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다고 남에게 강요 말아야 바른 자부심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한때는 전국의 평양냉면집을 찾아다닐 만큼 좋아했다. 그러다가 그 열정도 시들해진 탓인지 흔히들 이야기하는 슴슴한 맛이 별로 당기지 않았다. 이것도 한때인가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 강서구 마곡에 있는 소곤면옥을 찾아 혼자 평양냉면 한 그릇을 먹었다.
평양냉면은 순위를 매기기 좋을 뿐 아니라 100미터 달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400미터 달리기 마냥 순위가 뒤바뀌기 일쑤다. 우래옥을 최고로 꼽는 이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을밀대가 진짜라고 한다. 의정부 평양면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동면옥이야말로 평양냉면의 본맛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평양냉면 맛집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자.
어린이대공원 앞의 서북면옥이 있다. 내 친구가 좋아하는 곳이다.
서북면옥은 맑고 담백한 육수가 특징이다. 진한 육향을 앞세우기보다는 은은한 감칠맛과 메밀면의 조화를 즐기는 집이다. 화려하지 않은 오래된 식당의 분위기도 평양냉면과 잘 어울린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또 다르다.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곳.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의 뿌리로 알려진 곳이다. 맑고 슴슴한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낸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밍밍한 국물에서 고기 맛과 메밀 향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필동면옥도 의정부 평양면옥의 계보를 잇는다. 맑고 연한 육수에 고춧가루가 살짝 뿌려져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육수의 간이 강하지 않아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을밀대는 조금 다르다.
굵고 거친 면발에 살얼음이 낀 차가운 육수가 특징이다. 다른 평양냉면집에 비해 면을 씹는 맛이 뚜렷하다. 부드러운 메밀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식감 때문에 을밀대를 찾는 사람도 많다.
봉피양은 고기 육수의 풍미가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메밀면과 육향의 조화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지나치게 슴슴한 평양냉면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친숙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강남의 진미 평양냉면이 제일이란 이야기도 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모두 평양냉면인데 맛은 제각각이다.
어느 집 국물은 육향이 강하고 어느 집은 맑고 담백하다. 면이 굵고 거친 집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게 끊어지는 메밀면을 내놓는 집도 있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같은 음식을 먹고도 평가가 다르다. 그런데 평양냉면은 특이한 게 있다. 이 순위 매기기에,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처음 먹는 사람은 대개 싱겁다고 한다. 그러면 평양냉면을 오래 먹었다는 사람은 그 맛을 알려면 몇 번은 더 먹어봐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밍밍하게 느껴지던 국물에서 어느 순간 깊은 맛을 느끼기도 하니까.
하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삭힌 맛을 이야기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원두의 산미와 향을 이야기한다. 남들이 잘 구분하지 못하는 작은 차이에도 제법 진지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이 쌓이면 자부심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차이에도 신경을 쓰고, 남들이 대충 넘어가는 일에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기도 하다.
다만 자부심과 고집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반드시 남에게도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정부 평양면옥을 좋아한다고 을밀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평양냉면보다 함흥냉면을 좋아한다고 입맛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자부심은 자기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지, 남의 것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한때 그토록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열정이 하나둘 시들해지는 것을 느낀다. 맛난 평양냉면 찾기도 그중 하나다. 전국을 찾아다니던 열정은 사라졌고,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혼자 한 그릇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쉽다.
무언가를 그토록 좋아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고 모든 것에 무덤덤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이든, 취미든, 지금 하는 일이든 자기만의 기준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기준을 지키고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마곡의 소곤면옥에서 평양냉면 한 그릇을 먹으며 별생각을 다 한다.
한때는 평양냉면의 순위를 매기는 일이 즐거웠다. 지금은 그저 내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다.
다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쉽게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양냉면은 한때였을지 몰라도,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오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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