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입춘의 음식은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어떤 맛으로 몸을 조율했는가’를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 시기는 겨울 저장 식재료가 거의 소진되고, 봄의 재료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공백기였다. 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선의 부엌은 맛을 선택함으로써 계절을 건넜고, 그 선택의 중심에 장이 있었다. 입춘은 장이 음식으로 번역되는 시기였고, 장의 맛은 그대로 입춘 음식의 성격이 되었다.
입춘에 가장 먼저 작동한 맛은 간장의 맛이었다. 간장은 짠맛을 기본으로 하지만, 발효된 콩 단백질에서 비롯된 감칠맛이 염분의 각을 누그러뜨린다. 이 부드러운 짠맛은 겨울을 지나 위장이 둔해진 몸에 적합했다. 그래서 입춘 무렵의 국물은 대개 간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미역국이나 무국, 콩나물국처럼 기름을 쓰지 않고 끓이는 국에 간장을 풀어 간을 맞췄다. 이 국들은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 겨울 동안 느려진 소화 기능을 서서히 깨우는 역할을 했다. 영양적으로 보면 간장은 아미노산 상태의 단백질과 염분을 함께 공급해 위액 분비를 자극했고, 따뜻한 국물과 함께 섭취될 때 체내 수분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입춘의 간장국은 한 끼의 중심이라기보다, 하루 식사를 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된장의 맛은 입춘 식탁의 무게 중심을 형성했다. 된장은 짠맛보다 먼저 구수함이 느껴지고, 발효된 콩의 농도가 입안에 오래 남는다. 이 맛은 포만감과 직결된다. 입춘 무렵 된장은 주로 국으로 쓰였다.
시래기된장국이나 묽은 된장국은 저장 채소의 거친 섬유질을 부드럽게 만들고, 적은 양의 곡물로도 식사를 ‘먹었다’는 감각을 주었다. 영양적인 측면에서 된장은 이 시기의 핵심 단백질원이었다.
육류 섭취가 어려운 계절에 된장은 식물성 단백질과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유리 아미노산을 제공했고, 이는 체력 유지에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된장의 발효 풍미는 식욕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식사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입춘의 된장은 풍성함을 위한 장이 아니라, 버팀을 위한 장이었다.
고추장의 맛은 입춘 식탁에서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나 있었다. 고추장은 단맛, 매운맛, 발효된 콩의 풍미가 결합된 구조를 지닌다. 이 맛은 에너지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땀과 열을 유도한다. 그래서 고추장은 노동량이 늘어나는 계절, 곧 봄이 본격화된 이후나 여름에 더 적합했다.
입춘 무렵 고추장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심 장으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말린 나물이나 저장 채소를 무칠 때 소량 사용되거나, 비빔 형태의 음식에서 제한적으로 쓰였다. 영양적으로 보면 고추장은 탄수화물과 당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즉각적인 에너지원이 될 수 있지만, 입춘의 몸에는 이 속도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고추장의 강한 맛은 잠시 보류되었다.
입춘은 기운을 끌어올리는 시기가 아니라, 몸의 리듬을 정렬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장, 된장, 고추장은 각각 다른 맛과 기능으로 입춘 음식을 만들었다. 간장은 위장을 깨우는 국으로, 된장은 하루를 견디게 하는 국으로, 고추장은 아직 꺼내지 않은 맛으로 존재했다. 입춘의 식탁은 이 세 가지 맛의 균형 위에서 완성되었다. 장은 재료를 대신해 음식을 만들었고, 맛은 곧 계절을 대하는 태도가 되었다.
입춘의 장 문화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시기의 음식은 봄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봄을 맞이할 몸의 상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장은 그 과정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었고, 영양과 조리를 동시에 조율하는 도구였다. 재료가 부족할수록 장의 선택은 더 중요해졌고, 그 선택은 겨울의 끝을 넘어서는 방식이 되었다.
최근 장 담그기 문화가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해외에서도 장을 활용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입춘의 장 문화를 들여다보면, 장의 가치는 새로운 레시피나 이국적인 발효 기술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장은 계절과 몸의 상태를 읽고, 어떤 맛을 앞세우고 어떤 맛을 미루어야 하는지를 판단해 온 생활의 지혜였다. 입춘은 그 지혜가 가장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였고, 장은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한 중심에 있었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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