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직전까지 지켜낸 '검소한 음식 문화’
[Cook&Chef = 염상균 칼럼니스트]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의 밥상은 담박(淡泊)과 절제(節制), 그리고 예(禮)를 실천하는 삶 자체였다. 그는 음식을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인격을 수양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먼저 식사 예절이 매우 엄격하였다. 손님과 마주 앉아 식사할 때에는 수저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음식을 먹는 태도는 조용하고 단정하였다.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예의 범주 안에서 실천하려 했던 그의 생활 철학이었다.
음식은 매우 소박하였다. 끼니마다 반찬은 세 가지를 넘지 않았으며, 여름철에는 건포(乾脯) 한 가지만 먹기도 하였다. 도산에서 제자들과 함께한 한 끼 식사는 퇴계의 소박한 삶을 잘 보여준다. 한 제자의 기억에 따르면, 그날 밥상에는 반찬이 가지잎과 무, 미역뿐이었다.
화려한 음식은 없었지만, 제자는 그 소박한 밥상에서 스승의 검소한 삶과 따뜻한 가르침을 느꼈고, 그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그는 계절에 맞는 음식도 중요하게 여겼다. 손님을 맞이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철이 아닌 음식은 상에 놓지 않았으며, 제철 음식 재료를 자연스럽게 이용하였다. 이러한 식생활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유학적 삶의 태도와도 맞닿는다.
손님을 접대할 때도 화려한 음식을 차리지 않았다. 당시 좌의정이자 권율의 아버지인 권철(權轍,1503~1578)이 방문했을 때 변변한 반찬 없이 평소와 같은 밥상으로 대접하였다. 권철은 음식을 거의 들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지금까지 입맛을 잘못 길러 매우 부끄럽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술 역시 절제하였다. 퇴계는 술을 즐기기는 했지만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았고, 얼굴이 약간 붉어질 정도에서 그쳤다. 손님에게도 억지로 권하지 않고, 각자의 주량에 맞게 권하였다. 음주에서도 절도와 배려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체질에 대해서도 ‘좋은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속이 불편하고, 담박한 음식을 먹어야 위장이 편하다.’고 말하였다.
마지막까지 지킨 검소한 밥상
퇴계 이황은 병이 깊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도 음식과 관련한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예와 삶의 도리를 실천하는 수단이라고 여겼다. 병세가 위독했던 1570년 12월 2일, 약을 복용한 뒤에도 이날이 장인의 기일임을 기억하고 ‘오늘은 외구(外舅)의 기일이니 고기반찬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 일화는 음식보다 예를 앞세운 퇴계의 삶을 상징한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남긴 유계(遺戒)에서도 검소한 음식문화를 강조하였다. 특히 ‘유밀과를 쓰지 말라.’고 하였다. 유밀과는 꿀과 기름을 많이 쓰는 귀한 제사 음식이어서 당시에는 사치와 허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퇴계는 자신의 장례와 제사에서 이러한 화려한 음식을 사용하지 말도록 하여, 검소한 예법을 후손들에게 실천하게 하였다.
후대 제자들은 이 유훈의 의미를 두고 논의하였다. 일부는 단지 집안의 규범으로 이해하였고, 다른 일부는 당시 사회에 만연한 사치스러운 제사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가르침으로 해석하였다. 결국, 집안에서는 유밀과를 만들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이 정성으로 가져온 것은 예를 갖추어 받았다고 한다. 형식보다 상대의 정성을 존중했던 퇴계의 예학 정신이 잘 드러난다.
퇴계를 따르던 제자들은 스승의 상을 당한 뒤 오랫동안 고기나 생선을 삼가며 상례를 지켰다. 조목 등 여러 제자는 첫돌 제사(소상小祥)를 지낼 때까지 흰 띠를 두르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이어갔으며, 일부 제자는 3년 동안 어떠한 잔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퇴계가 평생 실천한 밥상이 제자들의 생활문화에도 깊게 이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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