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신뢰를 강조
자신의 입을 속이는 정도의 사례로 소개
[Cook&Chef = 염상균 문화유산연구가] 상추 두 장을 겹쳐 놓고 고기 한 두 점, 쌈장이나 된장을 올려 한입 가득 먹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양 볼이 미어지도록 불룩 나오고 혹시라도 입 밖으로 나올세라 혀를 이리저리 돌리며 우물우물 먹는 맛! 고기가 보편화 되기 전에는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여름마다 상추에 쌈을 싸서 우걱우걱 먹었다. 상추 특유의 쌉싸래한 풍미와 장의 감칠맛이 함께 어우러지며 머릿속으로는 벌써 침이 넘어간다. 해가 잘 드는 텃밭에 심어 직접 기른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 이틀만 걸러도 적은 식구로는 처치 곤란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이제 꿈이다. 부실한 치아가 볼이 미어지도록 상추쌈 넣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햇볕에 잘 기른 상추일수록 역시 두껍고 질기다. 그래서 시험 삼아 반그늘에 심어보았더니 아주 부드럽고 햇빛을 더 받으려고 잎이 넓고 크다. 부실한 치아에 이보다 더 좋은 상추는 없는 듯, 이가 튼튼한 이들도 엄지를 들어 환영하니 요즘 상추 먹는 맛이 최고다.
상추에 관련한 기록은 우리 고문서 여기저기에 많이 나온다. 그만큼 여름에 애용한 식재료라는 말 아니겠는가. 여러 고서에는 상추를 ‘와거(萵苣), 생채(生菜)’라고 기록하였는데, 생채가 상치, 혹은 상추로 변한 듯하다. 『동의보감』에는 그 효능을 상세히 적었다.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쓰면서도 약간 달다’, ‘몸의 열을 내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능으로 불안이나 불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식물’ 등이다. 『제중신편』에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약효를 지닌 식물’, ‘성질이 서늘하여 몸의 열을 내려 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록하며, 여름철 더위로 인해 생기는 열증이나 갈증을 완화하는 데 활용하면 좋다고 보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01년 신유교옥(辛酉敎獄)으로 전남 강진에 유배되었다. 당시 1남 학연은 18세, 2남 학유는 15세였다. 아버지로서 다산은 아들과 딸에 관한 걱정을 안고 떠날 수밖에 없는 유배길이었다. 3남은 이미 죽었고, 4남은 겨우 2세였는데 유배 중인 1802년 저세상으로 갔다. 게다가 18년이나 유배가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자녀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원격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계(家誡)라는 편지를 써서 몸가짐이며 마음가짐을 다잡았고, 때로는 강진으로 불러 가르침을 주었다.
1810년 9월, 강진 다산초당의 동암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산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이글은 사대부가 지녀야 할 도덕적 태도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일종의 훈계문이다. 먼저 마음가짐은 광풍제월처럼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하며, 사소한 이익 때문에 양심을 저버리면 호연지기도 사라진다고 하여 청렴함을 강조한다.
또한, 말은 단 한 번의 거짓으로도 모든 신뢰가 무너지므로 신중히 해야 하며, 붕당과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공정한 태도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흉년의 원인도 게으름과 같은 개인의 책임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여 근면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다산은 또 덧붙이기를, 삶의 근본이 되는 두 가지 덕목, 즉 ‘근(勤)’과 ‘검(儉)’을 전원(田園) 대신 유산으로 남긴다고 했다. 오늘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시기와 상황에 따라 곧바로 실천하는 태도, 집안의 모든 사람이 맡은 바 일을 쉬지 않는 생활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생활에서 필요 이상의 사치를 버리고, 오래 쓰고 실용적인 것을 택하는 절약의 자세를 가지라고도 했다.
당시는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인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였다. 그러나 일부 지배층은 오히려 호의호식하는 삶을 이어갔다. 다산은 이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음식에 관한 생각도 담았다.
음식이란 생명만 연장하면 된다. 모든 맛있는 횟감이나 생선도 입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리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뱉으면) 사람들은 더럽다고 침을 뱉는 다. 사람이 천지간에 살면서 귀히 여기는 것은 성실한 것이니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고,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데서부터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 속일 게 있으니 바로 자기의 입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먹거리(食物)로 속이더라도 그때를 잠깐만 지나면 되니 이는 괜찮은 방법이다.
다산은 사람 사이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속이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며, 단지 자신의 입을 속이는 정도의 생활만 하라는 교훈을 주었다. 아울러 다산은 손님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茶山)에 있을 때 상추로 쌈을 싸서 먹으니 손님이 묻기를,
“쌈을 싸서 먹는 게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하기에, 내가, “이건 단지 나의 입을 속이는 것일세.”라고 한 일이 있다.
다산은 스스로 실천한 예를 들어 두 아들에게 교훈을 심어주려 한 것이다.
아버지의 교육 덕일까. 다산의 2남인 정학유(1786~1855)는 『농가월령가』 5월령 일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 바라지 점심 하소. 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들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
모내기, 논매기, 밭매기, 보리 수확 등 농사일에 힘써야 할 계절이 음력 5월이다. ‘찬국’은 오이냉국, 미역냉국 같은 냉국으로 보인다. 보리밥이며, 상추쌈을 식구 수보다 더 넉넉히 ‘능’을 두라고 했는데, 능(剩:남을잉, 능으로도 읽는다)은 남거나 여분을 의미한다. 먹을 것을 아끼지 말고 넉넉하게 준비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우라는 뜻이다.
날로 먹어도 되는 잎이라면 무엇이든 쌈을 싸서 먹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심지어 쌈 싸 먹는 행위를 복과(福裹)라 하며 복을 싼다고까지 하였다. 이덕무(1741~1793)의 『사소절(士小節)』에는 상추, 취, 김 등에 밥을 싸 먹는 방법이 나온다. 밥을 뜬 숟가락을 가로 놓고 그 위에 장과 쌈을 얹어 먹되, 크기는 볼이 불룩해지지 않을 만큼만 먹어야 한다는 등 점잖게 먹는 방법까지 언급하였다.
4월에 심은 우리집 상추는 이제 키다리가 되어간다. 조만간 꽃을 피우고 씨를 맺으리라. 그러나 그 전에 장마가 오면 여느 때처럼 녹아내릴 터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마지막 상추를 먹어야겠다. 누군가 점잖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한 번 볼이 미어지게 먹고 싶다. 장마가 지나면 가을 상추를 심어 초겨울까지 또 먹어야지. 다산의 ‘내 입을 속이는’ 교훈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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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균(문화유산연구가) = 고문서 등 역사 문화유물 가운데 현대인에게 가르침이 될 만한 것으로 찾아 소개하는 작업을 한다. 최근엔 전통음식은 물론 밥주발과 대접, 소반, 솥단지, 항아리 등 부엌과 관심 영역을 넓히며 선조들의 식습관과 교훈을 오늘의 식탁으로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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