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기자] 응원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 상자째 놓인 치킨, 한 골을 기다리며 손에 든 닭 한 조각. 어느 순간부터 치킨은 대한민국의 축구 응원 문화에서 빠지기 어려운 음식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치킨은 함께 즐길 일이 있을 때 함께 한 음식이었다. 1960년 명동에는 전기구이 통닭을 주메뉴로 내세운 원조영양센타가 문을 열었고, 1970년대 식용유가 대중화되며 통닭 튀김이 시장과 골목으로 퍼졌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기던 통닭은 이후 조각낸 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닭강정, 파닭으로 넓어지며 응원에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치킨을 응원 음식으로 각인시킨 결정타가 됐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1만여 개 수준이던 치킨집은 한일월드컵 이후 2만5천여 개로 늘었다. 거리 응원의 함성은 광장과 거리만 채운 것이 아니었다. 동네 치킨집, 시장 골목, 배달 상자 위에도 월드컵의 열기가 번졌다. 치킨은 경기를 보며 먹는 음식이자,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나눠 먹는 응원의 음식이 됐다.
닭은 오래전부터 잔칫상과 복날 음식, 기운을 돋우는 음식으로 푹 고아 국물로 먹고, 통째로 삶아 나누고, 기름에 튀겨 바삭하게 먹었다. 닭 한 마리는 배를 채우는 음식이면서 사람을 모으는 음식이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다리와 날개, 가슴살을 나누는 동안 식탁에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월드컵 응원상에 치킨을 가장 많이 찾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손으로 집어 먹기 쉽고, 함께 나누기 좋고, 뜨거운 순간의 흥을 받아낼 만큼 맛의 힘이 분명하다.
이번 대한민국 대 남아공전의 응원에는 전국의 지역 통닭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승리만을 바라는 날, 각 지역에서 묵묵히 튀겨지고 구워진 닭 한 마리가 하나의 응원으로 모인다. 지역마다의 다양한 방법으로 닭을 조리하고 있다. 어디서는 찹쌀밥을 품고 구워지고, 어디서는 가마솥 기름 속에서 노릇하게 튀겨진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 닭강정이 되고, 파채를 수북이 올린 파닭이 된다. 맛은 다르지만 향하는 마음은 같다.
서울의 응원은 구운 통닭과 시장 통닭에서 시작된다. 한남동 한방통닭은 닭 속에 찹쌀밥을 품고 천천히 익는다. 겉은 노릇하고 속은 든든하다. 청량리시장 남원통닭은 시장 통닭의 얼굴이다. 큰 솥에서 튀겨낸 닭과 함께 떡, 고구마, 고추가 담기면 응원상은 금세 푸짐해진다.
인천 중구청 자료에 따르면 신포 닭강정은 결혼식, 돌잔치, 칠순 같은 잔치 음식의 단체 주문에서 출발했고, 이후 인기가 높아지며 신포시장 안에서 개인 손님에게도 팔리기 시작했다. 잔치와 축하의 마음을 담아 나누던 음식이라는 점에서, 신포닭강정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 음식으로도 제격이다. 갓 튀겨낸 닭강정은 매콤달콤한 양념 뒤로 바삭함이 살아 있고, 식어도 맛이 쉽게 변하지 않아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나누기 좋다.
강원도에서는 속초 만석닭강정과 강릉 베니닭강정. 여행길에 포장해 돌아오는 닭강정은 지역의 맛과 기억을 함께 담는다. 속초와 강릉의 닭강정은 바다를 다녀온 사람들의 손에 들려 집으로 돌아오고, 경기 날에는 응원과 다시 열린다. 닭강정은 특별한 접시가 없어도 된다.
수원에서는 왕갈비통닭이 힘을 보탠다. 수원 통닭거리의 오래된 후라이드 문화에 갈비 양념의 달큰하고 짭짤한 맛이 더해진 음식이다. 수원이라는 지역의 이름이 붙는 순간, 통닭은 야식보다 더 넓은 이야기를 갖는다. 한 골, 한 골 경기속에 손으로 집어 먹는 통닭 한 조각도 응원의 리듬이 된다.
충청권에는 세종 조치원의 파닭치킨과 천안 불티나통닭이 있다. 조치원 파닭은 튀긴 닭 위에 파채를 올려 먹는 방식으로 기억된다. 파의 알싸함이 기름진 맛을 잡아주고, 한입 뒤에 다시 한입을 부른다. 천안 불티나통닭은 얇고 바삭한 튀김옷의 옛날 통닭으로 지역 사람들에게 익숙한 맛이다. 충남 서산의 마방, 마일드치킨도 오래된 후라이드 치킨 전문점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오랜 시간 같은 레시피를 지켜온 치킨집들은 지역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치킨의 맛을 쌓아왔다.
대구는 치킨에 진심인 도시다.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 문화가 축제로 커졌고,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도시의 여름을 달군다. 한국관광공사는 대구 평화시장 인근 닭똥집 골목을 소개하며 치킨, 찜닭, 똥집 튀김 등 다양한 닭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설명한다. 그 안에서 은혜통닭은 대구의 오래된 통닭집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대구의 치킨 문화는 유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도시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식문화의 한 장면이다.
전북 익산에는 솜리치킨과 제일치킨이 있다. 익산의 오래된 치킨집들은 남부시장 일대의 치킨 문화와 함께 이야기된다. 시장에서 갓 튀겨낸 닭을 종이상자에 담아 들고 나오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오래된 시장 통닭은 특별한 설명보다 뜨거운 기름 냄새와 바삭한 튀김옷으로 통닭의 탄탄한 기본기를 느낄 수 있다.
광주에서는 산더미 구구통닭이 있다. 이름처럼 푸짐하게 쌓아 올린 통닭은 응원상 위에서도 존재감이 크다. 광주의 통닭은 넉넉한 양과 함께 나눠 먹는 방식에서 힘을 얻는다. 한 접시를 가운데 두고 여러 사람이 손을 뻗는 순간, 통닭은 단순한 야식이 아니라 함께 응원하는 음식이 된다.
전남 순천의 풍미통닭도 지역에서 오래 회자되는 통닭의 이름이다. 이런 통닭들은 긴 설명 없이도 사람들을 한 자리로 모은다. 바삭한 껍질, 뜨거운 살, 손에 묻는 기름.
이 지역 통닭들은 맛집 목록에 그치지 않는다.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월드컵의 열기를 함께 나누려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시장과 골목에서 피어난 이런 ‘진심 어린 한 접시’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된다. 치킨 한 조각을 나눠 먹는 일은 같은 팀을 응원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대한민국 대 남아공전의 목표는 하나! 승리다. 전국의 통닭이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날, 그 응원의 마음은 남아공전의 승리를 향한다. 우리 동네와 지역의 통닭 한 마리를 곁에 두고, 32강을 향한 승리의 응원을 함께하자.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전국의 지역 통닭들의 뜨거운 기름 소리가 응원가의 비트가 되듯, 각 지역에서 묵묵히 튀겨지고 구워진 닭 한 마리는 이제 대한민국의 골을 기다리는 든든한 응원군이 된다. 오늘 밤, 프랜차이즈의 규격화된 맛 대신 우리 동네, 우리 지역의 깊은 맛과 함께 선수들의 발끝에 힘을 보태보자. 대한민국이 지닌 탄탄한 저력으로, 더 높은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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