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신현우 기자] 제주를 대표하는 먹거리 특산품은 다양하다. 흑돼지, 갈치, 메밀 등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특산품이 있지만,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감귤이다. 감귤은 오랜 세월 제주를 대표해 온 상징적인 특산품이다.
제주의 감귤 재배 역사는 천 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감귤은 제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 잡았고, 일반 백성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울 만큼 귀한 과일로 여겨졌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진상되는 대표적인 공물 가운데 하나였으며, 종묘와 사직의 제례에서 새로 수확한 과일을 올리는 천신에도 사용됐다. 또한 왕실 연회와 궁중 행사에 올랐을 뿐 아니라, 왕이 신하에게 감귤을 하사하는 황감제가 열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감귤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국가 의례와 궁중 문화를 함께한 제주의 대표 특산품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모습은 1702년(숙종 28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의 〈감귤봉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에는 감귤을 선별하고 포장해 한양으로 보내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으며, 당시 감귤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귀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준다.
왕실에 진상될 만큼 제주를 대표하는 식재료였던 감귤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활용 방식도 달라졌다. 생과를 비롯해 음료와 초콜릿 등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변형되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감귤이 이제는 술의 원료로도 사용되며 제주의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제주 감귤을 술로 빚는 양조장 ‘시트러스’가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위치한 시트러스는 지역 140여 감귤 농가가 뜻을 모아 설립한 농업회사법인이다. 제주산 감귤을 주원료로 다양한 술을 선보이며 감귤의 활용 가치를 넓히고, 제주의 새로운 지역 특산주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반적인 탁주가 쌀이나 보리 등 곡물의 전분을 당화한 뒤 발효하는 방식이라면, 감귤주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과실에 함유된 당분을 그대로 발효해 만든다. 하지만 감귤은 포도와 원료의 특성이 달라 술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시트러스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감귤연구센터의 특허 효모를 사용해 감귤 고유의 향과 풍미를 살린 술을 빚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발효주부터 증류주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제주 감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시트러스의 대표 제품으로는 감귤을 발효한 뒤 여과해 만든 ‘마셔블랑’과 ‘혼디주’가 있다. 두 제품 모두 달콤한 감귤 향과 산뜻한 풍미가 특징이며, 도수가 높지 않아 가볍게 즐기기 좋다.
‘미상25’와 ‘신례명주’는 감귤 발효주를 증류해 만든 증류주이다. ‘미상25’는 감귤의 은은한 향이 술을 감싸 25도의 낮지 않은 도수에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부드러운 목넘김이 특징이며, 제주 흑돼지와도 잘 어울린다. ‘신례명주’는 증류한 감귤주를 참나무통에서 숙성한 증류주로, 한국형 브랜디를 지향하는 제품이다. 50도의 높은 도수에도 스모키한 풍미와 감귤 향이 은은하게 어우러져 긴 여운을 남긴다.
시트러스의 증류주는 국제 주류 품평회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2026년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리츠 컴페티션(SFWSC)에서 ‘미상25’는 더블 골드 메달을, ‘신례명주 휴’는 골드 메달을, ‘신례명주’는 실버 메달을 각각 수상했다. 제주 감귤을 활용한 증류주가 향토성을 넘어 국제 시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은 결과다.
이번 여름 휴가를 제주도로 계획하고 있다면 시트러스를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양조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대형 증류기가 눈길을 사로잡고,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감귤 술을 직접 둘러보고 구매할 수도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특산품인 감귤이 술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경험하면, 익숙했던 감귤이 또 다른 제주의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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