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신현우 기자] 세계인의 식탁에 한식이 오르고, 김치와 불고기를 넘어 다양한 우리의 일상식까지 세계 곳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술도 해외 식음료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식음료 시장조사업체가 막걸리를 미래 유망 음료로 선정하는가 하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참여한 우리 술 브랜드도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뉴욕과 홍콩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한국 술을 음식과 페어링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 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영문 명칭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정부 기관에서도 'K-Sool', 'K-SUUL', 'SOOL' 등 서로 다른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술의 세계화가 본격화되는 만큼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용어 정립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세계가 주목한 막걸리…2027년 유망 음료에 선정
미국의 식음료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센셜(Datassential)은 지난 7일 발표한 '2027년 이후 주목해야 할 음료 10선(Beverages to Know for 2027 and Beyond)'에 막걸리를 포함했다.
선정된 음료에는 소금에 절인 레몬이나 라임을 활용한 베트남식 레모네이드, 멕시코의 전통 칵테일 칸타리토(Cantarito), 일본의 발효제 코지(Koji)를 활용한 코지 밀크(Koji Milk) 등이 포함됐다.
각 지역의 식문화와 고유한 재료, 전통적인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음료들이 미래 식음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막걸리의 선정은 의미가 있다.
데이터센셜은 막걸리를 'Milky Korean Rice Wine', 즉 우윳빛을 띠는 한국의 쌀 와인으로 소개했다. 해외 소비자에게 막걸리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우리 술의 고유한 제조법과 발효 문화까지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막걸리는 곡물과 누룩, 물을 이용해 빚는 발효주다. 누룩에서 유래한 효소가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고, 효모가 이를 이용해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포도 와인이 과실에 이미 존재하는 당을 발효시키는 것과는 제조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K-컬처 열풍 타고 세계로 향하는 우리 술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술도 K-컬처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탄소년단(BTS) 진이 글로벌 앰배서더로 참여한 주류 브랜드 지니스램프다. 지니스램프는 지난 8월 프리미엄 발효주 '온더램프(OnTheLAMP)'를 출시했다.
국산 쌀과 전통 밀누룩, 물로 빚은 이 술은 해외에서 'Korean Sweet Rice Wine'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지난 8월 4일 국내 출시 당시 판매 시작 1분 만에 준비된 물량이 매진됐으며, 같은 달 21일 일본에서 진행한 온라인 선판매에서도 초도 물량 3,000병이 전량 판매됐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활용해 우리 술을 해외 소비자에게 알리는 사례로, K-컬처의 영향력이 음악과 영상 콘텐츠를 넘어 주류 시장으로도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홍콩 파인다이닝에도 등장한 우리 술
우리 술의 해외 진출은 한국 식료품점이나 일반 한식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뉴욕과 홍콩에서는 한국산 술을 코스 요리와 페어링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뉴욕의 제네시스 하우스 레스토랑은 한국산 청주인 '김포예주'를 돼지고기 요리에 어울리는 술로 추천한 바 있다. 음식의 발효 풍미와 염도, 술의 숙성 향을 고려한 페어링이다.
뉴욕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라온(RAON)은 코스 요리에 맞춰 'Korean Sool Pairing'이라는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와인 페어링과 함께 한국 술을 독립적인 선택지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홍콩에서도 우리 술을 활용한 페어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1일 홍콩의 스시 오마카세 레스토랑 '스시 우에하라(Sushi UEHARA)'는 한국 양조장 지란지교의 막걸리 6종을 스시 코스에 곁들이는 특별 행사를 마련했다.
홍콩 센트럴의 레스토랑 '솔(SOL)' 역시 한국 전통주 브랜드 백경(Baekkyung)과 협업해 코스 요리에 어울리는 주류 페어링을 선보이는 기념 디너를 기획했다.
이처럼 우리 술은 한식뿐 아니라 일본 요리와 현대적인 다이닝에서도 음식과 어울리는 주류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해외 레스토랑에서 'Korean Sool Pairing'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다른 나라의 주류 명칭을 빌리지 않고 한국어의 '술(Sool)'이라는 단어 자체를 하나의 주류 카테고리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출 확대…기관마다 다른 우리 술의 이름
우리 술의 세계화는 정부 차원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통주 산업발전 정책을 통해 2027년 전통주류 수출액 5,000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외교부와 함께 주한 외교단을 대상으로 우리 술과 한식을 소개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수출 유망 전통주 36종을 선정하고, 해외 홍보에 활용할 국문·영문 가이드북을 제작해 재외공관 30곳에 보급했다.
특히 농식품부는 이 과정에서 우리 전통주의 영문 명칭을 체계화했다고 밝혔다. 전통주는 'K-Sool', 막걸리는 'Makgeolli', 약주·청주는 'Yakju', 과실주는 'Fruit Wine', 증류주는 'K-Soju'로 구분해 소개했다.
그러나 정부 기관마다 사용하는 우리 술의 영문 명칭은 일치하지 않는다.
농식품부가 'K-Sool'을 사용하는 반면, 국세청은 'K-SUUL'이라는 명칭으로 국내 주류업체의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K-SUUL AWARDS'를 개최해 우수 주류를 발굴하고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2023년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영문 단행본
이처럼 여러 정부 기관이 우리 술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은 소관 업무와 정책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전통주 산업 육성과 수출 진흥을 추진한다. 국세청은 <주세법>과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주세 부과·징수 및 주류 제조·판매 면허 관리 등 주류 행정을 담당하며, 중소 주류업체의 수출도 지원하고 있다. 문체부는 국가 문화홍보 차원에서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있다.
각 기관이 서로 다른 정책적 역할에 따라 우리 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지만, 해외 소비자와 바이어에게는 모두 한국의 술을 소개하는 명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식 세계화는 음식 이름부터 정리했다
우리 술의 명칭 문제는 과거 한식 세계화 과정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정부는 2009년 한식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식 메뉴의 외국어 표준화 작업에 나섰다. 이후 한국관광공사와 한식진흥원 등을 중심으로 음식 이름을 외국어로 어떻게 표기하고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왔다.
한식진흥원은 2023년 '한식메뉴 외국어표기 길라잡이 800선'을 제작해 주요 한식 메뉴의 명칭을 영어·중국어·일본어로 정리하고 국내외 한식당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은 우리 음식의 이름을 무조건 외국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명칭을 유지하면서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 있었다.
김치(Kimchi), 비빔밥(Bibimbap), 불고기(Bulgogi)가 세계인의 식탁에서 익숙한 이름으로 사용되는 지금, 우리 술 역시 이러한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막걸리는 Makgeolli, 약주는 Yakju, 누룩은 Nuruk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원료와 제조법, 맛과 향의 특징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막걸리와 약주, 청주 등 개별 주종의 명칭뿐 아니라 누룩과 고두밥, 당화와 발효 등 양조 기술에 관한 용어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면 우리 술의 문화적 가치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한식 세계화에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식문화는 먹는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료와 술, 식사 방식과 예절,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의 특성까지 포괄한다.
우리 술 역시 오랜 세월 음식과 함께 발전해 왔다. 명절과 제례에 사용하는 술이 있었고, 계절에 맞춰 빚는 시절주가 있었다. 지역마다 다른 재료와 제조법을 사용했으며, 술을 나누는 과정에는 사람과 공동체의 문화가 담겼다.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음료가 아니라 음식과 어우러져 맛을 완성하고, 계절과 풍속을 함께 즐기는 식문화의 일부였다.
이러한 술의 문화적 가치는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2024년 12월 일본의 '전통 사케 양조 지식과 기술(Traditional knowledge and skills of sake-making with koji mold in Japan)'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등재 대상은 사케라는 술 자체가 아니라 입국(코지)를 활용해 술을 빚는 전통적인 지식과 기술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양조 기술이 일본의 축제와 혼례, 의례 등 사회·문화적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지역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술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한 나라의 역사와 기술, 생활문화를 담은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 미식 시장에서도 음식과 술의 관계는 중요하다. 와인이 음식과의 페어링을 통해 소비자에게 소개되고, 일본의 사케가 음식문화와 함께 알려지는 것처럼 우리 술도 한식과 연계할 때 더 넓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뉴욕과 홍콩의 사례처럼 한식을 넘어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우리 술을 페어링하는 시도는 해외시장에서 우리 술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술을 알리는 일은 단순히 주류 상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양조 기술과 발효 문화, 그리고 우리 고유의 식문화를 세계에 전달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술의 세계화,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부터
막걸리는 미래 유망 음료로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의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은 해외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뉴욕과 홍콩의 미식 현장에서도 우리 술을 음식과 함께 즐기는 사례가 등장했다. 우리 술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는 만큼 이를 설명하는 언어와 명칭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K-Sool과 K-SUUL, SOOL 등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명칭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개별 주종의 원료와 제조법, 특성을 해외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공통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영문 철자를 하나로 맞추자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술의 종류와 양조 기술,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전달할 수 있는 언어적 체계를 갖추는 작업이다.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음식의 이름과 설명을 정리했던 것처럼 우리 술에도 정부 부처와 양조업계, 해외 유통·외식 현장에서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물론 이름을 정리한다고 우리 술의 세계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술을 만들고 해외 소비자의 취향을 이해하며, 안정적인 유통망을 확보하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김치가 단순한 절임 채소가 아니고 비빔밥이 단순한 섞은 밥이 아니듯, 막걸리와 약주 역시 쌀로 만든 와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랜 시간 축적된 양조 기술과 발효 문화, 지역마다 다른 재료와 제조법, 술과 함께 발전해 온 음식문화까지 모두 우리 술이 지닌 가치이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잔에 우리 술이 담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잔에 담긴 술의 이름과 이야기를 세계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술의 세계화는 그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Cook&Chef /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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