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애견 훈련사가 된 계기는?
A: 10대 후반에 고향 경상남도 남해를 떠나 상경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상경 후 우연히 한 가축병원에 들렀다가 한 훈련사를 만나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개도 좋아했으니 그 훈련사 선배가 신기하고 부러워 자연스레 훈련법을 사사하게 되었다.
Q: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에서 개를 훈련 시키고 훈련사도 양성했다는데.
A: 당시에는 애견 훈련사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개 훈련사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훈련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니 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운 좋게도 청와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경찰견 등의 훈련사로 위탁 출장 차 매일 출퇴근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당시 워낙 개 훈련사들이 적다 보니 청와대 경찰견 담당 부서에서 어떻게 우연히 나를 소개받아 불러 준 덕분이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희귀한 독일 사냥개 종인 와이마라너가 청와대에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A: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일본인에게 배우는 게 싫어서이다. 전술했다시피 1980년대만 하더라도 훈련사는 일본에 유학을 떠나거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에게 배운 사람에게 또 배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훈련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협회가 절실했다. 훈련사 선배로서 힘든 길일지라도 개척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설립했다.
두 번째는 애견이나 훈련사 관련 각종 심사 대회가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견 에티켓이나, 훈련사의 커리큘럼 등이 체계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못한 상황에서 각종 컨테스트의 심의 기준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 애견 업계의 시스템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런 개혁을 위해서는 공식적이고, 공평무사한 사단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애견과 함께하는 삶을 '애견문화'로 격상시켜 그런 시스템과 생활을 정립시키는 데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에 공공연하게 보신탕집이 영업했었다. 특정 지역마다 개고기 시장이 번성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애완견을 키우면서도 개의 '견격'을 인정해 주는 정서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타인, 특히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애견인의 에티켓 역시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애견문화'를 널리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협회 설립이 절실했다.
A: 정말 열심히 일했고, 일한 만큼 아주 많이 얻었다. 설립한 지 11년 만에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법인 허가를 받았고, 연계 기관으로 한국인명구조견협회도 설립해 행정자치부의 허가를 받았다. 전국적으로 애견 클럽을 결성해 애완견과 교감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으며, '애견문화' 선진국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훈련 교육, 반려견 생산자 교육 등을 실시해 왔다.
또한, 국가 공인 자격으로 인가된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반려견 지도사, 반려동물 관리사, 펫시터, 동물 매개 활동 관리사 등 다양한 반려견 전문가 양성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려견 인식표 부착의 법제화에도 공헌했고, 무엇보다 한 국회의원의 개 식용 합법화 추진을 저지한 게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Q: 첫 애완견, 기억에 남는 반려견,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종은?
A: 고향에서는 진도 믹스견을 키웠다. 당시 시골에서는 대부분 그랬다. 그러다가 1976년 즈음 처음으로 골든래트리버를 만나고 깜짝 놀랐다. 마치 금처럼 노란 서광이 비치는데 그야말로 다른 세계에서 온 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덩치에 비해 체력이 약하다는 게 결정적인 핸디캡이다. 제일 좋아하는 종은 세퍼드이다. 이 친구가 이만저만 영리한 게 아니다. 가르치는 대로 다 습득하는, 그야말로 만능의 개이다. 인명 구조 등 특수한 목적으로도 안성맞춤인 게 바로 셰퍼드이다.
A: 배우 노주현 씨도 셰퍼드 애호가이다. 그분이 우리 협회 최연소 이사를 지내셨다. 드라마 촬영 때에도 승용차에 애완견을 태우고 다닐 정도로 반려견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그런 인연으로 걸 그룹 베이비복스와 그들 소속사 윤등룡 사장, 가수 이효리 씨 등 많은 연예인과 연예 관계자들과 알게 되었고, 그분들을 통해 '애견문화'를 정립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과 함께 2001년 '애견 스타 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베비비복스가 우리 협회 홍보 대사를 하는 가운데 이 클럽에 배우 장미희, 이광기 씨 등이 소속되어 활동해 주셨다.
Q: 처음에 '애견문화'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을 때 분위기는
A: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먹고살기가 척박하였다. 그래서 '먹고살기도 힘든 데 무슨 개를 키우는 문화를 향유하나?'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정치 상황이나 경제적 환경 등에 미뤄 '애견문화'가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느낌을 준 건 맞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인구 3분의 1이 애견인인 이 시대를 내다본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한 당시에도 나날이 애견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으며 향후 증가 추이가 더욱 빨라질 것이 명약관화하였기에 '애견문화' 운동을 한시라도 빨리 펼쳐 정착시키자는 선구자적 마음으로 '애견문화'를 주창한 것이었다.
A: 먼저 유기견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건 개개인의 생활 문제를 떠나 사회적으로도 굉장한 숙제이다. 불법행위도 포함된다.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과 생명 존중 사상이다. 반려견을 입양하기 전에 자신에게 그 친구를 평생 책임질 수 있는 사명감이 있는지 먼저 진지하고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왜 반려견이 필요한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와 함께 어떻게 끝까지 잘 살 것인가를 그려 확신이 설 때 입양해야 한다. 그리고 입양하면서 다시 한 번 더 다짐해야 한다. 책임감, 그리고 그 친구의 생명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이다.
그 다음은 브리더(사육사) 등에 관한 올바른 교육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한 사람(집)이 15마리 이상 못 기르도록 제한하고 있다. 번식가들에 대한 교육은 매우 철저하고, 까다롭다.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무분별하게 번식하거나 번식되도록 방치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애견 탄생이다. 들개 문제나 광견병 문제 등도 골치 아프지만 사실 이 장애견이 제일 문제라고 본다. 이것 역시 생명 존중 사상과 거리가 멀다. 병든 개의 교접, 근친상간, 그리고 위생 문제 등이 바로 장애견 탄생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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