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기자] 추석이 가까워지면 논에는 벼가 여물고 밤과 대추가 들었으며, 감이 붉어지고 산에는 송이향이 퍼진다. 강과 바다에서는 철을 맞은 어물이 잡았다. 가을의 햇산물은 각 지역에서 궁궐로 향했다.
궁중의 한가위는 음력 팔월에 들어서면 전국의 특산물로 명절을 위한 의례와 잔치를 준비해 종묘에 먼저 천신했고, 왕실 각 전궁에 올릴 물선도 차례로 마련됐다. 한가위를 앞둔 궁궐에는 음식보다 먼저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종 12년인 1517년 팔월 3일, 왕은 이미 보름날 대비전에 진풍정을 올리고 백관과 명부가 함께하는 잔치를 어떻게 치를지 예조와 논의하고 있었다. 하루에 모두 치르기 어렵다면 다음 날까지 이어갈 것인지, 어느 전각에서 열 것인지도 살폈고, 중종 37년인 1542년에도 팔월 초부터 세자가 추석 진풍정을 준비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궁궐 안에서 의례와 잔치를 의논하는 동안 지방에서는 그해의 산물을 마련했다. 1776년 왕명으로 정리된 『공선정례』에는 지역마다 어느 달에 무엇을, 어느 전궁에 얼마만큼 올렸는지가 세세한 기록을 통해 당시 궁궐로 향했던 가을의 식재료를 엿볼 수 있다.
산물이 일찍 나거나 늦게 나면 실제 익는 때에 맞췄다. 태종 때에도 천신할 앵두가 정해진 날까지 익지 않자 보름을 기다리기보다 열매가 익는 즉시 올리도록 했다. 후대의 규정에도 신물이 제때 나지 않으면 지방관이 봉진 시기를 늦추도록 청할 수 있었다. 궁중의 계절은 날짜보다 산과 들의 시간을 따랐다.
먼 길을 온 신물은 궁궐에 도착했다고 바로 종묘에 올라가지 않았다. 『태상지』를 보면 각지에서 온 물품을 확인하고 상태를 살핀 뒤 천신할 것을 정했다. 관원이 이를 모시고 종묘에서 재숙한 후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올렸다. 여러 품목이 비슷한 때 도착하면 함께 천신하기도 했다.
품질 또한 중요했다. 강원도에서 올린 은구어가 지나치게 작고 좋지 않아 관련 관리들이 문책된 기록을 통해 처음 난 것을 올린다는 뜻만큼, 어떤 것을 골라 올리는지도 중요했다. 산지에서 수확하고, 좋은 것을 가려 보내고, 궁궐에서 다시 상태를 살핀 뒤 종묘로 올리는 과정이 이어졌다.
식재료는 궁에 들어온 뒤 음식의 형태를 갖췄다. 『탁지지』에는 붕어와 함께 감장·간장·초·후추가 마련되고, 생게에는 소금, 송이에는 간장이 배정된 기록이 보인다. 홍시와 대추, 생밤은 각각 정해진 양을 갖추고 신청주도 따로 준비했다. 단순히 무엇이 들어왔는지를 넘어, 그 재료를 다루기 위해 어떤 장과 조미료가 함께 사용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왕실에 들어온 물선은 왕 한 사람의 음식만이 아닌, 대전과 왕대비전, 중궁전, 세자궁으로 각각 나뉘어 들어갔고 수량도 달랐다. 『공선정례』에는 경기에서 중궁전으로 생게와 송이, 밤을 올린 기록도 남아 있다. 같은 계절의 산물이라도 어느 전에 올리는가에 따라 양과 구성이 달라졌다.
보름이 가까워지면 팔월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물선과 별도로 추석이라는 명일을 위한 물품도 마련됐다. 『공선정례』에는 정조와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일물선이 따로 정리되어 있다. 추석에는 의정부와 육조에서 대전과 왕대비전, 중궁전에 생치를 올리도록 했다. 팔월 내내 들어온 제철 산물 위에 명절을 위한 물선이 더해지며 왕실의 한가위가 갖춰졌다.
어느 지역에서 무엇이 얼마나 났는지, 정해진 진상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역시 궁궐에 전해졌다. 흉년이나 수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지방관이 작황과 백성의 형편을 장계로 알리고 진상을 줄이거나 멈춰달라고 청했다.
세종 즉위년인 1418년에는 흉년을 이유로 먼 지방에서 여러 전으로 올리던 진상을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중종 12년인 1517년에도 농사를 크게 잃은 고을에 예전처럼 잡물을 진상하게 하면 백성이 더욱 곤궁해진다며 진상을 감하도록 했다. 궁궐의 필요보다 흉년을 겪는 백성의 부담을 먼저 살핀 것이다.
영조 39년인 1763년 제주에 흉년이 들자 명일 진상을 이듬해 가을까지 멈추도록 했다. 왕실에 올릴 물품의 몫은 굶주린 백성을 위한 진휼에 보태게 했다. 추석을 비롯한 명절을 위해 궁궐로 보내야 했던 산물이 지역의 구휼을 위해 남게 된 것이다.
순조 14년인 1814년 팔월 초하루에도 영남의 흉작과 수해로 백성의 어려움이 커지자 삭선과 물선의 진상을 이듬해까지 정지시켰다. 이어 위유사를 영남 32읍에 보내 재해를 입은 백성을 또한 위로하도록 했다. 곧 왕실의 상을 줄이는 조치가 지역의 형편을 살피는 일로 이어졌다.
궁궐의 한가위는 한 해 농사의 결실만 확인하는 자리기 보다 흉년과 수해로 제 몫의 진상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고을의 사정을 살피며 왕은 지방관의 장계와 작황 보고, 진상 감면 요청을 통해 각 지역의 형편을 살폈다. 필요에 따라 왕실의 몫을 줄이고 구휼을 명했다.
풍요와 부족, 백성의 삶까지 궁궐로 향했던 셈이다.
다시 팔월 초의 풍경을 돌아보면 궁중의 한가위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궁에서는 잔치와 의례를 준비하고, 각지에서는 그해 처음 난 산물을 골라 길을 떠났다. 신물은 종묘에 먼저 올리고, 명절을 위한 물선과 음식도 차례로 갖췄다. 동시에 농사를 잃은 고을의 소식이 올라오면 받을 것을 줄이고 그 지역의 백성을 살폈다.
한가위는 풍성함을 나누는 날만은 아닌, 한 해의 얻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고, 나누는 날이었다. 풍년을 기뻐하면서도 수확이 부족한 곳을 함께 돌아보았다.
얻은 결실에 감사하고, 모자란 곳을 조용히 살피며 챙기는 마음. 예나 지금이나 한가위가 오래도록 지켜온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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