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현민 기자] 1939년, 조선의 한 반가 여성이 쓴 한 권의 요리책이 있다. 『조선요리법』. 저자는 조자호. 그녀는 양반가의 식생활을 바탕으로 조선 고유의 조리법을 정리한 이 책을 통해, 급변하던 시대 속에서도 전통의 가치를 지켜내려 했다.
책에는 궁중 음식에서부터 사대부가의 제례 음식, 일상 반상 차림까지 폭넓은 조선의 식문화가 담겨 있다. 단순한 요리법 나열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정신과 형식을 함께 기록한 이 책은 한식의 뿌리를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조자호는 이 책을 펴낸 뒤에도 전통 음식 복원에 평생을 바쳤다. 1953년에는 전통 병과 전문점 ‘호원당’을 설립해, 사라져 가던 궁중 떡과 과자를 직접 만들고 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순히 과거의 맛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의 맥을 실생활 속에서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특히 오늘날 ‘두텁떡’으로 널리 알려진 병과 역시 그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음식 중 하나다.
조자호가 기록하고 복원한 음식들은 이후 한식의 ‘정통성’을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기준이 되었고, 그 작업은 단순한 조리의 영역을 넘어 문화유산의 계승이라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책 속에는 단순한 전통의 찬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서문에서 “그 시기에 조선의 요리라 하는 것은 대부분 외국 요리와 혼합도딘 것이 많으므로 순수한 조선 요리를 찾기에는 고난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는 이미 1930년대 당시 한식 내부에 외래 문화가 깊이 스며들어 있었음을 지적한 대목이다. 지금 우리가 ‘전통 한식’이라 믿는 음식들조차, 실제로는 타문화의 영향 아래 형성된 혼재된 형태일 수 있다는 경고다.
조자호는 그런 현실 앞에서 전통 음식이 다시 ‘부활’하고 ‘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적극적인 미래 지향의 기록이자 선언이었다.
이제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선다. 과연 지금의 한식은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K-푸드’의 기세 이면에, 그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선요리법』은 단순한 조리서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 정체성이 위협받던 시기에, 음식이라는 일상의 문화를 통해 그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성의 기록이다. 조자호가 던진 “진짜 조선 음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식탁 위에 살아 있는 질문이다.
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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