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요리와 인생, 즐겁지 아니한가?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 진양호 교수
경기대 서대문 캨퍼스 . 본관 4층. 충정로 자락 언덕 위에 자리한 진양호 교수 연구동을 찾았다. 신선한가을문턱의 바람을 느끼며 연구실에 들어서니 따사로운 햇볕이 온몸을 감싸 안아주고 창문 너머로는 경기대 전경이 우리 시선으로 훤히 들어왔다.
[Cook&Chef 조용수 기자]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따분한 강의 하듯?’ 나도 모르게 스쳐간 생각은 진양호 교수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내 사라졌다. 그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핵심 흐름을 짚어냈고, 흥미롭게 내용을 풀어나갔다. 어느새 기자도 스타 강사 앞에 히죽히죽 웃는 청중이 된듯했다. 진 교수는 우선 요즘 학생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운을 뗐다.
“외식업계가 어려우니까 우리 학생들 취직이 어렵죠. 졸업 시기니까 학부 학생들은 취직하도록, 석사나 박사 과정 학생들은 교수 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참 어렵네요.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도 쉽지가 않아요. 창원대 조리학과는 문을 닫았잖아요.”
인구는 줄고, 경기는 불황이니 신입생 모집하기 어렵고 졸업생들은 진로를 찾아가기 쉽지 않다며 요즘 대학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식당에 들이는 식자재가 전 처리돼 납품되기에 일손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 하지만, 학생들은 귀하게 자란 세대들이라 ‘좋은 직장’ 아니면 선뜻 취직하지 않으니 취업 지도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항해사처럼 망막하다고 했다.
“김장할 때 절임 배추를 주문해서 김장하듯 식당도 마찬가지로 반 가공된 식재료를 받고, 전처리 과정이 기계화되어 일손이 많이 줄었어요. 이제는 조리사로만 진출할 것이 아니라 요리와 관련된 전 산업 분야로 진출 분야를 늘려야 해요.”
진양호 교수는 산더미 같은 과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했다. 요리와 관련된 융복합산업에 폭넓게 진출하는 것. 즉, 주방 기물, 세제, 주방도구, 코디네이터 등으로 진출 분야를 넓히자는 것이다. 그동안 식품회사의 R&D 연구소에는 주로 식품공학과 전공자들이 진출했지만, 지금은 조리학과 전공자들도 진출하고 있다. 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리고 보존방법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음식의 맛과 건강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 또한, 캐나다 싱가포르 중국에 이어 더 많은 나라로 조리학과 학생들이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앵그리소사이어티를 사는 제자들
“제가 자랄 때는 배만 채우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취직이 안 되고, 왕따를 당하고, 결혼하기도 어려우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는 헝그리소사이어티에서 살았다면 지금은 학생들은 앵그리소사이어티에 사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리도 학생들 마음을 잘 아는지 궁금했다. 진 교수는 책을 통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충전하고 현재 트렌드를 파악한다고 했다. 매년 새해에는 트렌드 관련 책을 6~7권 정도 정독한다. 유엔미래보고서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관련 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현업에 있을 때 무용담을 늘여놓으며 학생들을 무시는 교수, 실력 없는 교수들을 학생들은 싫어해요. 강의평가는 월급과도 연관돼 있어 교수들이 노력을 많이 합니다. 현장에서 익힌 기술을 물론이고 이론이나 트렌드 등을 두루두루 파악해야죠.”
진양호 교수는 학생들 눈높이에서 강의하고 재미나게 강의해야 하려고 노력한다. 진양호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은 교수일까? “인기가 많지는 않은데 적지는 않아요.”라며 겸손하게 그리고, 위트 있게 답변을 내놓는다.
롯데호텔에서 익히 영어와 일어가 큰 밑천
진양호 교수는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군대에서 다리를 다쳐 태권도를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 요리. 1997년 롯데호텔에 입사하여 총주방장실 비서실에서 인사, 구매, 관리 등 행정부처 업무를 담당했다. 그 당시는 외자재는 6개월마다 주문할 수 있어 자재관리가 중요했고, 보건증 갱신이나, 직원들의 근무태도 등을 관리했다. 5년 정도 근무한 롯데호텔에서 진양호 교수는 영어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롯데호텔에서 무료로 외국어 강좌를 개설해줘 아침 일찍 출근해서 공부했던 것이 이후 힐튼호텔 입사할 때, 박사 공부할 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롯데호텔에서 힐튼호텔로 파격적인 조건으로 자리를 옮겼다. 19만 5천 원 받던 조리사가 46만 원을 받는 과장으로 입사하게 된 것. 그 이유가 바로 외국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그 당시 힐튼호텔 총주방장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한 진양호 셰프를 선택한 것. 10년 차 셰프를 재치고 요리 경력이라고는 1년밖에 없는 그가 선택된 것. 진양호는 힐튼호텔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소시지 조리 비법을 스스로 알고자 공부 시작해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장점 때문에 초고속 승진을 하던 그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소시지를 잘 만들고 싶은 것이 계기였다.
“소시지 속을 채울 때 기술이 필요한데 선배들이 그 비법을 알려 주지 않는 거에요. 중요한 순간에는 꼭 창고에서 고기를 가져와라 양파를 가져오라 하고 심부름을 시키는 거죠.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니 스스로 배워야겠다 싶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호텔에 근무하면서 학사 과정을 마치느라 휴가는 모두 출석 수업에 반납해야 했다. “공부해보니까 재미있고, 다른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하는데 조금만 공부해도 앞서가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다.”며 회상하는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퍼졌다. 박사학위 과정도 6학기 만에 졸업한 첫 학생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호텔을 떠나 교수가 되었다.
“호텔에 있을 때는 창의적인 일이라 즐거웠지요. 제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고객의 모습, 좋은 관계로 발전해서 호텔 밖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되는 게 재미났지요.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또 다른 거 같아요. 내 자식은 뭘 해도 예쁘잖아요. 학생들을 보는 게 그런 거 같아요.”
무엇이든 즐겁지 않은 일이 없다며 경쾌하게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뿌리만큼 거두는 인생과 같은 요리, 선한 마음으로 그는 요리는 인생과 똑같다고 한다.
“인생은 정직하잖아요. 뿌린 만큼 그대로 거두니까요. 시간이 필요하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면 설익은 음식이 되는 거고, 제때를 놓치면 죽이 돼버리잖아요. 인생도 성실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거두면 좋은 결과를 맺지만 노력하지 않고 욕심만 크면 사기꾼이 되는 거잖아요.”
요리하는 사람은 항상 즐거워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화난 상태로 음식을 만들면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바로 35년 동안 웃으며 요리하려 노력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요리사에게는 가장 필요한 덕목은 ‘선한 마음’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제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요. 과거보다 늘 현재가 행복해요. 석 박사 지도하는 제자만도 300명인데 아침마다 늘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교수가, 조리인이 되라고 말이죠. 구봉길 여경옥처럼 저보다 더 훌륭한 제자들이 많으니 저는 더없이 행복한 삶인 거 같습니다.”
한국조리교육학회와 한국푸드코디네이터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진 교수는 제자들을 보살피는 일로 그동안의 고마움을 되갚을 것이라고 밝혔다.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 떠오른 인터뷰 시간. 좋은 인생이 늘 진양호 교수를 기다릴 것 같은 좋은 기운 선물 받아 언덕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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