 다룬 배경에도 빵을 확보하지 못한 시민들의 삶이 놓여 있었다.
빵의 문제는 공급량에 머물지 않았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식탁에 오르는 빵의 품질이 달랐고, 사람들은 매일 먹는 빵을 통해 계층의 차이를 확인했다. 자유와 평등이 새로운 사회의 언어로 떠오르자, 누구에게 어떤 빵을 공급할 것인가도 혁명의 의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평등의 빵’이었다. 자코뱅 정치인 길베르 롬은 혁명력 2년 샤랑트와 도르도뉴에서 도시와 농촌 주민은 물론 제철소와 주물공장의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식량 배급 체계를 추진했다. 전쟁과 식량난 속에서 시행된 한시적인 정책이었지만, 계층을 가리지 않고 빵을 나누려 했다는 점에서 혁명기의 평등사상을 식탁 위에 옮긴 시도로 평가된다.
오늘날의 바게트는 이보다 훨씬 뒤에 모습을 갖췄다. 두 시대를 잇는 것은 빵의 형태가 아니라 빵을 시민의 생존과 권리,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태도다. 혁명은 바게트를 만들지 않았지만, 빵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공급할 것인지를 정치의 언어로 묻는 역사를 남겼다.
혁명의 빵과 오늘날의 바게트 사이
가늘고 긴 프랑스 빵은 19세기에도 존재했지만, ‘바게트’라는 명칭이 지금의 형태를 가리키기 시작한 시점은 20세기 초 파리였다. 1900년대 초 제빵 관련 문헌에 바게트라는 이름이 등장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에는 프랑스의 공식 물가 자료에도 하나의 빵 종류로 기록됐다.
그 무렵 제빵사의 노동시간도 달라졌다. 프랑스는 1919년 제빵소의 야간 노동을 폐지하는 법을 마련했다. 이 법은 바게트의 탄생을 한 사건으로 설명하는 근거보다, 도시의 아침 식사와 빵을 만드는 사람의 노동시간이 함께 재편되던 시대의 배경을 보여준다. 아침 판매에 맞춰 빵을 구워야 하는 상황에서 가늘고 긴 형태는 도시의 새로운 생활 리듬과 어울렸다.
바게트는 처음부터 프랑스 전역을 대표한 빵도 아니었다. 파리의 이색적인 빵으로 자리 잡은 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방으로 확산됐고, 1957년에는 프랑스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정할 때 기존의 크고 무거운 빵을 대신해 300g 바게트를 기준 품목으로 채택했다. 근대 파리에서 시작된 빵이 프랑스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품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기의 빵과 현대의 바게트 사이에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놓여 있다. 그러나 빵을 삶의 조건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이어졌다. 바게트는 프랑스인이 빵에 부여해온 사회적 의미를 근대의 도시생활과 식탁 안에서 이어받은 음식이었다.
아침 빵집부터 저녁 식탁까지
바게트가 프랑스의 얼굴이 된 데에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있었다. 유네스코는 바게트를 프랑스에서 연중 가장 널리 소비되는 빵으로 소개한다. 가족의 식탁과 식당, 직장과 학교의 급식에서 두루 먹으며, 바게트를 구입하기 위해 매일 빵집을 찾는 습관 자체가 다른 빵과 구분되는 사회적 관행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아침에는 버터와 잼을 곁들이고, 점심에는 햄과 치즈를 채운 샌드위치로 먹으며, 저녁에는 수프와 고기 요리를 받쳐준다. 한 끼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음식의 맛을 이어주는 역할도 맡는다. 프랑스 정부 역시 바게트가 아침과 점심, 저녁의 생활 리듬을 이루며 빵을 사러 가는 행위가 이웃과 만나는 문화적 시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갓 구운 바게트를 그날의 식사에 맞춰 사는 습관은 사람들을 동네 빵집으로 향하게 한다. 이 반복 속에서 빵집은 식품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하루의 안부가 오가고 이웃의 생활이 만나는 공간이 된다. 바게트는 특별한 기념일에 꺼내는 음식보다 프랑스인의 평범한 하루를 구성하는 빵에 해당한다.
혁명기에 빵은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공정하게 공급해야 할 주식으로 논의됐다. 오늘날 바게트는 누구나 동네 빵집에서 사고, 여러 사람이 식탁에서 나누는 모습으로 그 의미를 이어간다. 역사의 관념이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장면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법으로 지키고 생활로 이어온 바게트
프랑스는 산업화가 진행된 뒤에도 빵을 법의 영역에서 다뤘다. 1993년 제정된 법령은 ‘프랑스 전통 빵’과 ‘매장에서 만든 빵’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정했다. 매장에서 만든 빵은 반죽과 성형, 굽는 과정이 판매 장소에서 이뤄져야 하며, 프랑스 전통 빵은 제조 과정에서 냉동 처리를 거치지 않고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반죽으로 만들어야 한다. 법은 바게트의 길이와 모양보다 명칭과 제조 조건, 장인의 작업 방식을 보호했다.
전통 프랑스 빵은 밀가루와 물, 소금에 효모나 발효종을 더해 만든다. 기본 재료는 간결하지만 발효 시간과 온도, 반죽을 다루는 방식과 굽는 정도에 따라 빵집마다 향과 식감이 달라진다. 법이 마련한 공통의 기준 안에서 제빵사는 자신의 기술로 각기 다른 바게트를 완성한다.
파리시는 1994년부터 해마다 최고의 바게트를 뽑는 경연대회를 열어 외형과 맛, 굽기, 속살과 기공을 평가한다. 우승한 제빵사는 1년 동안 엘리제궁에 바게트를 공급하는 영예를 얻는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빵을 만드는 기술에 국가적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다.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대상도 바게트라는 완성품에 한정되지 않았다. 등재된 명칭은 ‘바게트 제빵의 장인적 노하우와 문화’였다. 재료를 계량하고 반죽한 뒤 발효하고 성형하며, 칼집을 내고 굽는 기술과 그 지식이 전승되는 과정, 빵집을 찾아 바게트를 사고 식탁에서 나누는 생활까지 문화의 일부로 인정받았다.
시대마다 프랑스가 빵에서 지키려 한 대상은 달라졌다. 혁명기에는 시민에게 돌아갈 빵의 공급과 품질을, 산업화 이후에는 전통 제빵의 명칭과 장인의 기술을, 유네스코 등재에서는 빵을 만들고 사서 나누는 생활 전체를 중요한 가치로 확인했다. 바게트 한 개를 둘러싼 프랑스의 약속은 이렇게 법과 기술, 일상 속에서 이어져 왔다.
먹을 권리에서 쉴 권리까지
다시 노동절의 빵집으로 돌아가 보자. 프랑스 총리가 바게트를 산 장면이 커다란 논쟁으로 번진 이유는 바게트가 식탁 위의 상품을 넘어 시민의 생활과 제빵사의 노동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5월 1일은 노동자가 쉬는 날로 보장된다. 한편 동네 빵집은 시민에게 매일 먹을 빵을 공급하는 생활 기반으로 여겨진다. 빵집의 노동절 영업을 둘러싼 논쟁에는 시민의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이어가려는 요구와 노동자의 휴식을 지키려는 가치가 함께 놓여 있다. 관련 법안이 2026년 4월 하원에서 부결된 뒤 다시 상원으로 넘어간 사실도 이 문제가 여전히 프랑스 사회의 선택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혁명기의 프랑스는 시민이 먹을 빵의 가격과 품질을 물었다. 1919년에는 밤새 빵을 만들던 제빵사의 노동시간을 법으로 다뤘고, 1993년에는 장인의 제조 방식과 명칭을 보호했다. 오늘날 프랑스는 매일의 빵을 만드는 노동자가 언제 일하고 언제 쉴 것인지를 다시 묻고 있다.
바게트 한 개를 둘러싼 약속은 시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졌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빵을 마련하고, 그 빵을 만드는 사람의 노동과 휴식을 존중하며, 동네 빵집과 식탁에서 이어지는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약속이다.
바게트가 프랑스를 상징하는 이유는 가장 화려하거나 오래된 빵이어서가 아니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빵을 통해 평등과 노동, 일상을 다뤄온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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