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구석구석 돕는 해양 먹거리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바다 밑을 느릿하게 기어 다니는 해삼은 겉모습만 보면 그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부터 중국 황실에서는 해삼을 인삼에 견줄 만큼 귀하게 여겼고, 일본 미식가들 역시 내장 젓갈 ‘고노와다’를 별미로 즐겨왔다. 한국에서도 횟집 기본 반찬 정도로 가볍게 접하지만, 영양 구성과 최근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면 해삼은 단순한 안주를 넘어선 ‘해양 보양식’에 가깝다.
단백질·무기질·사포닌까지…몸을 튼튼하게 하는 영양 창고
해삼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단백질 함량과 낮은 열량이다. 지방이 많지 않아 100g당 열량이 높지 않은데도 단백질과 칼슘·철·인 등 무기질이 고루 들어 있다. 따라서 성장기 아이들의 뼈와 치아 형성, 골다공증을 걱정해야 하는 중·장년층의 뼈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식품으로 꼽힌다.
특히 해삼의 연골에는 황산콘드로이틴이 풍부하다. 관절 사이에서 완충 작용을 하는 성분으로,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관절 윤활 기능을 보완해 관절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혈액 응고를 돕는 미네랄이 풍부해 상처 치유와 빈혈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다.
해삼 내장에는 인삼의 사포닌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물질이 들어 있다. 일본에서 내장을 젓갈로 만든 ‘고노와다’가 고가에 거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고, 전통 한의학에서는 피를 보하고 원기를 끌어올리는 약재로 사용돼 왔다.
체중 관리 측면에서도 해삼은 매력적인 식품이다. 포만감은 높지만 열량은 낮고, 소화 흡수가 비교적 수월해 비만이 걱정되는 이들에게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해산물이라는 게 영양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연구진 “해삼 추출물, 암 전이 돕는 효소 억제”
최근에는 항암 효과 가능성이 입증되며 제약·의학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미시시피대 연구팀은 해삼에서 분리한 복잡한 당류 구조가 ‘설파타제-2(Sulf-2)’라는 효소의 작용을 막아 암세포 성장과 전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설파타제-2는 유방암·폐암·췌장암 등 여러 난치성 암에서 과활성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효소다.
연구팀은 해삼 유래 물질이 이 효소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존 화학 항암제처럼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방식이 아니라, 암세포가 성장에 이용하는 신호 체계를 교란해 전이를 어렵게 만드는 ‘표적 치료제’ 후보라는 설명이다.
또한 해삼에서 얻은 물질은 같은 계열의 다른 해양성 성분과 달리 출혈 위험을 크게 높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부작용 부담을 낮춘 차세대 항암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은 세포·동물 실험 단계지만, 연구진은 전임상 시험과 화학 합성 기술 개발을 병행해 인간 대상 임상으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황실 연회에서 횟집 기본 반찬까지…일상에서 즐기는 방법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랜 세월 해삼을 귀한 상차림에 올려왔다. 중국 황실 잔칫상에 올랐던 ‘불도장’에는 전복·샥스핀과 함께 해삼이 빠지지 않았고, 일본에서는 내장을 소금에 절인 고노와다가 고급 안주로 사랑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와 서해를 중심으로 양식이 활발해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해삼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단순한 방식에서부터, 찹쌀과 함께 끓인 해삼죽, 각종 해산물과 함께 넣어 끓이는 해삼짬뽕, 미역과 해삼을 함께 넣은 냉국, 해삼볶음 등 조리법도 다양하다. 내장을 활용한 젓갈류는 밥반찬은 물론 비빔밥 고명으로도 활용된다.
해삼을 제대로 즐기려면 손질과 보관법에 신경 써야 한다. 먼저 길게 갈라 내장을 제거한 뒤, 소금물에 깨끗이 헹궈 적당한 크기로 썬다. 말린 건해삼을 사용할 경우 충분히 불려 껍질 표면을 칫솔 등으로 문질러 이물질을 제거한 후 데쳐 조리하는 것이 좋다. 싱싱한 해삼은 살결이 단단하고, 혀끝에 닿을 때 작은 석회질 골편이 오도독 느껴진다. 물이 많이 빠져 흐물흐물하거나 비린내가 심하면 피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해삼은 단백질과 미네랄, 기능성 성분이 고루 들어 있는 데다 열량까지 낮아 현대인의 식탁에 잘 어울리는 해산물”이라며 “다만 내장에 포함된 사포닌 계열 성분은 과다 섭취 시 속이 불편할 수 있어, 젓갈류는 소량씩 즐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해삼은 더 이상 황실 연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이 아니다. 횟집의 작은 접시에서, 집밥 위의 소박한 죽 한 그릇에서 바다의 영양을 온몸으로 전해 주는 ‘바다의 산삼’이다. 일상 식단 속에서 적절히 활용한다면, 몸을 보하고 피로를 풀어 주는 든든한 보양식이 될 수 있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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