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덕수궁 대한제국 황실잔치 속 연저증과 생복초를 통해 궁중음식의 기록과 전승을 체험하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궁중음식연구원은 2026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궁궐식도 2026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공개행사를 열고, ‘조선왕조의 마지막 잔치 — 1902년 덕수궁에서 펼쳐진 대한제국의 황실잔치’를 주제로 궁중음식 전승의 의미를 대중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행사는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와 이수자, 전수생들이 한 해 동안 연구하고 갈고 닦은 결실을 대중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기록 속에 잠들어 있던 옛 음식법을 섬세하게 고증해 재현하고, 이를 시각적 자료와 실습 체험으로 체계화하며 전승의 과정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궁중음식을 단순히 과거의 음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깃든 지혜를 되짚고 오늘의 음식문화 안에서 새롭게 이해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올해 공개행사는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의 잔치에 주목했다. 고종황제의 생신과 즉위 40주년,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기 위해 덕수궁에서 열린 진연의 의미를 살피고, 『임인 진연의궤』에 기록된 음식 가운데 연저증과 생복초를 직접 보고 맛보며 궁중음식의 조리법과 미감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문헌 속 기록으로만 접하던 궁중음식을 조리 과정과 재료의 쓰임, 맛의 결, 상차림의 의미까지 함께 살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전승 체계를 전하다
행사는 먼저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보유자인 한복려 원장의 궁중음식연구원 소개로 시작됐다. 이어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전승 체계와 궁중음식연구원의 교육 과정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조리 기능은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마지막 주방상궁 한희순으로부터 구한말 실제 궁에서 만들어지던 궁중음식의 종류와 구체적인 조리법을 계승한 전통이다. 궁중음식은 왕실의 식생활을 바탕으로 형성된 음식문화이지만, 그 안에는 조리 기술뿐 아니라 계절과 의례, 재료의 선택, 상차림의 질서, 음식에 담긴 예법까지 함께 깃들어 있다.
무형유산의 전승은 기능보유자를 중심으로 이수자와 전수생이 단계적으로 배워가는 전수교육 체계를 통해 이어진다. 이날 행사에서는 정규과정과 특별강좌 등 궁중음식연구원의 교육 과정도 함께 소개됐다. 궁중음식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조리법 하나를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축적된 궁중의 음식문화와 그 안에 담긴 맥락을 함께 이해해가는 과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의 잔치를 열다
이번 공개행사의 중심에는 1902년, 즉 광무 6년에 열린 대한제국 황실의 진연이 있었다. 당시 고종황제의 51세 생신과 즉위 40주년,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기 위해 4월과 11월에 덕수궁 중화전, 함녕전, 관명전 등에서 진연이 열렸다. 이 진연의 과정은 『임인 진연의궤』와 『내외진연등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의 생생한 장면은 병풍인 「임인 진연도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수자들은 이번 행사의 의미를 설명하며, 진연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황실 의례와 음악, 춤, 상차림, 음식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적인 왕실 문화였음을 전했다. 궁중음식은 한 그릇의 맛만으로 이해되는 음식이 아니다. 어떤 의례에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재료와 형식으로 올려졌는가를 함께 보아야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
1902년의 진연은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치러진 황실의 잔치였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잔치’라는 주제 아래, 궁중음식이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기록 속 음식이 오늘의 조리 현장에서 되살아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궁중음식 전승이 과거의 기록을 현재의 배움과 체험으로 이어가는 실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저증, 돼지고기·소고기·닭고기가 어우러진 깊은 맛
시연과 시식은 『임인 진연의궤』 기록 음식인 연저증과 생복초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한복려 원장의 시연을 통해 두 음식의 재료와 조리 과정, 맛의 특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며, 실습과 시식을 통해 문헌 속 음식이 실제 미각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연저증은 연한 돼지고기에 소고기 안심과 닭고기, 채소를 더하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여 부드럽게 만든 찜요리다. 여러 육류가 함께 쓰이지만 맛이 무겁게만 흐르지 않고, 새우젓의 감칠맛과 채소의 은근한 풍미가 더해지며 전체적인 균형을 이룬다.
현장에서 맛본 연저증은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결대로 부드럽게 흩어지는 돼지고기의 질감이 먼저 다가왔다. 여기에 입안에서 녹아내리듯 부드러운 소고기 안심이 어우러지고, 닭고기의 쫄깃한 식감이 더해지며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의 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육류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고기의 식감과 풍미가 조화롭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인위적인 조미료가 없던 시절, 새우젓과 채소만으로 빚어낸 천연의 짙은 풍미였다. 새우젓은 단순히 짠맛을 내는 재료가 아니라 육류의 맛을 끌어올리고, 음식 전체에 깊은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 채소는 육류의 기름진 느낌을 부드럽게 정리하며 맛의 층위를 만들었다. 그 결과 연저증은 부드러움과 감칠맛, 여러 육류의 식감이 함께 어우러진 궁중 찜요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궁중음식의 깊이는 화려한 재료의 나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성질을 알고 그 맛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조리 기술에서 나온다는 점을 연저증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의 부드러운 결, 소고기 안심의 섬세한 질감, 닭고기의 쫄깃함이 새우젓의 감칠맛과 만나며 한 그릇 안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맛의 균형을 이루었다.
생복초, 전복과 안심이 빚어낸 탄력과 매끄러움의 조화
생복초는 생전복에 소고기 안심과 표고버섯 등을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녹말가루를 넣어 윤기나게 조린 찬요리다. 이날 소개된 생복초에는 생전복, 숙주나물, 표고버섯, 참기름, 깻가루, 소고기 안심, 계란, 후춧가루, 녹말, 간장 등이 사용됐다.
생복초는 재료의 조합부터 흥미로운 음식이었다. 바다의 재료인 전복과 육지의 재료인 소고기 안심이 함께 쓰이고, 표고버섯과 숙주나물이 더해지며 맛과 식감의 균형을 이룬다. 간장 양념으로 조리하되 마지막에 녹말을 넣어 윤기를 입히는 방식은 음식의 겉면을 매끄럽게 감싸고, 재료의 맛을 한데 모아주는 역할을 했다.
현장에서 맛본 생복초는 부드럽게 다스려진 소고기 안심의 결 사이로 탱글탱글한 생전복이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씹을수록 전복 특유의 기분 좋은 탄력이 살아났고, 소고기 안심은 그 식감을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진하게 조려진 간장 양념은 녹말과 만나 재료 겉면에 찰떡같이 밀착되어, 첫 입에 닿는 느낌은 매끄럽고 끝맛은 촉촉했다.
특히 양념을 듬뿍 머금은 표고버섯의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폭신하게 씹히는 표고버섯은 입안에서 감칠맛을 천천히 풀어냈고, 생복초 전체에 깊이와 입체감을 더했다. 숙주나물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조림의 맛을 산뜻하게 정리해주며, 전복과 소고기, 표고버섯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연저증이 육류의 깊고 진한 맛을 보여주는 음식이라면, 생복초는 바다의 보물인 전복과 육지의 안심이 만나 빚어내는 ‘탄력과 매끄러움의 조화’를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두 음식은 모두 궁중음식의 섬세함을 담고 있었지만, 맛의 방향은 분명히 달랐다. 연저증이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의 풍미가 어우러진 부드러운 찜요리로 다가왔다면, 생복초는 전복의 탄력과 조림의 윤기, 간장 양념의 농밀함으로 기억에 남았다.
기록 속 음식이 오늘의 감각으로 살아나는 시간
가장 뜻깊었던 점은 궁중음식을 단순히 ‘옛날 왕실 음식’으로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인 진연의궤』와 『내외 진연등록』, 「임인 진연도병」 등 기록과 시각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잔치와 음식의 맥락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조리법을 오늘의 현장에서 재현했다는 점에서 전승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고문헌 속 음식은 문자로 남아 있지만, 그 맛과 질감, 조리 과정의 미세한 감각은 사람의 손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불 조절, 손질의 정도, 간의 균형, 익힘의 시간에 따라 음식의 결과는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궁중음식의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록을 읽고, 해석하고, 실제 조리로 검토하며, 다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능보유자와 이수자, 전수생들이 보여준 과정은 바로 그 전승의 현장이었다. 한 해 동안의 연구와 연습, 반복된 실습과 준비의 시간이 있었기에 관람객들은 기록 속 음식을 눈앞에서 보고 맛볼 수 있었다. 궁중음식이 가진 아름다움은 완성된 음식의 모양과 맛에도 있었지만, 그 음식을 오늘의 자리까지 가져오기 위해 쌓아온 사람들의 손길과 시간 속에 더욱 깊게 새겨져 있었다.
궁중음식을 배우는 일, 전통의 맥락을 이해하는 일
궁중음식은 화려한 상차림이나 귀한 식재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왕실 의례와 계절, 음식의 쓰임, 조리법, 맛의 균형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적인 음식문화다. 이번 공개행사는 그 점을 직접 이해하게 해준 자리였다.
연저증과 생복초를 통해 확인한 궁중음식의 맛은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깊었다. 강한 양념으로 재료를 덮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성질을 살리고 서로 어울리게 하는 방식이 중심에 있었다. 새우젓 하나로 육류의 감칠맛을 끌어내고, 녹말을 통해 조림의 윤기와 매끄러움을 완성하며, 표고버섯과 숙주나물로 음식의 결을 조율하는 방식은 궁중음식이 얼마나 섬세한 조리 체계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번 행사는 궁중음식에 대한 이해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해 깊어진다는 점을 일깨웠다. 문헌의 기록을 읽는 것과 그 음식을 눈앞에서 보고 맛보는 것은 다르다. 재료가 익어가는 냄새, 완성된 음식의 윤기,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감칠맛은 기록을 보다 생생하게 이해하게 만든다. 궁중음식이 왜 국가무형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는지, 그 의미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3일 동안 이어진 이번 공개행사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 전수생, 그리고 연구원 직원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준비해왔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음식 한 가지가 완성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준비가 필요하다. 문헌을 살피고, 재료를 고르고, 조리법을 검토하고, 시연과 체험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장을 준비하는 과정이 모두 더해져야 한다.
특히 궁중음식처럼 기록과 조리 기술, 전승의 의미가 함께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그 노고가 더욱 크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기록 속 음식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오늘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개행사는 그 어려운 과정을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보여주었다.
궁중음식문화재단과 궁중음식연구원은 조리 기술과 역사적 맥락을 함께 계승하며 한국 음식전통의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궁중음식은 과거에 머문 음식이 아니라, 오늘의 배움과 실천 속에서 계속 살아 있는 전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잔치’라는 주제는 단순히 과거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02년 덕수궁에서 펼쳐진 대한제국 황실잔치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궁중음식이 지닌 역사성과 조리의 깊이, 그리고 이를 오늘까지 이어온 전승자들의 정성을 함께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 공개행사는 궁중음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한 시간이자, 전통을 지켜온 사람들의 노고와 감사의 마음을 깊이 새길 수 있는 자리였다. 기록 속에 잠들어 있던 음식이 오늘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고, 그 맛이 대중과 만나 새로운 기억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궁중음식의 전승은 그렇게 과거를 보존하는 일을 넘어, 오늘의 음식문화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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