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2')가 공개 직후부터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요리 서바이벌의 열기로 몰아넣고 있다.
16일 공개된 1~3화는 흑수저 80인의 치열한 생존기와 백수저 18인의 위용을 담아냈다.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SNS는 출연진의 이름으로 도배됐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 프로그램에서 '조리사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셰프들의 땀과 기술을 본 것인가, 아니면 예능적 재미를 위해 편집된 '볼거리'만 소비한 것인가.
흑백요리사2는 분명 재미있다. 하지만 조리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눈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훌륭한 조리사들이 자신의 철학을 말하기보다 카메라 앞에서 '캐릭터'가 되어야 살아남는 구조. 이것이 과연 조리사가 존경받는 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예능의 부속품이 된 조리사들
솔직히 말하자. 흑백요리사 시리즈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이 있다. 수십 년 경력의 명장급 조리사들이 예능 포맷 안에서 '휘이덕거리는' 모습을 볼 때다. 물론 방송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시청률이 나와야 시즌3도 나온다.
그러나 제이미 올리버를 보라. 페란 아드리아를 보라. 이들은 예능에 출연해도 '연예인의 부속품'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요리 철학을 당당히 말하고, 그 철학이 곧 콘텐츠가 된다. 제이미 올리버는 영국의 학교 급식 혁명을 이끌며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페란 아드리아는 분자 요리의 선구자로서 "요리는 예술이자 과학"이라는 철학을 엘불리 레스토랑을 통해 구현했다. 이들이 방송에 나오면 MC가 들러리가 된다. 셰프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흑백요리사2에 출연한 셰프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미쉐린 2스타 이준, 한식과 양식 모두 미쉐린 1스타를 보유한 손종원, 57년 경력의 중식 대가 후덕죽, 47년 경력의 프렌치 거장 박효남, 대한민국 1호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 이 정도면 한국 요리계의 '어벤져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방송에서 어떻게 소비되는가. 자신의 조리 철학을 깊이 있게 풀어놓는 시간이 주어지는가. 대부분의 분량은 서바이벌 특유의 긴장감 조성, 승패의 희비, 그리고 심사위원의 리액션에 할애된다. 셰프들은 '경쟁자'로만 존재할 뿐, '철학자'로서 조명받지 못한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을 떠올려 보자. 이 시리즈에서 셰프들은 자신의 인생과 철학, 요리에 담긴 의미를 한 시간 가까이 풀어놓는다. 시청자들은 그 요리를 직접 맛볼 수 없지만, 셰프의 철학에 감동받고 존경심을 품게 된다. 이것이 조리사가 '스타'가 아닌 '존경받는 장인'이 되는 길이다.
흑백요리사2가 나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최고의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요리 철학'인가, 아니면 '예능적 캐릭터'인가. 후자라면, 그것은 한국 요리계 전체의 손실이다. 한국도 ‘셰프가 말하는 조리 언어’가 예능의 장치가 아니라 콘텐츠의 중심이 되는 포맷이 필요하다.
안성재가 보여준 '진짜 조리사'의 면모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보여준 '조리에 대한 진지함'이다. 1라운드 '히든 백수저' 룰은 시즌2의 가장 큰 화제였다. 시즌1에서 백수저였던 김도윤 셰프와 최강록 셰프가 흑수저들과 같은 조건에서 심사를 받는 파격적인 설정.
특히 김도윤 셰프는 미쉐린 1스타 '윤서울'의 오너 셰프로, 2000만 원짜리 제면기까지 경연장에 공수해 오며 필승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백강밀에 녹두와 콩을 배합해 면을 뽑아냈다. 포크와 나이프로 쌈을 싸듯 먹는 독특한 형태의 들기름 국수. 백종원 심사위원은 "제가 먹었던 들기름 국수 중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감탄했다.
그러나 안성재 셰프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한참을 씹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도 면을 뽑는 사람으로서 봤을 때, 이 면의 식감은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덜 익어서 나는 텁텁함에 가깝습니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미쉐린 셰프가, 그것도 자신의 주특기인 면 요리로 탈락하다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조리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이야말로 흑백요리사2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짜 조리'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안성재 셰프는 "맛있다, 맛없다"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면의 익힘 정도, 식감의 균형, 소스와의 밸런스. 그는 기술적인 언어로 요리를 분석했다. 이것이 조리사가 조리사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후속 인터뷰에서 안성재 셰프는 "저도 존경하는 셰프"라며 김도윤 셰프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면의 익힘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판단을 굽히지 않았다.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접시 위의 요리'만으로 평가하는 태도. 이것이 조리사가 존경받는 방식이다.
화려한 퍼포먼스도 뚫어본 안성재의 통찰
안성재 셰프의 진가는 '술 빚는 윤주모' 참가자의 심사에서도 드러났다. 윤주모 참가자는 경연장에 거대한 전통 소줏고리를 직접 들고나와 현장에서 술을 내리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자칫하면 요리보다 '쇼'에 시선이 뺏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홀로 심사에 나선 안성재 셰프는 그 화려한 연출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윤주모가 내놓은 수육과 반찬을 맛보았다. 윤주모는 수육을 삶을 때 맹물이 아닌 '막걸리 윗물(청주)'을 사용해 고기의 잡내를 잡고 과실 향을 입히는 디테일을 숨겨두었다.
안 셰프는 정확했다. 그는 "고기냐, 국이냐, 밥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건 특별한 '손맛'이다. 반찬 하나를 먹더라도 안주가 되는 맛"이라며 합격을 선언했다.
소줏고리라는 거대한 볼거리가 있었음에도, 안성재는 그 뒤에 숨겨진 조리사의 '킥(Kick)'과 내공을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손맛'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이것은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요리사의 정체성이 담긴 맛이라는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안성재 셰프가 시즌1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예능적으로 어필하려 하지 않는다. 화려한 언변도, 과장된 리액션도 없다. 그저 묵묵히 요리를 맛보고,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솔직하게 평가할 뿐이다.
그런데 대중은 그를 사랑한다. 어쩌면 시청자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진짜'가 무엇인지. 예능적 캐릭터가 아닌, 조리에 대한 진지함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결국 존경받는다는 것을.
쇼가 아닌 철학, 그들의 조리를 주목하다
1라운드에서 살아남은 흑수저 19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순한 '쇼맨십'이 아닌 자신만의 '조리 철학'을 가진 셰프들이 눈에 띈다.
'서울 엄마'는 강남에서 20년간 활동한 요리 연구가다. 그녀는 너비아니를 만들 때 고기를 망치로 두드려 섬유질을 끊어내는 정석적인 조리법을 고수했다. 화려한 기교 대신 '단정함'으로 승부한 것이다. 백종원 대표는 이를 두고 "서울 양반집 음식 같다"며 평가했다. 재료는 심플한데 맛은 화려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표현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서울 양반집 음식'이란 과시하지 않되 품격이 있고, 자극적이지 않되 깊은 맛이 있는 요리를 의미한다. 그 근간에는 수십 년간 다듬어 온 정성과 기본기가 있었다.
'뉴욕에 간 돼지곰탕'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요리는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인다. 맑은 돼지곰탕. 그러나 그 맑음 속에 철학이 담겨 있다. 보통 곰탕은 뼈와 내장을 함께 고아 진한 국물을 낸다. 그러나 그는 오직 살코기만으로 육수를 뽑는다. 결과물은 물처럼 투명하고 맑은 국물. 그러나 한 모금 마시면 깊은 감칠맛이 폭발한다. 백 대표는 국물을 마시고 "크으~" 하며 감탄했다. "국물이 너무 맑은데 깊은 감칠맛이 폭발한다. 돼지 냄새는 잡고 고소함만 남겼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곰탕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뼈를 넣으면 쉽게 진한 맛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그 쉬운 길을 거부하고, 살코기만으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담은 요리'를 했다는 것이다. 소줏고리가 눈길을 끌었지만 윤주모의 본질은 '전통 발효'에 있었고, 서울 엄마의 본질은 '단정한 손맛'에 있었으며, 뉴욕 곰탕의 본질은 '식재료의 순수함'에 있었다.
방송은 이 철학들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시간의 한계, 편집의 방향, 예능적 재미의 추구.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이들의 '퍼포먼스'는 기억하되 '철학'은 놓치게 된다. 이것이 아쉬운 점이다.
숨어있는 명장을 찾아라
1라운드가 끝나고 살아남은 흑수저는 19명이다. 탈락한 이들은 61명. 그중 방송에 이름조차 나오지 못한 이들이 26명이나 된다. 그들의 요리는 정말 '방송 가치'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송의 카메라가 담지 못했을 뿐, 그들 역시 인생을 건 한 접시를 들고 경연장에 섰다. 그들 중에는 분명 자신만의 조리 철학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서바이벌 포맷 안에서, 그리고 제한된 방송 시간 안에서, 그 철학이 조명받지 못했을 뿐이다.
쿡앤셰프는 여기에 주목한다. 1등을 하지 못해도, 방송에 많이 나오지 못해도, '무관의 명예로운 조리사'는 존재한다.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조리 철학을 조명하는 것. 이것이 요리 전문 매체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조리사의 철학이 살아있는 콘텐츠를 기대하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흑백요리사2에서 우리는 '조리사의 철학'을 보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충분하지 않았다. 안성재 셰프가 보여준 기술적 진지함, 윤주모·서울 엄마·뉴욕 곰탕 등이 보여준 자신만의 요리 세계. 이런 순간들이 분명 있었지만, 전체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서바이벌 특유의 긴장감, 탈락의 눈물, 승리의 환호에 할애됐다. 이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것도 재미있다. 시청률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요리계의 발전, 조리사의 사회적 위상 제고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안성재 셰프는 예능적으로 어필하려 하지 않아도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조리사가 됐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증명했다. 화려한 캐릭터가 아니라 조리에 대한 진지함으로 승부해도 대중은 알아본다.
흑백요리사2의 성공을 축하한다. 그리고 동시에 기대한다. 다음 시즌에서는, 혹은 또 다른 요리 콘텐츠에서는, 조리사들이 자신의 철학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지기를. 셰프들이 예능의 들러리가 아니라, 자신의 요리 세계로 당당히 주인공이 되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쿡앤셰프는 그 여정에 함께하겠다. 방송이 담지 못한 조리사의 철학을, 카메라가 비추지 못한 숨은 명장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계속 찾아 나설 것이다.
[알림] 이어지는 2편 〈[흑백요리사2] 이름 불리지 못한 26명, 그들의 조리를 기억하며〉는
12월 18일(목) 오후 9시에 공개됩니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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