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한식에서 발효는 단순한 저장 기술이 아니었다. 계절에 따라 식재료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맛과 향, 그리고 몸의 반응은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된장과 간장, 김치와 청국장은 식탁 위의 반찬이기 이전에 시간을 들여 완성되는 음식이었다.
발효식품은 천천히 변한다. 콩이 삶아지고, 발효되며, 숙성되는 동안 재료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이 변화는 맛의 깊이를 만드는 동시에,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방식도 바꾼다. 특히 장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일반 음식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최근 영양학과 의학에서는 장을 단순한 소화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기관’으로 보기 시작했다. 장은 음식이 들어오면 다양한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는 다시 뇌와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장호르몬이다. 그중 하나가 GLP-1이다.
GLP-1은 음식이 장에 도달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욕을 조절하고 포만감을 유지하는 데 관여한다. 위에서 음식이 내려오는 속도를 늦추고, 인슐린 분비를 도와 혈당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최근 비만 치료제의 핵심 원리로 알려지면서 대중적으로도 많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약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 안의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비되기도 한다. 특히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이나, 장내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지는 식단에서 분비가 늘어난다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발효식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효는 미생물이 만든 음식이다. 김치와 된장, 청국장은 모두 수많은 미생물이 관여해 완성된다. 우리가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이 만들어낸 산물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물질들은 장 속에서 다시 다른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대사물질이 만들어진다.
그중 일부는 장세포를 자극해 호르몬 분비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효식품이 장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익균을 늘린다는 개념보다, 장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청국장은 그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다. 삶은 콩을 짧은 시간 동안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강한 향과 점성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은 잘게 분해된다. 이때 생기는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은 소화가 빠르고, 장에서 흡수되는 방식도 달라진다.
콩 자체도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지만, 발효된 콩은 몸에 들어온 뒤의 반응이 다르다. 단백질이 분해된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장에서의 자극이 빠르고, 미생물 활동 역시 활발해진다. 이러한 변화가 장호르몬 분비와 연결될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다.
특히 청국장은 발효 과정이 짧고 강해 살아 있는 균과 대사산물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로 먹게 된다. 된장처럼 오래 숙성된 발효식품과는 또 다른 성격이다. 장에 도달했을 때의 자극이 상대적으로 크고 직접적이다. 이 특성 때문에 장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여겨진다.
과거의 식탁을 떠올려 보면 청국장은 특별한 보양식이 아니었다. 겨울철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원이었고,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 음식이 주는 포만감은 꽤 오래 이어졌다. 밥 한 공기와 청국장 한 그릇이면 식사가 충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발효식품은 입 안에서 강한 맛을 내지만, 몸 안에서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장에서의 소화와 흡수 과정이 천천히 이어지고, 포만감이 오래 유지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한식이 오랜 시간 동안 과식보다는 절제된 식사를 중심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음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GLP-1이라는 이름은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장이 음식에 반응한다는 사실 자체는 오래전부터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발효된 콩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고, 오래 배가 부르다는 감각은 과학적 언어가 없던 시절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변화였을 것이다.
한식의 발효문화는 저장과 생존의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장의 환경을 바꾸는 식사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시 몸의 반응을 바꾸고, 식사의 양과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청국장은 그 흐름의 중심에 있는 음식이다. 강한 향 때문에 호불호는 갈리지만, 발효된 콩이 가진 힘은 분명하다. 오래전부터 식탁에 올라온 이 음식이, 오늘날 장호르몬이라는 언어로 다시 설명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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