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현민 기자] "치킨은 과연 한식(Korean Food)인가?”
이 질문은 오랫동안 미식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이 먹던 ‘프라이드 치킨’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시장 통닭과 전기구이 시대를 거쳐, 1970년대 식용유의 보급과 함께 정착한 치킨은 태생적으로 ‘미국 음식’의 DNA를 품고 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은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가장 바삭하고(Crispy)’, ‘가장 다채로운(Sauced)’ 독자적인 장르로 진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그 ‘청출어람’의 맛이 태평양을 건너 치킨의 종주국인 미국 본토를 점령하고 있다.
■ ‘원조’ KFC 제친 K-치킨… 미식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최근 터졌다. 제너시스BBQ가 미국의 저명한 음식 전문 매체 ‘테이스트 오브 홈(Taste of Home)’이 선정한 ‘미국 내 최고의 프라이드 치킨 체인’ 1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순위 경쟁이 아니다. KFC, 윙스탑(Wingstop) 등 콧대 높은 미국 본토 브랜드들을 한국 토종 브랜드가 맛과 품질로 눌렀다는 ‘사건’이다.
현지 매체는 “KFC가 눅눅한 튀김옷에 머물러 있을 때, 한국 치킨은 소스를 바르고도 바삭함을 유지하는 기술(Coating technique)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미군 부대 밖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던 ‘튀김 요리’가 70년 만에 ‘K-치킨’이라는 프리미엄 장르로 재탄생해 역수출된 셈이다.
■ “공격 앞으로!”… 전 세계 홀린 3사(社)의 마케팅 필승법
2025년, 국내 치킨 3사(BBQ·교촌·bhc)는 좁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영토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3사가 택한 ‘승리 공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1) BBQ: “스포츠와 문화를 점령하라” (Scale & Culture) ‘국가대표 치킨’을 표방하는 BBQ는 가장 공격적이다. 2025년 하반기 기준 57개국 700여 개 매장이라는 압도적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단순한 시식을 넘어 ‘문화’를 판다.
스포츠 마케팅: 미국 내 지역 사회(경찰·소방서) 후원 캠페인인 ‘폴라리스’ 전략에 이어, 최근에는 FC바르셀로나 아시아 투어 스폰서십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전 세계 남성 팬들의 ‘스포츠+치맥’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K-컬처 결합: 드라마 PPL로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미국 매장을 ‘K-다이닝’ 공간으로 꾸며 BTS나 오징어게임 등 한류 문화를 소비하러 오는 팬들의 성지로 만들었다.
(2) bhc: “동남아의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을 공략하라” (Trend & Speed) 후발주자 bhc의 성장세는 무섭다. 2024년 해외 매출 304% 성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 뒤에는 철저한 ‘타겟 마케팅’이 있다.
인플루언서 전략: 주력 시장인 동남아(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현지 유명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해 ‘먹방(Mukbang) 챌린지’를 유행시켰다. 이는 스마트폰 사용량이 높은 현지 MZ세대에게 적중했다. 태국에서는 ‘인플루언서가 뽑은 치킨 브랜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이닝 전략: 배달 위주인 한국과 달리, 동남아 매장은 가족 외식을 즐기는 ‘패밀리 레스토랑’ 형태로 고급화하여 ‘특별한 날 먹는 음식’으로 포지셔닝했다.
(3) 교촌: “우리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요리다” (Craftsmanship & Premium) 교촌은 ‘속도’보다는 ‘깊이’를 택했다. 붓으로 소스를 하나하나 바르는 조리 과정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슬로우 푸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고급화 전략: 최근 리뉴얼한 미국 LA 매장은 ‘교촌 허니(Kyochon Honey)’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도입, 치킨을 맥주/와인과 곁들이는 고급 요리로 격상시켰다.
소스의 힘: 현지인들에게 생소한 ‘간장 마늘 소스’의 중독성을 강조하며, 자극적인 매운맛에 지친 글로벌 미식가들을 ‘단짠’의 세계로 유도하고 있다.
■ K-치킨, 이제는 ‘장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현상을 ‘K-치킨의 장르화(Genre-fication)’라고 진단한다.
유로모니터(Euromonitor) 등 시장조사기관은 북미·아시아의 한국식 치킨 시장이 향후 3년간 연평균 1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구권의 프라이드 치킨이 ‘값싼 패스트푸드’로 인식되는 반면, K-치킨은 다양한 소스와 얇은 튀김옷, 그리고 치맥이라는 식문화가 결합된 ‘트렌디한 외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미군 부대 앞, 아버지가 사 오시던 누런 봉투 속 통닭이 2025년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글로벌 미식’이 되기까지. K-치킨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맛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한때 K-치킨은 한류 드라마 인기에 편승한 ‘이색 간식’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데이터가 말해주는 진실은 다르다. BBQ, bhc, 교촌 등 국내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철저한 현지화와 마케팅 전략을 통해 치킨을 단순한 유행 상품(Fad)이 아닌, 지속 가능한 외식 장르(Genre)로 안착시켰다.
미국 소비자들이 KFC의 눅눅함 대신 한국식 치킨의 ‘크리스피함’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이제 과제는 ‘확장’을 넘어 ‘수성’이다. 현지 브랜드들의 벤치마킹이 시작된 지금, 우리 기업들이 보여줄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K-치킨이 더 이상 ‘Korean Fried Chicken’이라는 수식어에 갇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제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어가고 있다.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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