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데워주는 영양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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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Chef = 송채연 기자] 가을 산길을 걷다 보면 발끝에 바스락거리는 낙엽 사이로 반짝이는 밤송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삐죽삐죽한 가시를 품은 채 제철을 기다리던 밤은 어느새 윤기 나는 갈색 옷을 입고, 포슬포슬한 단맛으로 계절을 알린다.
밤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가을이 우리에게 건네는 천연 영양제다. 그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풍요와 건강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오랜 세월, 귀한 존재로 남은 이유
밤은 약 2,000년 전 낙랑시대 유적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래전부터 우리 식탁에 올라온 견과류다. 조선 시대에는 조정에 바치는 공물로 쓰였고, 혼례나 제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폐백례에서 밤과 대추를 던지던 풍습은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밤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며, 특히 충남 공주와 전남 광양은 품질 좋은 알밤 산지로 유명하다. 공주에서는 매년 ‘겨울공주군밤축제’가 열려 갓 구운 밤의 고소한 향이 거리를 채운다. 밤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추억이자, 지금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음식이다.
천연 비타민 덩어리, ‘밤’의 건강 효능
밤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 등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가 잘되고, 포만감이 오래가 다이어트 간식으로도 적합하다. 『동의보감』에는 “기를 북돋우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배고픔을 가신다”고 기록돼 있다.
비타민 B1은 면역력과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고, 비타민 C는 자외선으로 손상된 피부를 보호한다. 탄닌과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성분은 노화를 늦추고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어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 특히 필수 지방산인 오메가-3와 오메가-6가 풍부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혈액순환을 돕는다.
밤의 열량은 100g당 162㎉로, 다른 견과류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달콤한 맛에 비해 지방 함량이 적어 ‘밤은 살찐다’는 편견은 이제 접어두어도 좋다.
밤 껍질, 버리면 안되는 이유
달콤한 알맹이 뒤에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밤 껍질이다. 밤 껍질에는 탄닌,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해 항산화와 항염 효과가 뛰어나다. 피부 노화를 늦추고 주름을 완화하며, 구강 내 세균 억제와 잇몸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속껍질(율피)은 특히 미용 재료로도 활용된다. 『동의보감』에는 “밤 껍질을 꿀에 개어 바르면 주름을 펼 수 있다”고 기록돼 있으며, 현대에는 율피 성분을 이용한 비누와 팩이 출시되기도 했다.
집에서도 간단히 활용할 수 있다. 속껍질을 잘 말려 가루로 빻은 뒤 꿀과 섞어 팩으로 바르면 천연 탄닌이 모공 수축과 피부 결 정리에 효과적이다.
제대로 즐기고, 오래 보관하는 법
좋은 밤을 고르려면 껍질이 매끈하고 광택이 있으며, 물에 담갔을 때 가라앉는 것을 선택한다. 삶기 전 소금물에 1시간 정도 담가두면 벌레 먹은 밤을 쉽게 골라낼 수 있다. 삶거나 구울 때는 껍질에 작은 칼집을 내면 속껍질까지 깔끔하게 벗겨진다. 보관은 0도 전후의 서늘한 곳이 좋다. 깨끗이 씻어 물기를 없앤 뒤, 지퍼백에 넣어 냉장하면 신선함이 유지된다. 장기 보관을 원한다면 삶은 후 냉동실에 넣자.
자연 해동하거나 찜기에 살짝 쪄 먹으면 포슬포슬한 식감과 달콤한 향이 그대로 살아난다.
가을의 리듬을 되찾는 한 알
밤은 가을의 단맛을 품은 자연의 선물이다. 한 알을 까서 입에 넣으면 고소한 향과 함께 계절의 온기가 번진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천천히 익어가는 밤처럼, 우리 몸도 계절의 리듬에 맞춰 숨 고르기를 배운다.
포슬포슬한 밤 한 줌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Cook&Chef /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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