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라거 스타일인 ’필스너(Pilsner)’로 갈증 달래기
월드컵 경기 전후로 즐기는 상대국의 맛 이야기
[Cook&Chef = 서진영 기자]월드컵은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가 아니다. 경기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조명하는 시간이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즉, 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무조건 이긴다는 ‘백전백승’이나 ‘백전불패’와는 뜻이 다르다. 경기 전 상대국을 제대로 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6월 12일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리는 날, 한국 시간으로 오전 11시 킥오프를 기다리며 체코의 디저트를 맛보고, 경기 종료 후에는 체코 맥주와 음식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에서 체코 음식을 전문적으로 접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몇 가지 대표적인 메뉴만으로도 체코의 깊은 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달콤한 시작, 말렌카 한 조각
경기를 기다리는 오전, 커피와 함께 즐기기 좋은 체코의 디저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렌카(Marlenka)다.
말렌카는 여러 겹의 시트 사이에 크림을 넣고 꿀의 풍미를 듬뿍 살린 케이크다. 촉촉하면서도 쫀득한 식감과 깊은 단맛으로 체코를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맛보는 디저트로 유명하다.
말렌카의 뿌리는 아르메니아 전통 꿀 케이크에서 찾을 수 있다. 1995년 체코에 정착한 아르메니아계 사업가 게보르그 아브에티샨(Gevorg Avetisyan)은 가족에게 전해 내려오던 비밀 레시피를 바탕으로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베이커리에서 출발한 말렌카는 특유의 맛으로 체코 전역을 사로잡았고, 현재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체코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다.
‘말렌카’라는 이름은 창업자의 어머니와 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화려한 장식 대신 꿀이 가진 자연스러운 향과 풍미에 집중한 디저트인 만큼, 경기 시작 전 커피 한 잔에 말렌카 한 조각을 곁들이며 체코의 맛을 먼저 경험해 볼 수 있다.
세계가 마시는 맥주의 시작, 체코
체코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맥주다. 체코는 오랜 기간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맥주 소비량을
기록해 온 자타공인 맥주의 나라다. 식당은 물론 가정에서도 맥주가 식사와 함께 물처럼 놓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맥주 문화는 중세 시대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수도원은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농업과 양조 기술이 발전하던 중심지였다. 수도사들은 곡물을 재배하고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로서 맥주를 빚으며 양조 기술을 고도화했다.
체코 맥주의 명성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도시가 바로 플젠(Pilsen)이다. 오늘날 전 세계 맥주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황금빛 라거 스타일인 ’필스너(Pilsner)’가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1842년 플젠의 양조사 요제프 그롤이 만든 이 맥주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투명한 황금빛과 깔끔하고 쌉쌀한 맛으로 전 세계 라거 맥주의 표준이 되었다. 또한 체코 북서부 자테츠(Žatec)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사츠(Saaz) 홉은 필스너 특유의 고유한 향을 완성하는 핵심 재료다.
국내에서도 체코 맥주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필스너의 원조인 ‘필스너 우르켈’, 흑맥주로 유명한 ‘코젤’, 그리고 미국의 버드와이저와 상표권 논쟁을 벌였을 만큼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오리지널 ‘부드바이저 부드바르’ 등이 대표적이다.
체코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부 유럽의 내륙국이다. 오랜 시간 농업과 목축 문화가 이어지며 돼지고기와 소고기, 감자, 양배추, 밀가루를 활용한 든든하고 소박한 음식들이 발달했다.
• 스비치코바(Svíčková): 소고기 안심을 채소와 함께 오랜 시간 익힌 뒤, 부드러운 크림소스를 곁들여 먹는 체코의 대표적인 명절 음식이자 가정식이다.
• 베프로 크네들로 젤로(Vepřo knedlo zelo): 구운 돼지고기(Vepřo)와 시큼하게 발효시킨 양배추(Zelo), 그리고 체코식 빵(Knedlo)을 함께 내는 전통 요리다.
• 크네들리크(Knedlíky): 앞선 요리들에 반드시 곁들여지는 체코식 빵이다. 이름은 만두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효모를 넣어 찌거나 감자를 갈아 만든 담백한 빵에 가깝다. 소스에 푹 찍어 먹으며 식사 대용으로 활용된다.
• 베트르니크(Větrník):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전통 디저트다. 슈 반죽을 구워 바닐라 크림과 캐러멜 크림을 가득 채우고 위에 캐러멜 글레이즈를 입힌 것으로, 체코의 거의 모든 전통 제과점에서 만날 수 있다. 이름은 체코어로 ‘바람개비’를 뜻하며, 프라하 시민들은 어느 카페가 가장 맛있는 베트르니크를 내는지를 두고 자부심을 겨룰 만큼 깊이 사랑받는 과자다.
경기가 끝난 오후 2시, 체코식 감자전
경기가 끝난 뒤,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며 집에서 가장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체코 음식은 바로 브람보라크(Bramborák)다.
브람보라크는 체코의 대표적인 가정식으로, 감자를 갈아 반죽한 뒤 기름에 노릇하게 부쳐내는 요리다. 한국의 ‘감자전’과 똑같은 재료와 외형을 자랑한다.
다만 조리 방식과 향미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의 감자전이 감자 자체의 순수한 맛과 쫄깃함을 살린다면, 체코의 브람보라크는 다진 마늘, 후추, 그리고 향신료를 넣어 향을 풍부하게 만든다. 지역이나 취향에 따라 베이컨이나 훈제 고기를 잘게 썰어 넣기도 하며, 겉을 아주 바삭하게 튀기듯 구워 시원한 라거 맥주 안주로 곁들인다.
한국의 강원도처럼 체코에서도 감자는 오랜 시간 척박한 기후 속에서 식탁을 책임져 온 중요한 작물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 있는 두 나라가 같은 재료를 가지고 이처럼 닮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점은 신선한 발견이다.
집에서 만들어 보는 브람보라크 레시피
• 재료: 감자 500g, 달걀 1개, 밀가루 2큰술, 다진 마늘 2쪽, 소금 1작은술, 후추 1/2작은술, 건파슬리 가루 1작은술 (또는 카레 가루 1/2작은술), 식용유
1. 감자는 껍질을 벗겨 강판에 곱게 간다.
2. 갈아둔 감자의 수분을 면포나 채반으로 살짝 짜낸 뒤, 달걀과 밀가루를 넣는다.
3. 다진 마늘과 소금, 후추, 그리고 파슬리나 카레 가루를 넣고 잘 섞어 반죽을 완성한다.
4. 달군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반죽을 얇고 넓게 편다.
5. 앞뒤로 테두리가 갈색빛이 돌며 바삭해질 때까지 노릇하게 구워낸다.
요리 팁: 체코 현지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한국식 감자전보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기듯 구워 마늘과 후추 향을 살리는 것이 좋습니다.
승패를 넘어 식탁으로 떠나는 여행
달콤한 말렌카 한 조각으로 시작해 청량한 필스너 맥주, 그리고 직접 만든 바삭한 브람보라크까지 준비하면 체코라는 나라가 한결 더 가깝게 느껴진다.
월드컵은 치열한 국가 대항전이지만, 음식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문화를 연결하는 힘이 있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 상대국의 식문화를 함께 체험해 보는 것은 월드컵을 즐기는 또 다른 묘미다. 이번 체코전에는 승패를 떠나 맛있는 체코의 식탁을 먼저 경험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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